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씨가 유서에서 말하려고한 것은? "나를 버려 달라."
나는 애초 노무현씨의 인격에 대해 별달리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유서를 상세히 읽지 않았다. 그저 훑어 지나치듯 했다. 하지만, 어느 분이 올리신 4월23일에 이미 노무현의 유언의 단서가 나왔다는 글을 읽고 (참조: 노 전 대통령 4월 23일 이미 유언했다 ) 그것을 다시 볼 필요를 느꼈다.
죽기 몇 시간 전 올렸다는 유언의 내용은 이것이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화장해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하나 세워라”
그 유언이 참인지 비교해볼 단서로는, 4월22일오후5시23분 노무현씨가 그의 홈피에 직접 올린 내용이 있다.
[참조: http://www.knowhow.or.kr/speech/view.php?start=0&pri_no=999817745&mode=&search_target=&search_word= ]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이미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사실, 노무현 또는 그 가족, 주변의 비리 문제가 터져나올 때부터 본 필자는 극도로 말을 아끼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매질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애석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리 문제는 검찰의 수사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에서 법적 절차를 따라 밟아가면 그 뿐이었다. 보수들이 할 일은 검찰이 다루지 않던 친북적, 이념사안에로 한정짓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위의 노무현씨가 남긴 귀절에서 그는 이미 사법절차를 각오하고 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있는 것" 이것은 검찰이나 정부가 과중하게 고인을 몰아쳤던 것이 아님을 밝히는 귀절이다.
본 필자는 또 - 노 비리에 침묵하면서 - , 노무현씨의 열렬한 지지자들로 주축을 이루는 아고라에 그 당시 오르던 글제목들도 눈여겨 보았는데 그들 다수에는 엄연히, 노무현에게 극도로 실망한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그런 글들이 인터넷에 민감하였던 노무현씨 눈에 아니 보였을 리 없었다.
하여 노무현씨는 자기 지지자들이 그를 버리는 사태에 대비, 특유의 선제하는 식으로 글을 남겼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절대 오류가 없을 듯이 과감하고 저돌적이던 사람, 남을 향해서는 분노를 금세 솟구쳐 표현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저런 변화를 보였을까 ?
노무현씨의 일생은 '분노'로 특징지어질 만큼 유다르게 분노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잘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이르면, - 검찰의 수사를 인정하면서 - 그 분노, 자기 일생을 지배해온 것이나 다름없던 그 분노가 기실은 실체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매번 남들은 썩었다. 기득권은 썩었다. 남은 부패의 온상이고 자기는 도덕적이다. 너희는 기득권 세력이다. 는 식의 질타했던 일들이 기실, 그 자신 역시 그 자리에 앉아보았더니 역시 그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단정한다. 자신은 죄를 덜 지었거나 도덕적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그럴 자리에 자기가 아직 있어보지 못했다는 소리나 같다고 보면 된다. 노무현씨가 그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라 할까.
그러할 때 결국 그의 분노, 자기 일생을 지배하다시피하던 분노, 외곽, 남들에게로만 향하던 분노는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 외에는 없어진다. 그가 그 분노에서 해방되기 전에는.
자기에게 울화같던 지지를 보내주던 그 지지자들에게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부패한' 자신을 더욱 용서하기 힘들어지는 억압적 심리상태가 되는 것이다.
노무현씨의 일련의 마지막 나온 글들을 볼 때, 노무현씨는 4월22일 글을 쓰면서 이미 자기 자신을 버린 상태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 남들이 자기를 버리기 전, 자신이 먼저 버려버렸음을 보여주는 귀절이다.
그의 자아 속에는 두 개의 극단적인 자아가 있었던 것이다. 완강하며 분노하고 남을 정죄하는 자아와, 기실은 그 수준에 미달하는 자기를 볼 줄 아는 연약한 자아가 있었다. 그리고 자기성찰, 자기 내면을 볼 줄 아는 연약한 자아 개발은 뒤늦게서야 찾아왔다. 아마도 검찰의 수사를 통해? 그리고 분노에 익숙하며 완강한 자아가 뒤늦게 나타난 연약한 자아를 수치스러워하다가 버려버리는 과정에 이르는 것. 그 연약한 자아에게 스스로 자기 삶의 정리를 채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그것이 자살이다. 또 혹자는 그의 유서가 컴퓨터에 저장되었음을 들어, 가짜다 라고 하는 데, 노무현씨가 변호사로 일보다 컴퓨터 사용을 훨씬 친밀하게 했었던 것, 그 바쁜 대통령 시절에도 심야까지 컴퓨터를 했던 일을 안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인터넷에는 이미 경호원의 번복되는 말들로 인해, 타살설, 실족사설 등 여러 의견이 난분분한 와중이다. 하지만, 단순한 일일 수록 복잡하게 읽어야 하고, 복잡한 일일 수록 단순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생의 답은 그가 4월22일 올린 글에 다 나와 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 이런 글을 남긴 그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고 어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자기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자의 슬픔, 또는 완고한 자아를 끝내 포기 못해 그로 하여금 최후 승리를 구가하게 했던 삶, 일생 등짐에 얹어 다녔던 분노를 해결 못한 사람이 저지른 자아살해의 비극. 그런 사람이 대통령직에 올랐다는 것.
이런 모두가 아마 앞으로도 노무현씨를 한국 현대정치사의 극단적이고 비운을 택한 대통령으로 길이 회자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盧는 영구히 잊혀지는 길 보다는 영구히 기억되는 길을 택하였다. 그 뒤이어 골아프게 벌어질 한국 정치사의 현실 감당, 쓰레기 처리, 저 자살에 격분한 지지자들 심리파악 등등은 전부 우리가 해야 하는 몫이 된 것이다.
그가 타인을 용납할 줄 알았다면, 분노를 버릴 줄 알았더라면, 또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노무현씨는 그가 바랬던 대로, 검찰처벌을 얼마간 받고 난 후 고향땅에서 이웃들과 더불어 쓰레기 줍는 일과 농사짓는 일을 계속 해갈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 남은 시간 속에서 충분히 지지자들의 사랑을 다시 얻게 만들 수도 있었으련만.
인생(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최종의 진리만이라도 터득했더라면. 노무현이란 한 전직대통령의 마지막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을,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그가 그의 자살로 빚어질 혼돈.국가분열에는 마지막까지도 인식이 없어보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