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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임게이(i'm gay) - #3-2

夜記(야기) |2004.04.14 17:54
조회 406 |추천 0

** 내일은 선거.... 누굴뽑을지 모를만큼 어이없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할일을 대신해줘야 겠죠? 뭐 요즘에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주인처럼 행세 하려 해서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선거... 해야겠죠? **

 

 

chapter 3-2

 

 

떨리는 손으로 엔터를 치고 야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선택한 길은 바로… 인터넷 게이 동호회를 찾는 것. 뭔가 탐색하는 듯한 차가운 준원이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선택하긴 했지만 역시 내키지 않는다.

왠지 이러다가 정말로 게이의 길로 들어서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야기는 살짝 실눈을 뜨고 뭔가 끔찍한 거라도 보는듯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냥 평범한 사이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게 뭐냐? 실명인증을 하라고?”

 

메인 화면이 나오기도 전 대문에는 회원가입을 하라는 안내문이 덩그렇게 떠 있었다.

 

“뭐야, 이거. 주민번호도 넣어야 해?”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리지만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야기는 움직이지 않는 손을 간신히 들어 시키는 대로 회원가입을 했다.

그와 함께 나타난 환영 메시지.

 

-레인보우의 식구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사이트는 게이, 레즈비언의 권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먼저 자게에 가입인사를 해주세요. 레인보우와 함께 행복한 이반라이프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자게가 뭐냐. 아, 자유게시판?”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입인사를 열심히 쓰고 있는데 쪽지가 도착했다는 안내음이 들렸다.

 

“누가 날 안다고 쪽지를 보내고 그래?”

 

망설이다가 클릭하니 정팅이 있으니 참가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늘? 지금?”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야기는 혹시라도 게이의 생활에 대해 배우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챗방의 주소를 클릭했다.

 

-어서 오십시오. 귀무자 회원님.

 

조각달  : 안녕하세요.

매깡    : 어서오세요

디키    : 첨뵙는 분이네요

귀무자  : 안녕하세요

디키    : 자기 소개해요

매깡    : ㅋㅋㅋ 디키형 역시 방장!

디키    : 그래, 난 반장체질이다

조각달  : 근데 오늘은 사람들이 별로 없네

디키    : 금욜인데 다들 나갔겠지

매깡    : 그걸 알면서 하필 정팅을 금욜로 잡고 그래

디키    : 그러니까 금욜로 잡은거지 금욜에 이야기할 사람마저 없으면 얼마나 서운하냐

조각달  : 역시 울 자갸는 속도 깊다니까

디키    : 우웨웩 또 앤자랑 아아 우리 형은 안 오나

매깡    : 전화해봐

조각달  : 야 귀무자님 삐진다 얼른 자기소개하자

귀무자  : 아니요 괜찮은데요;;

매깡    : 80/ 서울/ 앤없음

조각달  : 79/서울/ 미혼 근데 매깡아, 너 나는 앤으로 안 보이냐

매깡    : ㅋ ㄷ 솔직히 자네가 내 앤은 아니잖우

디키    : 우와 달형님 화났다

조각달  : 넷앤이라고 해도 앤은 앤 지금 나 무시했어

매깡    : 어허 신입한테 혼란을 주지 말자고

디키    : 84/ 경기/ 열애중 입니다!

매깡    : 열애중 좋아하네 목하 짝사랑중이겠지

디키    : 이거 왜 이러셔 내가 찍어 안 넘어가는 놈 못 봤어

매깡    : 그러셔? 헹

디키    : 앤없는 세월이 길었다고 심술궂어지면 사랑 못 받는다

조각달  : 괜찮아 내 품으로 뛰어들면 너그럽게 받아주마 

매깡    : 쳇 됐네 늑대한테 홀랑 먹히고 싶지는 않음

조각달  : 다들 조용히 좀 해 루키 신상명세 좀 듣자

귀무자  : 저, 저요?

조각달  : 네 ^^

매깡    : 자, 얼른 밝혀주셔용

디키    : 기대기대 *_*

귀무자  : -_-;; 83/ 서울/ 애인은 없구요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매깡    : 털썩

조각달  : -_-

디키    : 와아 동지다 동지

매깡    : 그럼 게이임을 자각한게 그 사람때문?

귀무자  : 뭐, 그런 셈이죠

디키    : 오오 로맨틱해

조각달  : 그 사람도 게이?

귀무자  : 아니요

디키    : 슬픈 사랑이 여기도 하나

매깡    : 뭐야 그럼 아직 기회는 있네

 

진땀을 흘리면서 야기는 휙휙 올라가는 내용을 훑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수다는 근 한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

채팅을 하다보니 처음 무서워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명랑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 야기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말투라던가 노골적인 용어들에는 적응이 안돼 버벅 댔지만.

사람들과 쉬이 친해지지 못하는 자신이건만 이 사람들의 질문공세를 받다보니 어느새 어울려 웃고 떠들고 심각해하고 있었다.

이런게 바로 인터넷의 매력인가 싶다.

 

똑똑

 

“나 잠깐 들어가도 돼?”

 

빼꼼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준원, 야기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

“정팅.”

 

그 와중에도 올라오는 글들이 빠르게 위로 올라간다.

세명밖에, 아니 자신까지 합쳐서 네명인데 어쩌면 그렇게 말들이 많은지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정팅?”

 

의아한 얼굴로 묻는 준원에게 야기는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예상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준원이 봐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겠는가.

 

“가입한 동호회.”

“동호회 활동도 했어? 이게 뭐야? 레인보우? 뭐하는 덴데?”

“그게…”

“아, 게이 동호회?”

“응.”

“그렇구나.”

“그런데 무슨 일?”

“아냐, 별거 아니니까 괜찮아. 하던거 계속해. 방해해서 미안하다.”

 

준원은 야기의 방을 나와 휴 한숨을 쉬었다.

 

“그것봐, 괜한 의심이었다니까.”

 

생긋 웃고 준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며칠동안 바보 같은 고민으로 속을 끓인 자신이 부끄러웠다. 물론 야기가 수상하기는 했지만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그래, 어느 누가 자신이 게이라는 거짓말을 할까.

게이인 사람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해하지만.

 

사람을 가리는 자신으로서는 드물게 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는 아마 그 솔직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낯가리고 새로운 사람을 잘 못 사귀는 스스로가 진절머리 나서 일부러 룸메이트가 있는 집에 들어가 보기로 한건데 마침 만난 사람이 야기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고 자상한 야기는 사람에 대해 피곤해하는 준원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모나고 차가운 사람인데 야기는 아무렇지 않은듯 늘 다정하게 대해준다.

너무 가깝지 않게 그리고 너무 멀지도 않게 자신의 속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의 거리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준원은 그런 야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덕분에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겨났다.

 

“고마워, 야기야. 거짓말이 아니어서.”

 

언제부터 이렇게 야기에게 의지하게 되었을까.

준원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준원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에서 찬 주스를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다음날, 야기는 어제밤의 정팅의 영향으로 새카맣게 죽은 눈밑을 하고 ‘부르고뉴’의 문을 열었다.

무슨 사람들이 지치지도 않는지, 야기는 꼬박 6시간을 정팅에 매달려야 했다.

그냥 나와도 될 것을, 야기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빛을 발해서 사람들이 붙잡으면 주저앉고 앉고 해서 어쩌다보니 4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새삼 야기는 자신의 성격이 한심스러웠다.

그뿐이 아니다.

물론 스스로도 계산속이 있어서이기는 했지만 몇 명과 핸드폰 번호까지 교환한 것이다.

친해두면 준원에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번호를 준 건데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뭔일이야 있겠냐며 스스로를 달래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그 사람들이 무슨 삼두육비 괴물도 아니고… 얘기해보니까 다들 좋은 사람들이던데. 내가 너무 오버야.”

“뭐가?”

 

불쑥 끼어드는 효윤이의 목소리에 야기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만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날, 응?”

“캬하하, 바보!”

“야! 박효윤, 너!”

 

야기는 앞에서 혀를 쏙 내밀고 웃는 효윤을 보고 힘이 쭉 빠졌다.

키득거리며 야기를 보는 저 녀석은 박효윤, 아르바이트생이다.

원래 정통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는 아르바이트는 쓰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죄다 프랑스어로 된 용어들이 난무하는 곳이라 전문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신히 맞춰놓은 직원이 오픈한지 사흘만에 개인사정으로 그만 둔 후 죽고 싶은 심정으로 망연히 앉아있었을 때, 쨘하고 나타난 인물이 바로 효윤이었다. 서빙이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한 것이, 손님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먹으면 그만 수준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고 만다.

그래서 프랑스 레스토랑은 직원 구하기가 성공의 관건이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짜놓은 로테이션을 망가뜨리면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아쉬운 대로 스스로 해볼까 싶던 찰나에 찾아온 구원의 천사가 저 웬수였던 것이다.

 

‘젠장. 나중에야 그게 천사가 아니라 악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너무 평판좋은 이야기에는 늘 함정이 있기 마련이지.’

 

어찌됐든 그때, 야기에게 효윤이는 정말 천사로 보였다. 프랑스 요리에도 익숙했고 매너나 테이블 용어도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스무살짜리가 이렇게 익숙한거야! 라고 불평하고 싶어질 정도니까 뭐. 쉐프가 소개한 만큼 납득은 했지만 말이다.

덕분에 야기쪽에서 보자면 약점을 보인 상대지만 효윤인 일도 잘 했고 성실하기까지 해서 지금은 가게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재였다. 다만 왜인지 남들한테는 그렇게 상냥하면서 야기에 대해서만은 악마로 돌변하고 만다.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입은 멍하니 벌리고서. 침 떨어지겠다.”

“엣?”

 

놀라서 슥 입가를 만지는 야기를 보며 효윤이 다시 배를 잡고 웃는다.

아아, 이 사람을 놀리는 재미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것인가.

 

“너어!”

“그걸 진짜로 믿는 형이 이상한 거야. 애냐, 그런 거에 속게?”

 

한심하다는 듯이 말해도 아직 눈가에 웃음기가 배어있다.

아무래도 효윤인 자신을 놀리러 가게에 나오는 것 같다는 단정을 내리며 야기는 샐쭉 토라진 얼굴로 흥, 하고 시선을 돌렸다.

 

“형, 삐쳤냐?”

 

아무튼 한마디를 해도 절대로 이쁜 소리는 안 하지. 야기는 효윤을 노려보다가 끄떡도 하지 않는 효윤을 계속 보기에는 너무 눈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효윤아, 나 물어볼게 있는데…”

“뭔데?”

 

야기와 효윤이 사이가 좋은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하나는 늘 놀림을 당하는 야기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붕어대가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효윤이 의외로 세심하게 야기를 챙겨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야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게이 중에 혹시 아는 사람 있냐?”

“…”

“뭐냐? 그런 눈초리는?”

“형, 혹시 게이였어? 그래서 이렇게 매력적인 나를 보고도 끄떡 안한거야?”

“점심 잘못 먹었냐?”

“한 사람 소개 시켜 달라구? 게이로다?”

“야, 조용히 햇!”

 

야기는 황급히 효윤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청소기를 돌리는 중이라 소란스러워서 누가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읍! 읍!”

 

답답한 소리에 효윤을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야기는 잠시 이대로 이 녀석을 없애버리는 게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계산하다가 주위에 증인이 너무 많은 관계로 포기했다.

 

“날 죽일 생각이야?”

 

바락바락 소리지르며 대드는 효윤을 보며 야기는 역시 아까… 따위를 중얼거리다가 효윤에게 두 대 더 맞았다.

 

“아파, 무슨 기집애가 손이 그렇게 맵냐.”

 

눈물을 글썽거리는 야기를 그래도 분이 안 풀린 눈으로 흘겨보던 효윤은 부르르 떠는 주먹을 치켜들어 야기의 징징거림을 일소했다.

 

“근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는 사람중에 있어 없어?”

“있긴 있지… 무슨 일인데 그래?”

 

그래도 아까의 일이 미안하긴 했던지 이번엔 제법 주위도 둘러보고 귓속말 식이나 해주는 효윤에게 야기는 펄쩍 뛰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냐! 이게 정말 남의 장가길을 망치려나 보네.”

“그럼 왜? 이유나 좀 알자.”

“아니, 그게… 좀…”

 

동호회에 든 목적 하나가 바로 야기의 굳히기 한판의 일환으로 실제 게이를 집으로 부른다, 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계획은 무리가 있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야기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어 불렀다고 오해하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대로 말하고 양해를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서 생각다 못해 미리 언질을 주고 사람을 조달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야기에게 게이라고는 외계인보다 더 먼 인종.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넓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무리 주위를 찾아봐도 게이랑 친분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바로 효윤이 하나뿐이었던 것이다.-애가 워낙에 특이하니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효윤이에게 말을 꺼낸 순간 후회하고 말았지만.

 

“아아, 됐어. 잊어버려.”

“무슨 일인지 말해주면 협력해 줄 수도 있는데.”

“아는 사람 있어?”

“있긴 해.”

 

야기는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효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다 하는 것은 곤란하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잘 지켜진다고 했던가.

 

“그건 말하기 좀 그렇고… 아는 사람 있으면 나 좀 만나게 해 주라.”

“목적도 모르는 일에 소개시키긴 좀 그런데.”

“효윤아아아아아~ 일생의 부탁이다. 제발, 응? 제바알~”

“시끄러워! 그 코맹맹이 소리 당장 집어치우지 못해?”

“효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효윤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만 하랬지!”

 

끔찍하다는 듯 귀를 두 손으로 막은 효윤일 보며 야기는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왠만한 일론 끄떡도 하지 않는 주제에 질색이라는 얼굴로 귀를 틀어막은 효윤을 보며 약점을 잡았다 싶었다.

 

“제발, 응? 제에바아알~”

“뭐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돼.”

“효윤아아아아아~”

“무슨 일인지 설명하면. 아무리 형이라도 좀 그렇단 말야.”

“쳇. 됐다. 치사해서 안 물어본다.”

 

그리하여 삐친 야기는 하루종일 효윤의 말에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야기는 준원과 마주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준원이 해놓은 오이냉국을 들이키는데 준원이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저기, 야기야.”

 

시원한 냉국을 마시면서 야기는 눈으로 말해,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애인 있으면 나 좀 언제 한번 보여줘.”

“켁!”

 

시원하지만 고추가루와 마늘이 들어간 냉국은 매웠다. 특히나 그것이 식도로 넘어가다 뜻밖의 말에 괘도를 이탈하고 기도로 흘러 들어 가는 경우라면 더욱.

야기는 사래가 들린 목을 붙잡고 괴로움에 방방 뛰어야 했다.

 

“괜찮아?”

 

켈록켈록 기침을 하면서 야기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단 채로 준원을 바라보았다.

어째 준원이가 요즘 자꾸 자신을 놀래키는 것 같다는 원망을 담아.

그러나 준원이는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야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야기는 그 사랑스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

 

‘호, 혹시 아직 의심을 다 푼게 아니었던 걸까? 아직도 내가 수상해서 떠보는게 아닐까?’

 

야기의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준원이 아직 자신을 의심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야기는 사색이 되었다. 이제 겨우 자신의 존재를 익숙하게 만들었는데 지금 와서 이제까지의 시간들을 헛수고로 만들 수는 없었다. 야기는 정말로 울고 싶은 것을 참고 호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소개시켜 줄게. 날 잡아라.”

 

자신의 말에 환하게 웃는 준원을 보며 야기는 끄응, 비오는 날 문밖으로 쫓겨난 개처럼 불쌍하기 그지없는 참담한 신음을 흘려내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야기는 어제 그토록 무시했던 효윤이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불러다 앉혀놓고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효윤이가 호탕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그것도 애처럼 유치하게 심술을 부렸으니 화가 나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했다. -스스로도 자신이 한 짓이 참으로 유치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는 야기였다. 그러나 그 유치한 행동들 떼어버릴 수 없음이 딜레마라면 딜레마일까.-

 

“뭘 그렇게 멍청하게 봐?”

“내, 내가 뭘?”

“당신은 말입니다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얼굴에 보입니다요. 뭔가 좋은 일 있어?”

“다 보인다며? 그럼 맞춰보지 그러냐.”

 

지금까지 고민하던 것을 잊고 우선 놀림 받은 것에 빽 토라진 야기.

덕분에 효윤이가 먼저 말을 걸어준 사실도 잊어버린 듯 하다.

이러니 뒤돌아서면 까먹는 붕어대가리라고 불려도 할말은 없으리라.

참고로 야기의 가게 내 별명은 깡통로봇, 물론 효윤이 붙여준 것이다.

그에 발끈한 야기는 효윤을 변신마녀라고 부른다.

 

“말해봐. 어제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긴 한거지?”

“그렇게 티나냐?”

“응.”

“난, 그 정도로 단순한 녀석인가…”

“형이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라고.”

 

단호한 녀석의 말에 야기는 잠시 자신이 그렇게 즉물적인가 싶어 반성했다.

곧 이어 떠오른 준원이의 말. 어깨가 축 쳐진다.

힘없이 축 늘어진 야기가 한숨까지 불어내자 효윤은 이거 큰일인가 싶어서 바짝 긴장했다.

어째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데. 요 며칠 야기는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이상해 보였다. 더구나 게이를 소개시켜 달라질 않나, 혹시 야기가 스스로를 게이라고 자각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의심까지 드는 것이다. 물론 야기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을 하긴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그럴듯한 추측이라 효윤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윽고 뭔가를 결심한 듯 야기가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그리고 처음부터 준원이와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할 거라면 처음부터 차근히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마지못해 준원이 이야기를 하는데 효윤이 눈을 빛내며 ‘어머, 정말?’, ‘그래서?” 등등 맞장구를 치자 야기는 홀라당 이야기하는 재미에 넘어가서 신이 나게 준원이 이야기를 했다.- 원래 애인자랑은 신이 나는 법이다. 짝사랑이라고 해도.- 고3때 이야기, 이름으로 놀림받았던 사연, 그리고 드디어 그녀를 다시 만난 상황… 드디어는 쪽팔리는 대처까지, 야기는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죽 듣고 있던 효윤이 입을 열었다.

 

“그게 뭐야? 그럼 상황종료잖아.”

“에?”

“끝장났다고.”

“왜?”

 

멍청하니 반문하는 야기를 보고 효윤인 아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게이라고 했다며?”

“그게 왜?”

“게이를 혐오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일단 게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먼저 들지 않겠어?”

“그치만… 준원인 전혀 그런 기색 없었는데?”

“그런걸 티내는 사람은 형 정도니까.”

“뭐야, 그게. 지금 나 단순하다는 소리지?”

“이럴땐 빠르네.”

“야!”

“일단 들어봐. 내가 만약 그런 소릴 들었다면 그랬을 거 같아. 별로 호모포비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이라는게 일반적인 것도 아니잖아. 나한테 누가 와서 저 게입니다, 그랬으면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거라는 거지.”

“그래서?”

“형이 아무리 그 여자한테 잘 해주고 공을 들여도 그 여자가 형을 남자로 보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 시작하기도 전에 끝, 상황종료!”

“……?”

“해보기도 전에 게임오버.”

“에엑? 그게 그런 거야?”

“당연하지, 바보.”

“헉, 그게 왜 그렇게 된다냐. 그럼 어떻게 해야돼? 그냥 사실대로 불어야 돼?”

 

야기의 머리속으로 진실은 최상의 방책이라는 말이 통통 튀어올랐다.

 

‘역시 사실대로 말하고 처분을 기다려야 할까? 설마 좋아서 그랬다는데 날 죽이기야 하겠어? 아니지, 지금 죽이는게 문제가 아니라 준원이의 마음을 얻는 게 문제지. 아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야기는 간절한 눈으로 효윤을 바라보았다. 왠지 효윤이라면 이 문제에 답을 내 줄 것만 같았다. 물가에서 간신히 손을 내밀어 잡은 지푸라기처럼 야기는 효윤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아파, 형.”

 

그러나 효윤의 말은 이미 반쯤 현실을 떠난 야기의 귀에 들릴 리 만무, 야기는 집요하게 효윤의 입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서 나올 답을 기다리면서.

 

“그냥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거야?”

“미쳤어?”

“왜에?”

“어휴, 이 맹탕.”

“그럼 어떻게 해?”

“여자들은 말이야,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거짓말하는 걸 엄청 싫어해. 특히 남자가 뭘 숨기거나 거짓말한 경우라면 그건 볼 필요도 없이 아웃이야. 특히 형은 좋아한다는 것부터 숨긴 거잖아. 내가 그 여자라면 어떤 경우라도 형은 안 만날걸.”

“그럼 어떻게 해! 난 준원이랑 가까이 있고 싶었단 말야.”

“더구나 뭘 바라고 거짓말하는 남자는 최악.”

“내가 뭘?”

“룸메이트로 있어주길 바랬잖아.”

 

끄덕.

 

“형을 편하게 생각해 주길 바랬지?”

 

끄덕.

 

“게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곁에 있고 싶었지?”

 

끄덕.

 

“그러다가 어떻게 잘 되길 바랬고. 구제불능이네, 이 남자.”

“헉! 그럼 나, 최악의 남자가 된 거야?”

“말하긴 싫지만 상황이 그래.”

“어떻게 해, 효윤아, 나 어떡해. 정말로 준원이가 날 그렇게 생각할까?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 정말 최악의 남자인 거야? 어떡해, 엉엉~”

“조용히 좀 해.”

“엉엉엉… 나 어떡하니…”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넋이 나간 야기는 끅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한심한 눈으로 야기를 보던 효윤은 혀를 끌끌 차다가 징징대는 소리에 짜증이 밀려드는 바람에 그만 머리를 감싸쥐고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조용히 좀 해 봐, 좀!”

“우와와와왕~”

 

효윤의 신경질에 야기는 더욱 큰소리로 울었다. 그 기막힌 꼴을 보고 효윤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런 웃기지도 않은 모습까지 보면서 야기가 싫어지지 않는지 스스로도 불가사의다.

상상도 못해본 상황에 울고 싶은 사람은 바로 효윤 자신이었다.

야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거짓말까지 하다니… 그 주변머리에 참 용타 웃고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는 모습 또한 보기에 힘들었다. 효윤은 내색하지 않으려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래서 게이를 소개시켜 달라고 한 거야?”

“응. 요즘 준원이가 부쩍 의심이 늘어서… 내가 여러가지 실수했거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게이를 눈앞에 떡하니 보여주면 괜찮을 것 같아서. 근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거든. 너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물었던 거야.”

“일단은 형이 거짓말했다는 걸 들키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고 우선 내 친구 소개해 줄 테니까, 의심을 풀도록 해.”

“정말? 고마워! 고맙다, 효윤아! 안그래도 준원이가 애인을 소개시켜 달라기에 그러마 해버렸거든.”

“……일이 너무 꼬여 버려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네.”

 

말을 마치고 효윤은 우울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 돌아섰다.

남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 잘됐다, 만세 따위를 외치는 바보를 왜 좋아하게 된 건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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