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상품권이 생겨서 백화점에 갔다.
나이키 매장을 둘러보는데 15년 전에 유행하던 조던 시리즈가 진열돼 있었다.
갑자기 아련하게 옛 생각이 나고 집에 온 뒤로도 한참을 그렇게 피식피식 웃어댄다..
내가 5학년 때 쯤이던가..
막 브랜드의 개념을 깨우치던 때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갖고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마 나이키 운동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 <마지막 승부>, <슬램덩크> 등의 인기로 농구가 한창 유행을 했고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마이클 조던 덕분에 나이키 농구화는 우리 또래의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꿈이었다.
5학년 겨울방학 때 할머니께서 낡은 내 운동화를 보시고선 운동화를 사러 가자고 그러셨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한겨울에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처음엔 그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돌아다녔는데 할머니께서는 시장 안에 있는 신발가게에서 브랜드없는 운동화를 내게 신어보라며 내미셨다.
막상 신으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자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다고 그랬더니 할머니께서는
"네 아버지 어릴 적에 사줬던 기억이 난다" 그러시며 나이키 운동화를 파는 곳으로 앞장서라고 그러셨다.
신이 나서 평소에 구경만 하던 나이키 매장으로 달려갔고 조던이 신는다던 그 투박한 농구화를 집어들었다.
할머니는 주인 아저씨한테 얼마냐고 물으시고선 내게 다른 걸 고르면 안되겠냐고 타이르 듯 물어보셨다.
옆에서 아저씨도 허허 웃으시며 그런 건 선수들이나 신는거라고 다른 걸 내게 권하셨다.
시무룩해져 있는데, 할머니께서는 저렇게 비싼 거는 못 사준다며 그냥 나가자고 그러셨다.
할 수 없이 주인 아저씨가 가리킨 운동화를 신어봤는데 새까만 색에 빨간색으로 A I R 이라고 적힌 제법 나이키 티가 물씬 풍기는 농구화였다.
그거라도 막상 신어보니 하늘을 날 것 같았고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그 까만 운동화로 정하겠다고 하였다.
할머니께서는 주섬주섬 돈을 꺼내 셈을 치르셨고 맏손주가 처음에 갖고 싶다던 그 운동화를 못 사주신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저건 중학교 갈 때 꼭 사주시겠노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날 저녁 막내고모께서는 할머니께 한창 발 크는 애한테 왜 저렇게 비싼 운동화를 사주셨냐며 속상해하셨다.
엄마는 나에게 왜 그렇게 철이 없냐고 꾸지람을 하셨다.
그렇게 집안이 나의 새 운동화 한 켤레 덕에 시끄러웠다가 잠잠해진 후에 할머니께서 내게 오셔서 처음에 골랐던 그 비싼 운동화 사줬으면 큰일날 뻔 했다며 뒤꿈치 있는 부분 구겨신지 말고 깨끗이 신으라 말씀하셨다.
처음에 골랐던 운동화, 그러니까 조던 시리즈 중 가장 최신형이 98,000원이었고 나중에 내가 샀던 농구화가 50,000원이었다.
지금의 나이키 운동화 시세로 대략 계산해보면..
초등학교 5학년이 200,000원짜리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100,000원짜리 운동화를 산 셈이 되니 사실 지금의 내가 봐도 그런 비싼 운동화를 고른 건 꽤 철이 없었던 행동인 듯 하다.
그래도 덕분에 며칠동안은 밤에 그 운동화를 신고 잠이 들었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개학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그 후에도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몇 번씩 나이키 운동화를 샀지만 할머니께서 약값을 틈틈이 아껴 사주신 그 운동화가 제일 마음에 들었고, 제일 오래 신었던 것 같다.
요즘 같이 괜히 마음이 심란해지면 알아듣기 어렵던 그 함경도 사투리로 날 달래시던 할머니가 더 많이 그립고, 더 많이 보고싶어진다..
내일 한식이라 할머니 산소에 가야하는데, 가서 잡초라도 정리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