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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1 ] semiclassic 365일 빈터 -- 중학교 3학년 새아씨

시아 |2004.04.18 10:56
조회 4,328 |추천 0

대청소를 마치고 즐거운 기분으로 글을 올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봄날은 ~~ 간다!

 

노래가 절로 나오는 날씨네요. ^^*

~~~~~~~~~~~~~~~~~~~~~~~~~~~~~~~~~~~~~~~~~~~~~~~~~~~~~~~~~~~~~~

 

 

 

' 365일 빈터'

 

 

 


그때,

 

내 마음의 빈터에는 늘 모래바람이 불고 ,

 

메마른 풀씨들이 날아 다녔다.

 

어느 더운날,

 

갈증을 풀어주는 소나기 한줄기 내리더니

 

어느새!

 

우뚝 서있는 향그런 나무 한그루 !

 

 

 

 

 

 

 

 

 

 

 

                           ★               ☆              ★

 

 

 

 

 

 

 


#1 중학교 3학년 새아씨.

 

 

 

 

 

 

 

 

 

 

 

 

 

 

“홍아!”


“예.”

 


“ 네가 은섭이 딸이란 말이지. 홍이! 멀끔한 처자가 다 되었고 만……근데,


   그래, 팔을 훠~히 드러내 놓는 옷을 입으면 모씬다.”


“ 예, 중학교 삼 학년입니다. 열 여섯 살이고요.


   이 옷은 교복인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단정한 옷인데요.”

 


“ 올해 몇 이라꼬, 이제 열여섯이나 됐으만 시집을 보내야 겠구만,


   알고 있겠지마는, 니 한 테는 정혼(定婚)자가 있다. 좋은 가문에 출중한 학자지.


   내가 곧 택일을 해서 연락을  할 테니까  집에 가서  니, 이모한테 준비하라 캐라.”


“ 네?”

 


그 날, 대구 역을 빠져나오는 비둘기호 열차는 정말 덥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다 안될 정도였다.  분지

 

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덥고 끈적거리는 느낌의 바람이 등을 스쳐 갈때는 그예 두 사람은 거의 질

 

식사 할 지경이었다.


꽉 맞아서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교복은  홍이의 가슴과 엉덩이를 다 감당하지 못하고 찢어져 버

 

릴 것 같았다. 가슴이 커지면 멍청해 보일까봐  늘 꽉 맞는 브래지어를 하고 뜀박질을 하고도 엉덩이가

 

커질까 봐 털썩 주저앉지도 않았건만 어느새 홍이의 가슴과 엉덩이는 주책 맞게 자꾸만 자라나서는 기어

 

코 홍이의 별명을 '엉뚱녀'( 엉덩이가 뚱뚱하다고)로 만들어 놓았다.

 

 

 


중학교 3년 내내 빨아대서 이미 교복은 삭을 대로 삭아서 서서히 올이 나가고 있었다.


사실 언제 터질지 몰라서 홍은 언제나 바늘과 실, 그리고 올만 나갈 때를 대비해서 무색 매니큐어까지 가

 

지고 다녔다.  갑작스럽게 꼬장꼬장한 안동 김씨 집안의 학자이시던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려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이 더운 날 교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세상에 남아있는 단 하나뿐인 홍이의 피붙이인 할아버지는 희귀하게도

 

아직도 대구에서 조그만 서당의 훈장 님으로 살고 계시고 반대했던 결혼을 했다고 집안에서 내쳐져 살던

 

홍이의 부모님은 홍이가 갓난아기 때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홍이는 멀쩡한 처녀였던 이모

 

의 손에 키워져 왔다.

 

 

 

 


난생 처음으로 이모의 병원비가 급해서 찾아간 것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할아버지라는 분은 이 더운

 

여름에 저렇게 싸매고 앉아서 부채하나 딸랑 들고는 땀 한방울 안 나는 얼굴로 황당한 말만 하는 거였다.


결국 홍이는 돈 이야기는 입밖에 꺼내보지도 못하고 두시간 동안 웬 정혼자 이야기만 듣다가 나와 버렸

 

다.  황당하고 웃기고 기가 막혔다.  태어나기 전부터 홍이에겐 정혼자가 있다는 거였다.  손녀딸을 낳으

 

면 그 이상한 집안에 손자와 정혼하고 결혼시키기로 양쪽 집안의 할아버지들께서 약속을 했단다.   홍이

 

는 기가 막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노인네 무시해야지. 다시는 안 찾아 갈 거다. 얼마나 웃기는 말이야’


 라고 역까지 오는 동안 줄기차게 중얼거리며 홍이는 간신히 답답한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있었다.  숱이

 

많아 아주 까맣게 보여 더운 여름 더욱 답답해 보이는 단발머리와 가슴이 너무 커져서 조금만 숙여도 터

 

져 버릴 것 같은 교복 때문에 홍이는 가만히 화가 난 듯이 입을 앙 다물고 앞자리에 앉은 고등학교 이 학

 

년 교복을 아주 깔끔하고 단정히 입은 샛님 같은 유유를 딱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이얀 얼굴에 깔끔한 금테 안경을 쓴 유유는 홍이 에게  조금전 산 차가운 오렌지 쥬스을  갑자기 볼에

 

가져다 대주며 빙그레 웃었다.


내미는 손에 들린  캔을 보며 홍이는 가슴이 너무 벌렁거려서 교복이 터져 버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 난 유유 오빠가 너무 좋다. 저렇게 웃을 때면 가슴이 벌렁거려 터져 버릴 것 같아.


 어른들 말처럼, 콩껍질이 쓰인 것이 틀림없어.'

 


“ 괜찮아.  안 먹어도 돼. 피~ 이! 오빠 산다는 책은 샀어?”


“음료수가 싫으면……”

 


유유는 가방을 뒤적여 커다란 초콜릿을 꺼내  내밀었다.

 


“ 괜찮은데, 할 수 없지 뭐. 먹기를 원한다면야.”


“받아, 손부끄럽잖아. ”

 


“ 남자가 웬 과자를 이리 많이 갖고 다니 노.  기왕 먹었다 소리들을 낀데 그것도 조. 마실 꼬야”


“ 아까 너 기다리면서 역 매점에서 샀어. 점심도 안 먹었지.”

 

 


멋쩍게 웃는  유유를 바라보며 홍이는 헤~ 하고 웃으며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빨리빨리 먹었다. 달콤하

 

고 쌉쌀한 초콜릿은 맛은 마치 지금 유유를 보고 있는 홍이의 마음 같았다.

 


' 난 유유 오빠가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아니 내가 고등학생만 되도 사랑한다고 말 할거야. 아무래도 지금

 

내 이런 기분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틀림없어.'

 

 


이모를 짝사랑하던 유유의 아빠 유호상씨와 유유가 있었기에 아픈 이모와 홍이는 지금껏 살수 있었다.

 

이제 이모는 얼마 살지 못하겠지만 홍이는 유유와 유유의 아버지를 믿었다.

 


“ 오빠, 요즈음 세상에 정혼자가 있었다고 그 사람이랑 결혼을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말 웃기

 

지 않아? ”


“ 그게 무슨 소리야? 웬 정혼자.”

 


“ 글쎄, 생전 처음 보는 우리 할아버지라는 분이 그러시더라. 두시간 동안 붙잡고  뜬금 없이 시집가야 된

 

다는 거야. 웃기지? 오우 ~ 정말 대단한 할아버지셨어.”


“ 뭐?”

 


“오빠! ”


“응? ”

 


“ 아니야.”

 


아니라고 말했지만 홍은 사실 묻고 싶었다. '오빠? 나 얼만큼 좋아해.' 하고 말이다.


'짱구~ 같으니라고' 유유는 그렇게 어릴 적부터 봐온 홍이가 귀여웠다. 까맣게 타서 반짝반짝 빛나는 조

 

금 튀어나온 이마는 유유가 홍이를 떠올리면 언제나 먼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              ☆              ★


기차에서 다급한 아저씨의 연락을 받고 김천 역에 내려 곧바로 김천 도립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홍이의

 

이모는 이제는 거의 다 된 촛불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유유가 급히 가느라 숨이 차고 떨려서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서있는 홍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너무 더

 

운 여름인데도 병실의 공기는 냉기가 돌았다.    더운 유유의 가슴이 홍이 에게 전해졌다.  이모가 간신히

 

눈을 뜨고 그런 홍이를 바라보았다.

 


“ 할부지 는 봤나?”


“ 응, 할부지도 편찮으시더라. 욕을 어찌 하시는지, 내 참느라고 시껍 했다.  이모, 많이 아프나? 이모

 

야……”

 


“ 그래, 홍아.  니 엄마나 내가 부모 없이 달랑 둘이 살민서 간호사 주제에  언 감 뼈대있는 양반집 아들을

 

넘본 기 죄라. 그래, 니를 우짤라 카시더노?”


“ 내보고 시집가라 하시던데, 그 기 뭔 소리고 이모야.”

 


“ 홍아, 할아버지랑 병원에 오기 전에 통화했거든, 니… 니 말이야.  정혼자가 있다는 서울로 가거라.   할

 

아버지도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 하고 니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그 집에서 곧 사람을 보낸다 하더라. 아

 

마 오고 있을 끼다.”


“싫어, 나 여기서 그냥 혼자 살 거야. 나, 혼자 살수 있어.”

 


“ 안 된다. 내가 싫어. 홍아, 가라. 아저씨한테 더 폐 끼치면 안 된다.  응, 우리는 이제 집도 없어. 그동안

 

이모 병원 비로 팔아서 빚 갚아야 된다.   그 집 서울에 있는 부잣집이 라더라.”

 

 

 


이모가 숨을 헐떡거리자 유유의 아버지가 간호사를 불렀고 홍이는 점점 더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단 한번

 

도 생각 해보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기 때부터 이모와 근처에 사는 유유 오빠만 보면서 살았는데 갑자기 중학교 삼 학년인 홍이에게 시집

 

을 가란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다가   정말 실감도 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곧 이젠 정말 혼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무서워 쓰러질 것 같았다. 홍이가 유유와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갔을 땐 조금 전까

 

지만 해도 멀쩡한 것 같던 이모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이생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나누고 있었다.

 

 


“ 오빠! 오빠!”


“ 그래, 그래, 내 여기 있다.”

 


“ 오빠! 우리 불쌍한 홍이 ! 오빠! 미안했다.


   그래도 홍이를 두고 시집 갈 수는 없었어.


  오빠! 우리 홍이를 꼭 보내도. 데릴러 온단다. 이제야, 온단다.”


“ 숙희야! 숙희야! 정신 차리야 된다. 정신 놓으만 안 된다. 숙희야!”

 

 

 


그게 끝이었다. 이불이 이모에게 씌워졌고 침대는 간호사들에 손에 실려 나갔다. 홍이는 사실 실감이 나

 

지 않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멍하게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조용

 

히 다가와 쓰러질 것 같은 홍이를 가만히 안고 있는 유유에게 기대서 계속 같은 말을 되뇌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빠! 이제 나 어떻게 해 .”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 우린 같이 있을 수 있을 거야.”

 

 

 

이모의 장례식 전 날밤 홍이는 유유의 아버지에게 이곳에서 그냥 살게 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해볼 생각으

 

로 유유네 집으로 갔다.  유유네 집은 넓은 포도밭을 내려다보게 지어진 파란 기와집이었다. 입식부엌에

 

거실에 통 유리를 끼우고 테라스를 내고 그 나무로 예쁘게 짠 테라스에는 핑크 색으로 칠을 해서  간이테

 

이블을 놓아두었고 화단이 잘 가꾸어진 동네에서는 가장 예쁜 집이었다.  유유의 아버지가 이혼하고 아

 

직 어린 유유만 서울에서 데리고 내려와서 아저씨의 첫사랑이었던 이모에게 청혼하기 위해 새로 지은 집

 

이었지만 이모는 어린 홍이를 달고 시집갈 수 없다고 거절을 했고 유유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런 이모

 

를 지켜주고 사랑했다. '나도 이뻐 해주셨으니까 어쩌면 같이 살자고 하실 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홍이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실은 텅 비어 있었고 여느 때처럼 유유 방으로 올라가다 보니

 

유유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들여다보니 유유의 아버지 앞에 유유가 무릎을 꿇고 앉아

 

홍이를 위해 사정하고 있었다.

 

 


“ 니, 홍이 한테 딴마음 가지 더나?”


“ 아니에요. 아버지, 그냥 홍이랑 같이 있는 게 좋아요.  홍이, 그냥 우리 집에 같이 살게 해주세요. 네? 아

 

버지도 홍이를 예뻐하셨잖아요.”

 


“ 안돼! 홍이는 안 돼.”


“ 아버지?”

 


“홍이는 너무 외롭고 그늘이 깊어서 나는 싫다.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똑똑하고 너무 빈틈이 없잖아. 

 

 너, 자가 우는 것 봤나? 나는 실타.”


“ 아버지 왜 그러세요? 제발 이렇게 부탁이에요. 아버지.”

 


“실타, 왠지 느낌이 나쁘다. 홍이는,   니도 이제 딴 생각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홍이는 허겁지겁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눈에는 뜨겁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날밤, 올려다본 밤하늘엔 별도 없이 어두웠고 어느새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홍이의 슬픔처럼 몸을 감싸 돌았다.

 


' 울지 않을 거야. 울지 않을 거야. 그래. 난 독하니까……  근데, 왜 엄마아빠가 없는 게 내 탓이야.   왜,

 

이모가 시집가지 않은 게 내 탓이냐고. '

 

 

 

 

 


                             ★                ☆            ★

 


이모의 장례식 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이모를 산에 묻고 유유의 아버지와 유유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오

 

는 길에 집 앞에 검정색 큰 자가용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홍이가 다가가자 차 문이 열리며 검정 양복차림의 머리가 조금 하얗게 되신 아저씨와 젊은 남자가 내렸

 

다. 그 젊은 남자는 얼른 홍이에게 검정 색 넓은 우산을 받쳐주며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

 

였다. 그는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게 마치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홍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미술선

 

생님을 꼭 닮아 있었다.

 

 


“ 네가 홍이니?”


“ 네, ”

 


“ 안녕하세요. 아씨, 여기 계신 분은 시댁 작은 아버지 되십니다.


   아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 예? 아씨가 뭐예요?”

 

 


홍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주 세련된 남자의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은 호칭으로 자

 

신을 부르는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 옆에 서있던 작은 아버지 되신다는 아저씨가 재촉을 하는 거였다.

 


“ 교수님, 얼른 서두세요. 어른들 기다리십니다.”


“ 그러죠. 짐은 어디 있습니까?”

 

 


유유와 홍이가 돌아보는데 어느새 유유의 아버지가 홍이가 챙겨둔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떠밀리

 

다시피 홍이는 차에 태워져 그곳을 떠나왔다. 유유가 서럽게 차를 따라 뛰며 소리치는걸 못 본척 고개 숙

 

이며…… 유유는 계속 차를 따라뛰며 멈추지 않고 쉴새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 기다려, 홍아, 전화해. 내가 꼭, 데리러 갈게.”

 


'하지만, 오빠가 나를 어떻게 데리러 오겠어? 오빠 ……'

 

 

 

 

 

 

 


   
안동에 있는 본가에서 내일 아침 전통 혼례식을 올린다고 했다.


그곳은 우리시대 마지막 남은 빛 바랜 흑백 사진 같은 뼈대있는 양반 가의 종가 집이었다.


그 옛날 기와집과 집을 지키는 커다란 향나무와 시제를 지내고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그 엄청난

 

부엌에는 오십 명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과 즐비한 방짜그릇 들이 홍이를 기절하게 했다. 저렇게 많

 

은 음식은 본적도 없었다. 떡만 여섯 가지나 되었다. 전이며 음식이 엄청났다. 한여름에 저 많은 음식을

 

집에서 다 만드는 것이었다. 음식이 상할까봐 아마도 밤을 새워 만들 것이다. 간신히 그 교수님이라고 불

 

리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작은방에 앉아서 옷을 갈아입고 보니 어두워지고 있었다.

 

 


작은 어머니라는 분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앉으셔서 집안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 이 혼례를 위해서 집안 어른들만 이백 분이 오셨네. 이틀째 음식을 장만했지. 종손(宗孫)의 혼사가 아

 

닌가, 우리는 웬만한 집안과는 다르네. 종부(宗婦)가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종부 역활을 하지만, 자네

 

시어머니도 아주 일을 잘하셨지. 모두 자네가 할 일이야.  아버님께서 워낙 서두르셔서 할 수 없이 서둘

 

러 치르는 혼사라도 예를 다 하고 마음을 다 하시게.”

 

 


어린 홍이가 보기에도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실 것 같았다.

 


“ 화장실 좀 다녀오겠어요.”


“ 그러시게.”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나오기는 했는데 불빛에 언뜻 보니 사랑채로 보이는 곳에는 무서운 홍

 

이의 할아버지와 어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시는 중이었고 홍이가 숨을 돌릴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

 

었다.

 

 

 

 

 


                             ★              ☆            ★

 

 

 


결국  뒷문을 나와 둥글고 커다랗게 걸린 보름 밝은 달빛을 더듬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헉헉거리고 오

 

르다 보니 어느새 산꼭대기쯤 올라온 모양이었다. 달이 둥그렇게 걸려있어서인지 달빛 속에 자신의 꼴이

 

너무 우습고 서러웠다.


산 밑자락 논두렁에서 하얀 왜가리가 날아 올랐다.

 

 


'갑자기 이게 무슨 웃기는 꼴이야. 어떻게 살아?  중학교 삼 학년 계집아이가 결혼을 하고 어떻게 살겠냐

 

고......'

 

 


중얼거리고 서있던 홍이는 멍하니 달빛을 가르며 날아 오르는 왜가리를 보다가 자신도 갑자기  새처럼

 

날아 보고 싶어졌다.


홍이가 발끝으로 살살 걸어서 산 끝자락에 다가가며 가만히 눈을 감고 휙 뛰어내리려했을 때 누군가  등

 

을 확 껴안아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 때문에 홍이는 떨어서 죽기 전에 놀라서 먼저 죽을 지경이었다.

 

 


“ 네가, 홍이지?”


“ 누구세요?”

 


 눈을 뜨고 그 사람을 보았을 때 홍이의 눈앞에는 양복바지에 하이얀 와이셔츠를 걸쳐 입은 남자가 서있

 

었다. 달빛에 하이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무척 장난스러워 보였다.

 


'나는 죽을뻔 했는데 이 남자는 재미있나 보다. 기가 차네~'

 

 


“ 홍아, 죽는 건 쉽냐?”


“ 누구냐니까요? ”

 


“ 내가 네 신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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