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흥 분

은하철도 |2004.04.06 08:28
조회 768 |추천 0
 

흥 분



"한달에 4명은 봐야 내 남자를 찾을 것 같다."

전철에 들어서는 찰라 눈에 들어온 광고문구다.  결혼상담소 광고인 모양인데 그 내용의 당돌함에 한참을 들여다본다.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서 있는 그림 위에 써 있는 문구는 은근히 성질까지 돋우는 것이다.


한달에 네 명이라면 일주일에 한 명씩의 남자가 목이 잘린다는 결론이다.  아무리 여성상위시대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남자가 추락해야 바닥이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가 슈퍼마켓에 진열된 물건인 줄 아나?  이제는 노골적으로 한달에 네 명은 잘라 버린다고 공언하다니,  쯧, 미쳤냐?  그 밑에다가 내 모가지를 들이대게......


일주일의 시간이면 당락이 결정된다.  아니다 싶으면 얼른 다른 남자를 또 봐야 한다.  스피드시대가 아닌가,  여자는 외모가 예쁘기 보다는 마음씨가 고와야 한다고 말하자,  어느 여자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요즈음 남자는 고운 마음씨를 발휘할 시간도 안 주어요." 

첫눈에 판가름 나서 추풍낙엽처럼 잘려나가는 못난 남녀의 모가지가 눈에 선하다. 


나는 일종의 충격에 빠져 들었다.  눈을 들어 사방에 붙여진 광고의 문구를 더듬기 시작했다.  "머리를 돌리자! 아름다운 왼편"  나도 모르게 눈알이 왼쪽으로 돌아간다.  옆에는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또 다른 광고를 본다. "아름다운 여자의 유혹" 글쎄...... 요즈음 세상에 저런 말투로 넘어갈 남자가 있을까?


광고문구는 계속 이어진다.  "기차로 달려가자.  순백의 첫눈세상으로......"  그 옆에 또 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여자의 입술" 쯧, 립스틱 광고인 모양인데...... 사방이 온통 광고문구로 가득 차 있다.  계단을 내려오며 두리번거리는데 또 하나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갈아타는 곳"

이것이 무슨 광고더라...... 입맛을 다신다.  2호선으로 갈아타라는 말이다.  헷갈린다.  네 명의 남자를 봐야 한다는 문구를 이것으로 바꾸면 어떨까, "한달에 네 명을 갈아타며 내 남자를 자른다."  광고문구가 참으로 선정적이다.  자극적인 문구만 골라서 사람의 시선을 끈다.


멍하니 "잠시 후에 열차가 도착하겠습니다."라는 안내전광판을 바라본다.  문득 저 편으로 지나가는 열차에 붙인 광고가 또 눈에 들어온다.


"흥분하라. 기회가 온다." 

무선전화국 광고인 모양인데, 전화와 흥분하고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뭐를 흥분하라는 말인가,  열심히 흥분해 주면 예쁜 여자라도 온다는 말인가,  한달에 네 명씩이나 모가지 치는 여자가?  좋다. 내가 흥분해 주마.  그런 여자라도 내게 안기게 해 주기만 해라.  모가지를 못 치게 그 여자를 황홀경으로 보내 주어서, 그 여자가 나하고 같이 살자고 울게불게 해 주마.  그러면 한 달에 네 명을 바꾸는 네 버릇이 고쳐질 것이고, 남자의 자존심은 회복될 것이다. 너는 기회만 주어라.  나는 흥분하겠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는 열차가 굉음을 내며 들어온다.  나는 흥분해 있었다.  씩씩거리며 한참을 흥분해 있는 내 눈에 열차에 붙어 들이닥치는 커다란 또 하나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우뚝 서서 당당히 어깨를 편 여자의 모습이 나를 내려다본다.  그 여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가랑이를 움찔 움츠리며 두 손으로 혁대 아래쪽을 가렸다.  별안간 흥분이 쫙 가라앉으며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광고표지 속의 여자는 크게 소리쳤다. 


"역시 크니 좋다."  00 연금공단.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