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사 이야기 episode2 술래잡기1
“아니 글쎄....... 이건 좀 곤란하다니까.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구니?”
4월의 어느날 오후
김 경우 경장의 난처하고도 약간은 짜증섞인 목소리가 늦 봄의 따가운 햇살을 따라
스물 스물 남형사의 머릿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경찰서의 한 귀퉁이에 존재한 분홍색 가죽 쇼파 위에서 배를 들어낸 채
가죽의 차가움을 느끼며 오후의 낮잠을 즐기던 남 형사는 전날의 야근 근무의
피로가 아직 체 가시지 않은 지 누르끼리하게 뜬 얼굴을 비벼대며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 우리 매너맨 김 경장이 이렇게 짜증을 내고 그래?”
남 형사는 반장 박 철현이라고 적혀있는 자주색 플라스틱 팻말 옆에 놓여진
유산균 음료의 두껑을 연 후 벌컥 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어 이때까지 그거 남 형사님이 드셨어요?
반장님이 몇 주전부터 책상 위에 놓아둔 음료수가 없어진다고 난리를 피시던데
걸리면 절도죄로 콩밥 먹을 각오하라고 아침 조회 때도 단단히 엄포하셨거든요“
대민안내봉사를 하기 위해 호돌이 인형을 챙기던 이순경이
마치 미스테리한 사건의 범인이라도
잡은 묘한 표정으로 남 형사를 쳐다보았다.
“끄어억~! 아따 그 영감 누가 소심쟁이 아니랄까봐 예전에 현장 뛸 때도 쓸데없이
먹는 거에 그렇게 집착하더니만
이봐 이 순경! 반장님이 물어보면 일케 전하라고
그거 내가 먹은 게 아니라 유산균음료라 노친네 위벽에 무리가 갈까봐
좀더 효과 좋게 하기 위해
배에서 직접 숙성발효하고 있다고 말야.
다 때되면 배출해서 드린다고 기다리라고 말야.“
“프훗 그럼 남 형사님이 숙주네요. 숙주.
걱정마세요 반장님께 안 이를테니까.
남 형사님 저 그럼 순찰 다녀오겠습니다. 친절“
“응 그래 친절”
손을 들어 경례를 한 후 대민봉사를 위해 머리에 큰 호돌이 인형을 쓰고
나가는 이 순경의 뒷 모습에서 이제 막 따내어 온 듯한 녹차 잎처럼
푸르디 푸른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그래 무슨 일이야?”
“선배님 이 꼬마 좀 보세요”
남형사는 민원상담 데스크에 앉아있는 김경장의 어깨 너머로 주욱 목을 내밀어
쳐다보았다.
목재로 되어있는 민원상담 데스크 앞에는 데스크의 키보다 작은 이제 막
5~6살 정도의 꼬마 소녀가 애처롭지만 당당한 눈빛으로 서있었다.
성큼 데스크의 앞으로 다가선 남 형사는 귀여운 표정의 꼬마숙녀에게
자신의 하얀 남방 주머니에서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어 주며 물었다.
“그래 우리 꼬마공주님이 무슨 일로 여기를 방문해 주셨나요?”
“아저씨 경찰은요. 우리의 지팡이 맞죠? 아저씨 경찰은요. 나쁜 사람들 혼내주고
잃어버린 사람이나 물건도 잘 찾아주는 고마운 사람 맞죠?“
“응 그렇지 우리 공주님이 제대로 알고 계시네. 어른들도 잘 모르는 걸.......”
“그런데 왜 울 아빠는 안 찾아줘요?”
“응 그게 무슨?”
“이 것 좀 보세요”
김 경장이 남형사의 옆에서 하얀 도화지 한 장을 건네어주었다.
거기엔 꼬마 소녀가 크레파스로 그린 포돌이 인형의 모습이 있었고
그 아래쪽엔 굵은 빨간 크레파스로 덧칠을 한 글자가 적혀있었다.
“울 아빠 찾아요.
포돌이 아저씨처럼 착하고 다정한 아빠!
현상금 3천원“
“이 꼬마애가 이렇게 포스터를 그려 와서는 전국방방곡곡에 뿌려달라고 하지
멉니까? 자기 아빠를 찾아 달라구요. 안된다구 해도 막무가내예요“
“흠...... 꼬마 공주님 그래? 아버지가 어디 가셨어요? 어디 출장이라도
가셨나요? 아니면 아버지가 가출이라도 하셨어요?“
“몰라요. 제가 뱃속에 있을 때 아빠가 어디 가셨데요.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아빠가 잠시 혜미랑 술래잡기 놀이하고 있는 거라고
하는데 혜미는 더 이상 아빠를 찾을 수 가 없어요
집 앞 공터랑 전봇대랑 자동차 뒤를 몇 년씩이나 찾았는데 못 찾겠어요.
혜미는 지금 아빠가 보고 싶단 말예요.
5월 8일 어버이날에 울 유치원에서 아빠엄마 모시고 장기 자랑하는데 다들
아빠가 온다고 자랑하는데 왜 혜미만 없어야 해요
그러니까 경찰 아저씨가 찾아주세요 네“
꼬마는 까치발을 들어 데스크에 두 손을 올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남 형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선 멜빵바지의 노란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 아저씨들 사람들 찾을 때요 현상금도 줘야 하잖아요
혜미가 준비해왔어요.
한달 제 용돈 모아서 가져왔거든요 여기 삼천원이나 되요“
꼬마는 포켓에서 꺼낸 삼천원을 데스크 위에 올려두었다.
“이봐 꼬마야. 현상금이라는 것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삼천원짜리 현상금이
어디있어? 이런 건.........흡.“
황당한 꼬마의 행동에 김 경장은 답답한 듯 말을 꺼내었고
남 형사는 서둘러 김 형사의 입을 투박한 손으로 가로 막았다.
그리곤 한 손으론 데스크에 놓인 천원짜리 지폐세장을 집어 들었다.
“이거 현상금이 삼천원씩이나? 와 이거 너무 많은 데........
그런데 혜미라고 했지? 혜미 공주님 현상금은요. 사람을 찾아야
주는 거예요. 미리 주실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일단 가지고 계시구요
아저씨들이 아빠 찾으면 주세요. 알았져?“
남 형사는 지폐를 접어 혜미의 오른쪽 상단의 노란 주머니 속에 넣어주었다.
“네! 그럼 이제 아빠 찾아주는 거예요?”
혜미는 신이 난 듯 망울망울한 눈망울을 크게 띄었다.
“그래 아빠가 우리 공주님 뱃속에 있을 때 없어지셨다구 했지?
우리 공주님이 지금 몇 살이지?“
“다섯살요”
“그럼 우리 공주님 아빠 이름 기억하니?”
“네 이 태민이예요”
“이 태민이라 혹시 아빠 생김새가 어떤지는 아니?”
“네 엄마가 그러는데요 아빠는 넘넘 착하고 다정하게 생긴게
꼭 경찰아저씨들이 쓰고 다니는 포돌이처럼 생겼데요
그래서 혜미는 포돌이가 젤 좋아요 헤헤“
“이런 그럼 내가 바로 혜미 아빠구나?”
“잉! 아녀염! 혜미 아빠는 아저씨처럼 지저분하게 안생겼어요.
포돌이처럼 귀엽게 생겼다니까요. 아저씨 미워요.“
“쿡쿡 역시 애들은 정직하다니까요”
꼬마의 대답에 난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 형사를 보며 김 경장은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하하 이런 이런 그래 우리 꼬마 공주님 이제 아저씨가
알아들었으니까 꼭 혜미 공주님 유치원 장기자랑 하기 전까지는
아빠를 찾아줄께요 그러니까 이제 혜미 공주님은
돌아가셔서 엄마말씀 잘 듣고 있어요 알았죠?“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근데 아저씨도 사실 밉게 생기진 않았어요. 자세히 보니까요
수염만 깍으면 조금 귀여워질 것 같아요.
그럼 저 갈께요 친절“
혜미는 그새 배웠는지 손바닥이 다 보이도록 손을 들어
남형사를 향해 경례를 한 후 열여 있는 경찰서의 유리대문밖으로 총총히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허허........ 그 넘 참”
“꼬마애가 참 당돌하죠. 근데 남 선배님 어쩌자구 그런 약속을 하였어요?”
“이봐 김 경우 경장. 애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서야 되겠나?
지금 저 애는 아버지를 찾고 싶은 마음보다 장기자랑에 자기만
데려갈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픈거야.
그러니까 장기자랑 날에 이 순경에게 포돌이 인형쓰고 가서
아버지 행세를 하라고 하면 분명히 즐거워 할거라구
이제 좀 있음 결혼할 사람이 어찌 그리 아이의 생각을 몰라.“
“아 그렇군요. 제가 아직 총각이다보니 헤헤”
“자. 그래도 수사 의뢰는 받았으니. 더구나 거액의 현상금 까지 걸렸으니 우선
찾아보기나 해볼까“
남 형사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 한잔을 김 경장의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안 그래도 제가 이태민이라는 이름으로 5년 전부터 실종자나 가출자 신고
리스트를 검색해봤는데요. 저희 구역에 이태민이라는 이름의 실종자나
가출자 신고가 들어온 적이 없네요“
“흠 그래? 5년 전이라....... 하긴 가출자 치고는 너무 오래전이군"
남형사는 천천히 커피의 향을 혀끝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가만 5년 전....... 이 태민.......5년전 이 태민........
설마 그 이 태민?“
자판기 커피를 쥐고 있던 남형사의 손끝이 흔들렸다.
흔들거리는 남형사의 손을 따라 종이컵에 적혀있는 글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민을 위한 공정한 이웃 경찰 당신 곁에 있습니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