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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성에서 온 왕자님

wagi |2004.05.14 15:41
조회 1,950 |추천 0

4. 커플여행


“하아아~”

윤은 몇 번째인지 모르는 한숨을 내쉬며 책상위로 무너졌다.

“진짜 내 팔자에 남자는 없는 건가. 이제는 이 짓도 지긋지긋해.”

“그럼 나 더 이상 미팅 안 대도 되는 거야?”

희망찬 미진의 말에 윤은 째릿 노려보다가 다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미팅을 백날 해봤자 뭐하냐.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야, 그럼 어떡하냐?”

“뭐가?”

“너랑 준서랑 엮어주려고 커플여행 짰는데.”

“커플여행같은 소리하고 있네.”

“뭐, 그럼 별 수 없지. 너는 빠져라.”

“니들끼리 가겠다는 소리야?”

“너 하나 때문에 가기로 한 걸 취소할 수는 없잖아.”

“이런 의리라고는 찜쪄먹은 것들. 나빼고는 아무 데도 못 가.”

“그런 너 혼자 달랑 끼겠다는 소리야? 심심할텐데.”

“니들도 솔로잉해!”

미진은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흥 콧방귀를 뀌었다.

 

윤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절대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차라리 날 죽이고 가.”

“추하다. 그렇게 가고 싶냐? 그럼 너도 얼른 하나 구하던가.”

“64번째의 미팅에서도 못 건졌는데 며칠만에 어떻게 구하란 말이야!”

미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뭔데? 뭔데뭔데뭔데?”

“나 안 팰 거지? 약속하면 말해주지.”

“안패안패안패~ 말해줘말해줘말해줘~”

“유진이랑 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내지른 윤은 왠지 미진이의 피부가

상당히 딱딱해졌다는 생각과 함께 손을 부여잡았다.

“아아악~! 내 손!”

“그럴 줄 알았지.”

미진은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씨익 웃었다.

“내가 또 당할 줄 알았냐?”

“비겁하게...”

“너한테 다른 길은 없어. 정 가고 싶으면 한번 생각해 보던가.

유진이랑 같이 간다면 오빠들도 안 따라올걸”

‘그래도 그 녀석이랑은 안 가, 절대!

아무리 남자가 궁해도 그렇지, 그 녀석한테 그런 부탁을 할 바엔 안 가고 만다. 흥!’

그날 저녁, 윤은 애절한 눈빛으로 유진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거길 왜 가야 한다는 건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 보거라.”

“네가 안 가면 나도 못 간단 말이야.”

“그건 너의 논리다.”

“오빠한테 말할 거야.”

“그래, 잘 생각했다. 한이형이 따라가면 되겠구나.”

“그것만은... 아씨,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갈 건데?”

“으음... 거래를 하자는 뜻이더냐?”

“거래든 뭐든 다 할 테니까 말해봐.”

“당장은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래서 간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부탁하는 태도가 상당히 불손하다만 우선은 가는 것으로 해 주겠다.”

윤은 속으로 참을 인자를 세 번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럼 가는 거지?”

“오냐.”

벌떡 일어난 윤은 방문을 열고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 친구들 앞에서는 그 이상한 말투 쓰지 말아줘. 바보되기 싫으니까.”

쾅-!

“허허, 세진이에게 다른 말투를 배워야하나.”



******************


한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음산하게 웃었다.

갑자기 주위의 인간들이 사사삭 멀어져갔다.

"해부학 실습 안 들어갑니까?"

한의 물음에 담당교수가 움찔 떨었다.

"아, 아니… 오늘 실습은 취소됐네."

이게 다 너때문이다! 라고 외쳐주고 싶은 것을 참느라

이마에 파직 돟은 핏줄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한이 중얼거렸다.

"아깝다… 오늘은 꼭 간을 갈라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한의 등 뒤에서

마음약한 여학생은 벌써 울먹거리고 있었다.

"가, 간이래…"

날카로운 여학생의 말소리에 해부실 안이 갑자기 정적에 쌓였다.

말을 한 여학생은 사색이 되어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한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럼 오늘 수업은 비는 겁니까?"

"그, 그렇네. 공부할 게 있는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도 좋아."

제발 빨리 가달라는 듯 교수는 한을 바라보았다.

 

한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스윽 일어나더니 과대에게 말을 걸었다.

심약한 과대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1학년 수업이 어디지?"

"1, 1학년이라면… 지금 소강당에서 수업중일 겁니다."

자연스럽게 존대를 받은 한은 고개를 끄덕하고는 해부실에서 나갔다.

여기저기서 한숨과 오열이 흘러나왔다.

"나, 무서워서 학교 못 다니겠어."

“근데 너 이한이 용의 저주를 받았다는 소리는 들어봤냐?”

“지렁이 꼬리를 밟았는데 그게 용이었다는 이야기 말이지?”

“응, 그래서 이한이 끼는 행사는 늘 비가 온대.”

"......해부학 수업 포기하고 내년에 들을까?"

"미쳤냐? 내년 수업이 얼마나 빡센데."

"그럼 어떻게 해…"

잠시 문에 기대서서 안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소리를 듣고 있던 한은

히죽 웃으며 그제서야 자리를 떴다.

"소강당이라… 교양인가?"

잠시후 한은 소강당의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상대로 준서라는 녀석은 맨 뒷줄에 앉아서 연신 하품만 해대고 있었다.

한은 문에 팔짱을 낀 채로 기대어 서서 준서의 뒤통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을 발견한 것은 화학강사였다.

학기를 맡은지 아직 1년이 안 된 그는 불행하게도 한의 존재를 잘 몰랐다.

"거기, 들어올거면 들어오고 나가려면 문을 닫아주게."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헉!"

"이한선배다."

"저 선배가 왜…?"

"누구야? 이번 목표는 1학년이야?"

그 가운데는 준서도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웃음을 띄운 한의 눈을 마주하고는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

‘나, 나를 보고 있어! 나를! 왜지? 윤이가 일러바쳤나?’

뱀앞의 쥐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경직된 채

바들바들 떠는 준서를 한번 훑어본 한은

결코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교수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뭘 두고 와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서요.

방해가 됐다면 문을 닫겠습니다."

문틈 사이로 자신을 겨냥하고 웃는 한의 얼굴을 본 준서는 거의 심장마비 직전이었다.

 

웅성거리기 시작한 학생들 사이에서 준서만이 가만히 굳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용, 조용! 자, 다음 공식을 살펴봅시다."

교수는 흩어진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주의를 요구했지만

이한의 여파는 엄청나서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았다.

"야, 혹시 저 선배, 너때문에 온 거 아니냐?"

옆에 앉은 과친구 녀석이 슬쩍 몸을 내밀며 물어왔다.

미팅에 같이 나갔던 녀석이다.

 

그러나 이미 돌이 된 준서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 그의 머리속에는 웃는 이한의 공포스러운 모습만이 떠돌아다녔다.

새파랗게 질려서 굳은 준서를 확인한 친구녀석은

슬금슬금 책상을 준서에게서 멀리 떼어냈다.

 

괜히 같이 있다가 벼락을 맞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인지상정.

모난 놈 옆에 있다가 같이 정맞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김유진…"

친구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뒤를 돌아보고 있는 유진을 발견했다.

다시 자리가 30센티쯤 더 떨어졌다.

'이한에 김유진…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래도 친구였던 의리로 한번 명복을 빌어준 후

다시는 준서와 상종하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을 했다.



******************


“오늘 그 자식 방법하러 간 일은 어떻게 됐어?”

“아, 눈아프다.”

한은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형이 눈이 아플 정도로 노려봤으니 그 자식도 제 명에는 못 죽겠군.”

“군대간다더라.”

“근데 언제까지 윤이 뒤를 따라다녀야 하는 건지 원.”

“얼른 유진이랑 엮이면 좀 좋아.”

“그러게 말이야. 왜 유진이랑 안 사귀는 거지?”

“너무 몰려다녔던 게 문제일까?”

“그건 그래. 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잖아.”

“뭔가 밀어붙일 계기가 필요해.”

그때 윤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오빠! 나 여행갈거야. 보내줘.”

“여행? 무슨 여행?”

“친구들이랑 커플여행가기로 했어.”

“커어프을?”

“커억...”

한과 온은 다급해진 나머지 허공을 두 팔로 휘휘 저으며 뻐끔거렸다.

“오빠들 뭐하는 거야?”

“커,커,커헉...”

“너... 안 돼!”

“유진이랑 가기로 했어.”

“...긴 뭐가 안 돼?”

오빠들은 순간 눈을 마주치며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하늘이 주신 기회다!’

“그래, 유진이랑 간다고? 그럼 당부할 것도 있고 하니 유진이를 좀 불러오렴.”

윤이 나가자마자 한과 온은 만세를 불렀다.

“이거야, 이거. 이대로 밀어붙이는 거야.”

유진과 윤은 오빠들 앞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덥썩 유진의 손을 부여잡은 한과 온이 눈물을 글썽였다.

“유진아, 네가 드디어 우리 윤이를 책임질 준비가 되었구나.”

“그래, 이제 우리도 윤이 걱정에서 벗어나 본연의 학업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잠깐만, 오빠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진이 네가 있어준다면 안심이야.

우리 윤이도 이제 다 컸으니 오빠들 간섭에서 벗어나야지.”

윤의 귀가 번쩍 띄였다.

‘간섭에서 벗어난다고?’

“그래. 언제까지 우리가 윤이 옆에 붙어 있을 수도 없고...

유진이같이 건실한 남자친구를 사귄다면야 오빠들은 안심하고 윤이 일은 걱정 안 하마.”

‘나+유진=자유?!’

“형님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웁!”

윤은 급하게 유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호호, 얘는... 수줍어 하기는... 오빠들, 걱정하지마.

이제 유진이가 있으니까 오빠들 걱정 할 일 하나도 없을거야.”

“#%@#@%#%$~”

“그래, 유진이를 믿고 윤이를 맡기마.”

“그럼 우린 여행준비해야 되거든~”

유진의 목을 틀어쥐고 윤은 서둘러 방을 나섰다.

“켁켁, 이게 무슨 짓이냐?

형님들의 오해를 풀어드려야지 그냥 나오면 어쩌자는 게야?”

도로 들어가려는 유진의 옷자락을 잡고 주저앉아버리는 윤의 무게에

유진은 아무리 애써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유진아, 내 말 좀 들어봐.”

“이것 놔라. 옷 늘어나면 세진이가 잔소리한단 말이다.”

“잠깐 앉아봐.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유진을 간신히 끌어다 앉힌 윤은 갖은 공갈협박에 애원까지 곁들여 유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넌 손해 볼 것 없잖아, 응?”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낳는 법.”

“이렇게 빌께. 너도 우리 오빠들이랑 다니면서 불행한 내 과거에 일조했잖냐.

그러니까 너도 책임이 있는 거라고.”

“어떤 이유건 거짓은 정당화될 수 없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께, 그러니까 제발... 응?”

유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윤은 타는 듯한 심정으로 유진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그 말은 곧 내가 남자친구인 척 해 주면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 이 말이냐?”

“그래, 뭐든지.”

“흐흠... 좋다.”

“진짜? 너 지금 좋다고 한 거 맞지?”

“그렇다.”

“이야호~! 자유다, 자유!”

환호하던 윤은 갑자기 유진을 휙 돌아보았다.

“근데 나 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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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동이마을님, 봐주셨군요. ^^ 웰컴입니다.

예쁜 사랑 만들께요. 계속 지켜봐주세요.

 

솜사탕님, 눈치도 빠르셔라. 유진이란 걸 알아차리시다니...

어둔 데서 한번 뵐까요? ^^;;

 

유에프오님, 과분한 말씀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어깨가 무겁네요.

제 글이 님께 활력이 된다니 정말로 최고의 찬사이십니다. 감격중.

 

깐따삐아행성경비원님, 네, 열심히 할테니 계속 기대해 주세요. ^^

 

윤태영님, 이제 3편쯤 되니 눈에 익은 이름들이 많이 보이네요.

끝까지 봐주실 분들이라고 믿어요. 감사합니다.

 

매냐님, 하루 한편 연재 목표입니다만... 저 역시 너무너무 게을러서요. ^^;;

언젠가는 게으른 자들의 세상이 올 거예요. 그때까지 홧팅~!

 

TAE님, 감사합니다. 님 스탈이라니 너무 기쁘네요. ^^

 

호온당님,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님의 리플, 앞으로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헤헤.

 

바닐라님, 준서는 응징당했지요. ^^

앗, 설마 본문 안 읽고 이것부터 읽으시는 분들은 아니 계시겠지요? ;;

 

환님, 오늘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늘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fifachang님, 4편 늦어서 죄송합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래요. ^^

 

펜시아님, 헤헤, 벌써 펜시아님이 편해져버린 바기랍니다.

꾸준히, 끝까지 계속 뵙고 싶어요. *_*

 

놀러간도넛님, 잉잉, 닉넴이 너무 귀엽잖아요. 아, 도넛먹구 싶으다... ㅠ.ㅠ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겠다는 말씀에 바기는 그저 황공무지로소이다. ^^

편하게 일상얘기도 하고 그러면 좋겠어요. ^^

 

물빛무늬님, 첨 닉을 보고 반해버렸어요.

눈을 감고 있으면 물빛무늬가 뭔지 생각날지도...  

예쁜 이름, 자주 뵐 수 있길 바랄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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