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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들 깝치지 마시죠 진실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보시게 |2009.05.25 09:15
조회 1,084 |추천 2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 방송국 기자들에 밣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 [성혈과 성배](...../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내용을 밝힌 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 (gaul),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 하며 80세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르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게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이용이 십자군 전쟁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 (성당기사단, 1118년 예루살렘 순교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ㅇ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 바 있는 이러한 내용이 있는 책성혈과 성배가 출판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샤토에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한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읍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세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객에서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딛는 등의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ㅠ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취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채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 (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 (사진 3 동아일보)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주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라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토 (토리노 성의로 불렸음)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과학적 분석과 여러가지 문헌의 ...... 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 (앨마 그루버, 훌거 케르스텐지음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춮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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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제 영국의 bbc 방송에서 다큐로 제작된 내용과 그의 여파로인해 영국뿐만아니라 해외세력까지 영향을 미친것을 적은 글입니다.

 

 

개독여러분 이제 그만깝치십쇼. 그렇다고 기독교의 교리까지 욕하는건 아닙니다만, 개독여러분의 엿가튼 자태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습니다.

 

 

추천수2
반대수0
베플븅신새끼|2009.05.25 09:20
뭐하는 새낀지는 모르겟다만 어디서 방송내용 하나 듣고와서 그 방송 자체가 진리인것처럼 기정사실화하고 당다아게 이것이다! 라고 글이나 올리는 너는 검찰새끼들이랑 다를게 뭐냐 무지한 새끼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조용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90%의 기독교인들마저 싸잡아서 개독이라 칭하니 어이가없구나 씨벌생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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