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뜩이는 섬광같이 짧고 강렬했던 삶의 흔적을 스크린에 남기고 떠난 영화배우 이소룡.
35년 전 죽음에 이른 배우가 21세기에도 살아남아 끈질기게 이소룡키드를 길러낸다.
그 시절 극장에서 이소룡을 봤던 세대와 지금의 10 ~ 30대에게도 여전히 이소룡은 영웅이다.
그는 원래 센 인간이였을까..?
“아뵤오~”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쓱 만지며 포효하는 그 남자.
잘 다듬어진 몸매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그남자. 이소룡!

시대의 아이콘을 남은 이소룡을 모든 것을 분석해 보자!
1. 이소룡과 영화

1969년 이소룡은 처음으로 미국영화에 출연하게 되지만 자신의 조연적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이후, 이소룡은 ‘당산대형’에서 첫 주연을 맡는데, 이 영화는 전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순식간에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는다. 이후 그는 다시 두 개의 성공작을 찍게 되는데, 바로 ‘정무문’과 ‘맹룡과강’이 그것이다. 특히 ‘맹룡과강’에서는 그가 극작가, 감독, 주연, 그리고 무술 안무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1973년 이소룡은 골든 하베스트사와 워너 브러더스사의 최초의 공동제작 작품인 ‘용쟁호투’의 주연을 맡게 된다. 이 영화로 인해 이소룡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촬영이 종료된 후 몇 달 후, 그리고 불과 개봉 3주전에 이소룡은 갑작스레 사망하고 만다.
‘용쟁호투’는 그 해 최고 수입을 올린 영화가 되었고 이소룡이 무술의 전설로 남기게 된다.

이소룡은 홍콩과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는 기존 홍콩의 무술 영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그가 제작한 영화의 특성과 분위기는 이후 홍콩 뿐 아니라 세계의 무술계와 무술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소룡은 특히 그가 제작한 영화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자존심과 민족주의로 인해 중국내에서 우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2. 이소룡과 무술
>>스승 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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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사부로 잘 알고 있는 엽문(葉問)은 바로 불산의 명문세가의 일원이었다. 엽문은 어려서부터 진화순을 따르면서 영춘권을 배웠다. 그리고 이후 홍콩에서 우연히 량찬의 제자 량벽을 만나서 영춘권을 전수받고 불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40년대 전란을 피해서 홍콩으로 와서 정착하고 도장을 열어 후학을 지도하였다. 영춘권은 이때부터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엽문이 제 1대 제자들 중에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배우이자 무술가로 잘 알려진 이소룡도 그중 한명이다. 영춘권은 서양무술계의 추앙을 받는 중국무술의 하나로, 이는 이소룡이 영화배우로 이름을 떨친 후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영춘권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배우는 중국무술중 하나이다.
영춘권(詠春拳)은 전문격투무술의 하나이다. 초식이나 고정된 형태가 없어서 모든 것이 변화로 시작해서 변화로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상대, 병기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그들이 취하는 형태가 수시로 변한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이론은 영춘권의 역대 수련자들이 실전의 경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쌓아온 노력의 정수라고 할 수가 있다.

이소룡의 스승이였던 실존 인물인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오는 4월 16일 개봉예정이라고 한다.

이소룡이 존경했던 단 한 사람
1930년대 중국, 수많은 무술가들의 메카가 된 불산. 그 곳에서 ‘엽문’은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영춘권의 고수이자, 백전불패를 자랑하는 신화와 같은 실력으로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해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산은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먼저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불산의 무술가들을 비열한 방법으로 하나하나 격파해 나간다. 심지어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무술가들이 늘어가자 엽문은 큰 충격에 빠진다. 그 후 엽문은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던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국민들이 일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무예를 가르치며,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무술로 일본에 저항하는데...
>>절권도

“이소룡의 절권도는 과거 무도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단순한 무도가 아니라 오직 싸움에 이기기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절권도는 우리에게 뒤돌아 볼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길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부르스 리, <절권도의 길> 중에서 -
절권도는 기존의 중국 전통 무술이 제한되었다는 생각을 가진 이소룡에 의해서 창시되었으며, 가르치는 것은 정리된 합리적인 사고와 동작이다. 이소룡은 직접 정리한 무술체계가 변질되는 것을 우려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지도자격을 주었고 지금도 역시 소수의 사람에게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밸런스, 유연성, 스피드가 절권도의 중요 삼요소라 할 수 있으며 기존의 무술이 형이 집착하고 반복되는 동작을 통해 몸에 익히는 방법이라면 절권도는 군더더기를 배제한 필요한 곳에만 몸을 움직이는 실전 무술이다. 바른 자세로 몸의 균형을 잡고 뻣뻣하게 굳어있지 않고 빠른 속도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것… 그것이 절권도의 묘미!
3. 이소룡의 트레이드 마크
_쌍절곤 & 노란 트레이닝복 (일명 쫄쫄이)

이소룡 유작 ‘사망유희’는 이소룡 시나리오 감독작으로 용쟁호투 촬영과 겹쳐 완성되지 못하고 사후 제작된 작품으로 이소룡 대역 김태정 출연하여 완성시켰다. 이 영화속 노란 트레이닝복과 쌍절곤은 이소룡의 상징이 됐다.
‘사망유희’는 생전의 이소룡이 찍어놓은 대결장면들만으로도 그 가치가 큰 영화이다. 5층탑을 올라가며 각층의 고수들과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은채 대결을 펼치는 그의 모습은 놓치기 힘들다.

‘악동’이라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동서양의 액션과 문화, 영화제작 기법을 뒤섞어 만들어낸 영화가 ‘킬 빌 Vol.1’이다. ‘킬 빌’에는 감독이 평소 좋아했다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와 홍콩 무협액션, 추억 어린 이소룡의 노란 트레이닝복 패션(사망유희)이 등장한다.
그외에도 많은 영화 속에서 이소룡의 아이콘을 찾아볼 수 있는데 ‘말죽거리 잔혹사’의 경우 1970년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들의 판타지는 이소룡으로 압축된다. 또한, ‘플라이대디’에서 어리숙하고 착해빠진 아빠는 스스로 강해지고 단단해지기 위해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4. 싱하형

온라인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른 싱하형.. ‘싱하형’은 디카 정보교류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에서 활동했던 닉네임이다. 주로 본문과는 상관 없는 댓글을 달며 “굴다리로 뛰어와라” “형이 애정이 있어서 패는 거다” 등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홍콩의 액션스타 이소룡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고 해서 네티즌들은 이소룡 사진을 합성한 ‘싱하형’ 패러디 포스터를 만들어 각종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의 백과사전과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그는 젊은 층 사이에서 화제의 인물로 통했다.
5. 광고 속 이소룡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이소룡. 한 자동차보험 광고 속에서 등장하는 이소룡은 첫 장면에서 ‘竹島’ (죽도;우리 나라 독도의 일본식 표기)로 표기된 현판을 호쾌하게 부수는 장면등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그 당시 영화 장면이지만 액션 스타로 기억하고 있는 기성 세대와 ‘싱하형’을 연상하는 신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이 광고로 매출 상승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하니, 우리의 액션 스타 이소룡 오빠…아직 죽지 않았구나 싶다. ^_ ^v
6. 이소룡 휴대폰

핀란드 휴대폰 브랜드인 노키아(NOKIA)에서 액션스타 이소룡의 생일에 맞춰서 홍콩, 대만등 중화권에서 출시된 ‘N96 Bruce Lee Edition’..가격은 무려 1300만달러..한화로 188만5천원이라고 한다. 일반판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소룡의 얼굴과 싸인이 인쇄된 케이스가 제공외고 액션 피규어와 이소룡 얼굴과 쌍절곤 액세서리가 달린 휴대폰 스트랩! 이 스크랩에는 이소룡의 명언인 ‘무한으로서 유한을 상대하고 무법으로서 유법을 상대하라’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