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비 솔가리, 갈퀴나무
"소나무를 보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소나무요? 아이고, 그 지겨운 갈퀴나무지요. 겨울에 식구대로 올라가서 갈퀴나무를 해 다가 산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헛간에다 숨기고."
그 할머니는 지금도 진저리가 난다는 손 사레를 쳤다. 사실이었다.
소나무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동지섣달 삭풍을 견디며 아랫목 고랫구녘을 달구어서 구들장을 뜨겁게 해주는 것이 소나무였다.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농촌에서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갈퀴를 새로 만들었다. 소나무 낙엽을 긁기 위해서이다.
갈퀴는 농사일보다 소나무 낙엽을 긁는데 더 품을 팔았다. 아장아장 걸음마만 시작되면 어린아이까지 전 식구들이 총동원되었다. 아버지갈퀴는 제일 크고, 그 다음 어머니, 형, 누나.....그런 식이었다.
갈퀴나무는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긁어 내려온다. 칡넝쿨 따위는 방해가 되므로 낫질하여 사려내고, 나뭇짐을 꾸리기 좋은 무덤가나 평평한 곳으로 무덤처럼 모은다.
소나무 낙엽은 짐꾸리는 일이 중요하다. 집까지 무사히 가져가려면 짐을 잘 꾸려야 한다. 바늘 같은 낙엽이므로 잘 모아서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 짐을 꾸릴 때는, 칡덩굴을 기차레일처럼 바닥에다 두 가닥으로 놓고 그 위에다 소나무 가지를 잘라다 납작하게 깔아서 솔잎이 빠지지 않게 하고는, 갈퀴로 소나무 낙엽을 깍지 쳐서 차곡차곡 놓는다. 그러면 둥그렇게 되는데, 아버지의 지게에 실릴 것이 제일 크다.
정부에서는 갈퀴나무를 강력하게 단속했는데 군청 산림계직원이 마을에 나타나면 '산감'이 나타났다고 하여 마을이 난리 났다. 이장이 닭을 잡아 대접하고, 돈을 걷어다 주어야 산감은 모른 척하며 마을을 벗어났다. 순경이나 면서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마당으로 들이닥치면 나이든 노인들의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필름도 없는 사진기로 철컥철컥 찍어대면 영락없이 쇠고랑 차는 줄 알았다.
으이구우, 지겨운 생솔까지
갈퀴나무는 아주 느릿느릿 타는데, 아낙네들이 아궁이 앞에 몽당수수 빗자루를 깔고 앉아 밥할 때 쓰였다. 그러나 갈퀴나무는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우지는 못했다. 화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갈퀴나무 불은 뜸을 들이거나 부침개를 할 때 긴요하게 쓰였다.
방이 추울 때는 파릇한 생솔가지를 잘라다 때는데, 불을 지피려면 눈물 몇 섬은 퍼내야 했다. 우선 아궁이 가득 생솔가지를 메운 다음, 마른 초나무 따위의 불쏘시개를 밀어 넣고 불을 붙인 후, 키나 거적때기로 부쳐야 한다. 자신의 몸뚱아리만한 거적때기로 고랫구녘에다 바람을 몰아넣을 때마다 고무 타는 연기보다 진한 연기가 솟구치는데, 그 연기는 무척 독하다. 삽시간에 부엌은 연기로 가득 찬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거적때기를 휘둘러야 한다.
“오살 놈의 것. 누가 이긴 해보자. 으이그, 지겨운 놈의 짓. 내 자식들한테는 죽어도 안 시켜야제.“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숨을 멈추고 사력을 다해 거적때기로 부치다가 밖으로 뛰쳐나와 한숨을 몰아쉬는데, 동짓달 밤하늘에 별은 총총하고, 눈물은 헤픈 년 동냥 주듯 터져 나오고, 자신의 신세가 그지없이 가련해진다. 하지만 방은 최고로 따뜻했다.
정월 대보름날 불깡통 속에 든 관솔불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은 저마다 낫을 들고 산에 오른다. 불깡통에 넣을 관솔 끌텅을 잘라 오기 위해서다. 잘라진 소나무 가지에는 송진이 흘러 나와 있는데, 송진이 많이 묻은 가지일수록 아이들의 눈빛이 빛난다. 송진이 많이 붙어야 불에 잘 타기 때문이다. 송진이 묻은 나뭇가지를 관솔 끌텅이라고 하는데, 낫으로 베거나 톱으로 자른다. 아이들은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정월 대보름날 불깡통에다 넣고 불을 지른다. 관솔을 성냥불만 있어도 불길이 살아난다.
잎새가 죽은 나뭇가지가 나무에 달려 있는데, 그것을 ‘자작나무’라고 한다. 주로 남자아이들이 하는 나무이다. 죽은 가지이므로 산감들도 어쩌지 못했다. 다만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가지를 쳐내야 하므로 위험했고, 너무 빨리 불에 탔다. 아이들은 자작나무로 위장하기 위해서 생솔가지를 자른 다음, 솔잎만 낫으로 쳐내기도 하였다. 솔잎만 쳐내면 가지만 남게 되는데,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죽은 나뭇가지를 지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또 죽은 소나무 뿌리와 나무 밑둥을 톱으로 베거나 괭이로 파내기도 하는데, 그것을 끄렁나무, 끌텅나무라고 하였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갈퀴나무가 없으면 ‘자작나무’나 ‘끄렁나무’를 했다.
봄이면 송쿠를 벗겨먹고
봄이면 물오른 소나무 윗가지를 잘라서 겉껍질을 잘 벗겨낸 후 속껍질을 벗겨먹는데, 그것을 ‘송쿠’, ‘송기’라고 하였다. 송쿠는 잔디 뿌리나 들녘에서 뽑아 먹는 삐비, 여름이면 밭가에서 따먹는 오돌개, 산에 가서 따먹는 산딸기, 명밭에서 따먹는 목화다래, 가을철 산에서 따먹는 포리똥만큼이나 아이들 입맛을 돋구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송쿠를 벗겨주는데, 나중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벗겨 먹었다. 송진 냄새가 나지만, 물오른 줄기는 달착지근했다.
어디 그뿐인가. 송편이나 떡을 쪄낼 때 솔잎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는다.
소나무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도 이 소나무를 두고 한 말이다.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관을 빼낸 자리에다 반드시 소나무를 심는다. 소나무가 한 그루면 자손이 하나라는 뜻이요, 들이면 둘, 셋이면 셋이라는 뜻이다.
추석날이나 설날 산소에 가면 꼭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놓는데, 이것도 다 뜻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소나무 가지가 하나 놓여 있으면, ‘아, 저 양반네 자손이 하나구나’하고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가 놓여 있으면, 자손들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었다.
소나무는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왔다. 독사 넣은 술병을 소나무 잎으로 막고, 상량기둥을 소나무가지로 하고, 약단지를 달일 대 솔방울로 하고, 각종 농기구를 만들 때 등 평생 사람에게 이바지만 하다 죽는 나무이다.
차멀미를 하는 사람은 솔잎을 따서 자루에 넣어 차멀미할 때마다 냄새를 맡으면 사라진다.
소나무는 솔나무, 솔낭구, 송목(松木), 유송(油松)이라고 불렀다. 4월경에 자색의 꽃이 피며, 노란색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열매는 10월경에 익는다. 열매를 솔방울이라고 한다. 솔잎으로 떡을 만들어 먹었고, 솔방울이나 솔잎으로 술을 담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