<달콤동거> [4] - 드디어 이사하는 날!(2)
“이봐, 현실을 인정해야지. 냉정하게 생각해봐. 내가 나갈 것 같아?”
음, 맞는 말이지. 저 인간의 유들유들한 얼굴 좀 봐라. 일단은 후퇴한 다음, 어떻게든 내보내야 한다.
“좋아. 계속 해.”
“좋은 자세야. 일단! 서로가 서로를 어쩔 수 없는 동거인으로 인정하자고. 오케이?”
안 오케이. 마음 속으로는 수없이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대처하는 수 밖엔.
“오케이….”
“그럼, 서로 지켜야 할 것을 정하자. 우선 이 기자가 생각나는 거 말해봐.”
“음…….”
그러나 막상 갑자기 떠올리려니 생각나는 게 별로 없었다.
“서로 다른 사람 데려오지 말기로 해. 특히 여자 데리고 오는 거 참을 수 없어. 이렇게 같이 사는 거 자랑도 아니고 남들 알아서 좋을 것도 없잖아.”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럼 우 기잔?”
“주방은 하난데 밥은 둘 다 먹어야 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역도 청소가 필요하다,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실무적인 얘기를 하자구.”
“그래, 좋아.”
“우선, 난 꼭 아침밥 먹어야 되거든? 이 기자는?”
우 기자가 내 대답을 기다리는데, 내 뱃속에서 대답 소리가 났다.
‘꼬르륵!’
우 기자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걸로 대답은 됐네. 야아, 이 기자하고 나한테 공통점이 있을 줄이야? 나는 아침에 밥을 안 먹으면 어질어질해서 하루종일 일이 안 되거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야. 안 그래? 하하.”
하! 웃기는! 그런 형이하학적인 공통점이 그렇게 재미있나? 나는 하나도 재미 없는데.
내가 우 기자를 뜨악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자, 우 기자가 웃음을 멈추더니 호흡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근데, 밥은 할 줄 알아?”
“뭐어?”
“하긴 요즘 밥이야 밥통이 해주니까, 뭐. 설마 밥통도 밥할 줄 아는데, 머리 달린 사람이 밥 못하진 않을 거 아냐. 그렇지? 반찬은 어때? 반찬은 할 줄 알아?”
“자꾸 빈정거릴 거야? 그렇게 빈정거리는 게 올바른 대화 자세야?”
“그래, 그래, 알았다.… 밥 다 된 거 같은데 먹으면서 얘기하자.”
“뭐? 우 기자가 한 밥을 같이 먹자는 거야?”
“왜? 독이라도 탔을까봐?”
“내가 왜 우 기자가 한 밥을 먹어?”
“이사하느라고 힘 썼잖아. 힘들 거 아냐. 밥 먹어. 2인분 했어.”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수작이야?”
“수작? 밥 같이 먹자는 것도 수작이야? 이왕 하는 거 같이 먹으려구 좀 많이 했더니 고마운 줄은 모르고.”
“눈물 겹게 고마워서 먹을 수나 있겠나? 밥이 넘어가겠어?”
“사람이 뭐 그래? 성의를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맘대로 해. 난 차릴 테니까 먹든지 말든지.”
“사람을 밥통하고 비교하는 게 성의야?”
“그래, 내가 미안하다. 그러니까 밥 먹자?”
순간, 멍해졌다. 지금 우 기자가 뭐라고 했나? 미안하다고? 지금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난 앞으로 같이 살 거 생각해서 최대한으로 이 기자를 배려해 준 건데 이런 식이면 정말 기분 나빠.”
웬 일이람, 이 남자가?
“알았어. 먹자. 같이 먹자구. 됐니? 그러게 우 기자가 평소에 잘 했어봐. 내가 이럴 때 얼마나 고마워했겠어.”
“끝까지 고맙다고는 하지 않는 거야?”
“밥 한 그릇 주면서 꼭 그렇게 유세를 떨어야겠어?”
“밥 한 그릇이라니?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도 주는데 유세 좀 떨어야지.”
우 기자가 내 앞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과 된장찌개를 내놓았다.
“우 기자,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쭉 집에서 살았잖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 탕수육, 갈비, 이런 것도 얼마나 잘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할 뿐이지.”
“시비 거는 거 말고 우 기자가 잘 하는 게 또 있네?”
“그래도 시비 거는 걸 제일 잘 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찌개를 한 술 떠보니 괜찮은 솜씨였다. 맛있다고 칭찬이나 해줄까, 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 해보자. 어쨌든 둘 다 목숨 걸고 아침을 먹어야 된다고 하니까 아침은 서로 번갈아서 하면 되겠지? 식사 당번은 그럼 됐고, 세금은 반반 내면 되고…. 참, 나, 컴퓨터 밖에다 내놓을까? 이 기자도 컴퓨터 쓸 일 있을 거 아니야. 아까 짐 옮길 때 보니까 이 기자 컴퓨터 없더라?”
이 남자 봐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더니 그런 건 언제 파악하셨대? 흠….
“쓸 일 있으면 빌려서 써도 돼. 비밀번호는…, 음, 뭐냐면….”
뭐야? 빌려쓰라더니, 말해주기 싫은 건가?
“말 안 해도 돼. 안 쓰면 되지, 뭐.”
“아니, 비밀번호가 뭐냐면…, ‘세번 뽀뽀해줘’야.”
“뭐?”
“세번…, 뽀뽀해줘.”
“에잉?”
“영어로…, ‘kissme3times’가 비밀번호거든….”
“푸하하하.”
나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그건 또 뭐냐? 평소의 욕구가 우 기자의 비밀번호로 남았나보지?”
우 기자가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평소의 욕구가 겨우 그 정도겠어?”
“그럼 비밀번호 바꾸시지? 좀 더 솔직하게.”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나?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거라서 말이지.”
어어? 가만! 이건 다른 여 기자들하고나 하는 농담 아냐? 지금 나하고 같이 산다고 나한테까지 이런 식으로 대하겠다는 뜻 아냐? 경계해야겠군!
“예술이고, 외설이고 밥이나 실컷 드시지?”
“어쨌든 컴퓨터는 그렇게 쓰도록 하고…. 음, 근데 내가 밥 안 줬음 울었겠다. 세상에…, 벌써 그렇게 많이 먹었어? 남자보다 더 빨리 먹는 여자라니…, 무섭다, 무서워!”
“줄 때는 언제고, 또 많이 먹는다고 난리야? 주지나 말든가.”
“농담이야, 농담. 우리, 밥 먹을 때 만이라도 좀 우호적으로 먹어보자. 소화나 되겠어?”
“그러니까 우 기자가 먼저 시비를 걸지 말란 말이야.”
“우리가 뭐 열살 짜리 애기야? 그만 좀 하자.”
그 말과 함께 휴전을 하자, 금세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저 인간과 나는 싸우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우 기자가 말했다.
“난 이제 싸우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이 기자하고 무슨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하! 저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진담이라고 하는 거야. 웃어줄까, 울어줄까?
“난 100년이 가도 우 기자한테 적응 못할 것 같은데.”
“어차피 못 견디는 사람이 나가면 된다, 이거야.”
“걱정마. 내가 꼭 이길 거야.”
“두고 봐야 알지.”
또 다시 썰렁한 분위기. 아, 밥 먹을 땐 왜 말을 안 하면 이다지도 썰렁한 것일까. 저 인간이 나갈 때까지 이렇게 썰렁한 식사를 계속해야 하나?
“이 기자.”
그래, 차라리 싸우기라도 하자. 말 걸어줘서 고맙다.
“아까 보니까 큰 짐은 없는 거 같더라?”
“왜? 그걸로도 시비 걸 게 있어?”
“세탁기 없어?”
“없는데.”
“그럼 지금까지 빨래 다 손으로 했어?”
“대부분은. 이불 같은 건 주인 아줌마 거 눈치보면서 빌려 썼는데.”
“이제부턴 어떻게 하려고?”
“손빨래 해야지.”
“바쁘고 피곤해서 그러기 힘들 걸. 욕실에 놓을 자리도 있는데 세탁기 안 살래?”
“필요하면 우 기자나 사든가.”
“나야 결혼할 때 새 걸로 장만해야지.”
“하! 그럼 나는?”
“이 기자야, 뭐, 계속 자취할 테니까 어차피 필요할 거 아냐.”
와, 저거 봐라. 저렇게 말도 안 되게 우기는 것 좀 봐.
“이 집도 싫은 사람이 먼저 나가는 거라며? 세탁기도 필요한 사람이 먼저 사는 거야.”
또 다시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평균 2분에 한번씩 썰렁해지는 이 분위기, 밥 먹는 분위기로는 죽인다, 아주. 이 놈의 된장찌개만 맛 없었어도 내가 안 참았을 텐데.
“빨래하면 어디에 널 거야?”
침묵을 깨고 우 기자가 물었다. 뭐가 저렇게 궁금한 게 많을까. 무슨 소풍이라도 나온 줄 아나.
“그런 것까지 합의해야 돼?”
나는 베란다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널면 되잖아.”
대답을 심드렁하게 하다가 속옷에 생각이 미치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우 기자가 곤란해하는 것을 보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다가도 필요하면 널고, 뭐.”
내가 얼른 대답했더니, 우 기자가 피식 웃었다.
“예로부터, 빨래는 햇빛 아래 말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교훈이었는데, 여기서 그 교훈을 접어야 하나?”
우 기자가 민망한 얼굴로 웃었다.
“내놓든지. 난 상관 없어.”
“이 기자 것도 햇빛에 말려. 그래야 좋대. 내가 무슨 변태가 아닌 이상, 그런 데 관심 안 둘 테니까.”
우 기자는 농담을 했나 보지만, 나는 민망해서 웃음이 안 나왔다. 어휴. 같이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할까. 앞길이 막막하구나.
그런 비우호적인 첫번째 식사를 같이 하고 나서 우 기자와 나는 따로 따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우 기자와 나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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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현정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 기자와 이 기자의 싸움은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혹시 눈치 채셨어요?
이 기자 = 이기자!
우 기자 = 우기자!
였는데^^
행복한 한주 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김현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