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새로운 시기..30대를 보내는
나에게 많은 의미와 가치로 다가온다.
자아를 의식하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부터
나는 두가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살고싶은 여자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의지확인에 대한 흔들림없는 일관적 태도였다.
그러면서 사적으로 경계했던 것은
기본적 특성에 대한 이식성이였는데
선택하며 경험할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판에 이끌려
타인을 의식하고 주변을 추수리는 것이 아닌
내안에서 인정되고 사유되는 자주성이
놓쳐지지않기를 늘 간구했다.
그렇다면 자주,혹은 주체를 소중히 여기면서
왜 생산을 목적으로 글이 쓰여지고 있는가,
그건 내적/외적으로
정통성을 찾고 싶어하는 욕구와
당위성을 확인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확보의 개념이 아니라
확인의 절차로 각인하고 있다.
나의 청년시대에 영미의 의미는
몇가지의 주문에 대한 인식의 획일화와
실천적 존재방식에 대한
성실한 태도로 집약된다.
마음은 조급한데 발길은 더디고 무딘것이
나의 청년시대에 관한
본질적 성향임을 부인할수없다.
그것이 어디 하나 둘인가,
먼저 그리스도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문제적 접근은
스스로도 허용하지않았고
타인에게도 용납하지않았다.
비판을 거부한다는건 브레이크의 기능을
상실한 열차와도 같다.
달릴땐 신나고 무서울것이 없지만
대형사고가 이미 예정되어있듯이
신앙적태도는 그렇게 무모했다.
현실은 현실의 논리로 풀어야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기도보다는 움직임을 소중히 여겼으며
인식보다는 태도를 귀히 여겼다.
그랬다.
나의 청년시대,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고 쉽게 절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 시작된
생존의 법칙(그건 자본에 대한 경험)은
내자신을 우울하게 만들었고
현실의 논리로 포기된 자아는
스스로의 권위도 뒤로한체
술과 담배로 채워진 시간을 보내야했다.
난 내나이 25살일때 돈벌기위해
노동자로 산다는것에 많이 회의했다.
그런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자신을 말할때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내자신을 말하는 전부인 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사는것 자체가 불안해 졌다.
몇년의 시간이 지나고 시작된
학교생활은 그런 불안의 연속이였으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많음을
경험한 시간이였으며 그 다르다는 것이
오이려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건내는데 인색하게하게 했다.
삶이 불안했고 내가 지닌 관념도
자긍심을 상실되었기에
나는 전환이 필요했고 최소한 꿈을 이루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했다.
내가 찾아낸 방식은 글쓰기였다.
찾아진 방식에 대한 실천적 요소로 선택된
인디,펑크을 텍스트로
탈민중음악의 패러다임은
나의 청년시대를 다시 활기있게 했다.
일년내내 준비해서 도전한
신춘문예가 실패되면서
나의 청년시대는
다시 전환을 모색하게 됐는데
그시점에 나는 영미를 만났다.
만남과 사랑을 통해
다시 유년의 관념으로 돌아올수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것에
삶의 의미를 찾던 시기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실천적 존재방식을
신학/신앙적으로 모색하던
유년의 시기로 회귀된 것이다.
나의 존재는 우주안에
작은 먼지와 같이 작고 보잘것없지만
나의 영혼은 끝없이 자유로움에
기쁨을 지니던 시절에
내안에 가득히 샘물처럼 솟아오르던
주를 향한 시선과
기도의 시간들...
나만의 자유를 만끽할수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간안에 여유를 지니게 한다는 것과
중요한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게 하는 관점을 지니게 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볼수있게 하는
객관적인 시선을 지니게 한다.
나의 청년시대에 맞이한 사랑,
그랬다.
아내는 나에게 그런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에 아내가 절실해지고
단순히 필요조건이 아닌
삶의 절대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가 받았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리라.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