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떠 돌던 괴담에 대한 추억 한가지.
"어느 어느 중국집은 자장면이 맛있는데, 사람 고기를 넣어 만들어서 맛있다더라"
아마 한 두 번씩은 익히 들어봤던 친숙한(?) 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소문을 퍼뜨린 이가 누구인지, 또 그런 소문으로 그 중국집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끔찍한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장면에 대한 식욕은 전혀 감퇴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이 전혀 얼토당토한 얘기는 아니다.
기록에 보면 중국사 곳곳에는 식인과 관련한 여러 사료들이 차고도 넘칠만큼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권율 장군이나 김덕룡 장군 같은 분은 왜구의 배를 갈라 생간을 씹어 드셨다는 얘기도 있고,
조난을 당한 사람들이 죽은 동료의 고기로 연명하며 구조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절박한 스토리 역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해외 토픽 중 하나이다.
하지만 권율 장군께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삼시 세끼 밥상에 췌장 조림이나 심장 볶음을 계속 드시지는 않았을 터이고,
생사의 기로에서 구조된 사람이 그후에도 인육맛을 잊지 못해 정기적으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일회성에 근거한 이벤트였다는 소리다.
중국은 이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를 통해 식인 문화가 전승되어 왔다.
때로는 형벌로, 때로는 복수로 또 어떤때는 굶주림에 대한 자구책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4대 성인이신 공자님도 평소에 인육으로 만든 젓갈을 즐겨 드셨는데,
자신이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 고기가 젓갈로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듣자 그 뒤부터는 인육 젓갈을 드시지 않았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고,
삼국지의 유비도 유안이란 사람이 자신의 부인 엉덩이 살로 요리를 해주어 맛나게 먹고는 지친 몸을 추스린 적이 있다.
수호지(水滸傳)에도 사람고기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수, 당 시대에는 아예 사람고기만 전문적으로 내다파는 인육 시장이 존재했었으며,
그 폐단이 늘어나자 송나라 때에는 인육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원나라 때에도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실려있기도 하다.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인육은 쌀값보다 싸고 개고기의 1/5 정도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인육 시장은 청나라를 거쳐, 불과 몇십년전인 문화혁명 시대에도 존속했었는데,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그의 저서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중국의 식인 풍습을 거론하며 몇천년 동안이나 사람을 먹어온 자국의 역사를 한탄하고 있다.
루쉰은 '중국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오랜기간의 식인풍습으로 인해 중국 사회에서 신의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고 분개한다.
중국인들이 인의예지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덕목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중국인들이 신의를 거론하는 때는 그들이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라는 것이다.
이러한 식인 풍습은 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전쟁이나 기근으로 식량이 모자라게 되면,
유괴하기 쉬운 어린이를 시작으로 타지 여행자나, 독신자 및 여성과 노인 등 주로 사회의 약자 위주로 식용할 인간의 종류와 순서가 정해졌다.
한가지 끔찍한 상상 하나를 덪붙이자면,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를 전후하여 유례없이 인육이 넘쳐나서 다른 고기의 값이 폭락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때는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며, 그 유민 수백만명이 중국으로 끌려 간 직후였다.
후손 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한 우리네 조상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 중의 많은 수는 중국인의 식탁에 올랐음을 상상할 수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