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죽음을 둘러 싸고
정치권에서는 마치 국민의 뜻인양 자신들의 권력 투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각종 책임자의 사퇴,
얼핏 보아서는 당연한 요구고 국민의 목소리인 듯 보입니다.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죽음이 그들의 막된 수사 무리한 정치 몰이로 인한 것이라 사과를 하겠습니까?
설령그랬다 스스로 느껴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하셨을 겁니다.
사과 요구는 "나 너랑 싸울꺼야" 라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은 들어주지 않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사과를 한다는 것은 그 행위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국민들이야 그렇게 보지만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인정한다면
그 여파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스스로의 권력 포기와 동일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하셨겠지만
불가능합니다.
권력포기 서민과 가까워지는 행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지도자의 기본적인 힘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도주의적 리드를 국민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 어제 입니다.(노무현 정권시대)
일정 이상의 권력 리드는 불가결해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려 없는 무조건 적인 사과요구는 또다른 단절과 공포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요구 이전에 스스로 유감표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할 때 까지 기다려 봅시다.
억지로 받는 사과가 달가울까요?
스스로 느끼지 않는데 억울해 할 수도있는데 강제로 강압에 의해
미안해요 한다면 그는 우리의 꼭두각시 밖에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미에 맞는 꼭두각시를 만들려 해서는 안됩니다.
과거 군정권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행위입니다.
우리는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를 위하는 양 그들의 이득을 위해
우리의 목소리와 마음을 왜곡 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몰이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책임자의 사퇴를 생각해 봅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임기도 끝나지 않은 장관들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아직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지난 정권에서 일한 사람들이겠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께서 뽑으신 임채진 님.
검사들의 낡은 권위주의를 개혁하고자 강금실님을 취임시킨 그리고 검사개혁을
주도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보수주의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들 안에서도 각 정파에 따른 라인들이 있을 것이고요.
자, 그럼 이번 책임론을 통해 어느쪽으로 정렬이 될까요?
우리의 생각대로 중립의 어떤 사람들이 취임될까요?
우리의 희망일 뿐 또다른 코드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점검 해야할 것은
그들이 바로 일하는지 확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임명되건 그들이 잘 일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된 그들이 잘 일하는지 우리 스스로 그들의 업적을 돌리며
점검해야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그들의 업적을 그들의 공식적인 움직임(사생활 제외)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고 그들의 공식적 발표와 공적 발언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따른 점검을 수행하고 우리가 그들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들의 개인 일상이 많은 부분 침범 당할 수 있기에 다소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부분에서 어느정도까지 해야하고 어느정도까지 하지 말아야하는지
서로의 선을 그어야합니다.
무한 방치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한 테클 또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객관적 지표를 두고 논리에 맞게 사리에 맞게
상식에 맞게 서로 이야기 해 볼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그들에 의한 선전광고가 아닌 우리가 주도하는 무언가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중구난방 흩어져 있는 빈약해진 창구가 아닌
우리의 목소리를 한데 모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각 정치 당의 이권 집합이 아닌 우리 서민의 목소리가 뭉치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서민들이 밤마다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인터넷에 수십수만개의 글을 쓰는 것또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방법입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논의해 볼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숫자로 밀어붙이는 패싸움 같은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약자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일 수 있는
소수를 위한 화합의 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른의견을 가진 그들이 이해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도록
충분히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합니다.
급하게 처리하는 것은 상처를 내기 마련입니다.
상처가 나도 큰상처가 납니다.
큰상처가 나지 않도록 서로 준비운동도하고 적응훈련도 하고
이런 서로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인 통보는 일방적인 자기 주장은 폭력입니다.
그들도,우리도 이런 폭력을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문화시민이 여러분,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평화적 집회를 강제로 막는 전경들(사실상 수뇌부의 명령에 따르는 그들)의
건강과 안위를 보살펴 줄 수 있는 여러분입니다.
(고생합니다. 이리저리 똥개훈련 뛰듯 뛰어다니며 피곤과 공포에 시다립니다.
그들이 원해서가 아닌 윗분들의 명령에 의해 뛰어 다닙니다.
어느누구도 스스로 판단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피곤과 피로 아드래날린이 증가될 때 한시민이 그들을 밀쳐낸다고 가정합시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반응 합니다. 폭력적으로 말이죠.
그들이 성품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그전 몇시간부터 뛰어다니고 며칠동안
잠도 못자 피곤에 몸이 망가져가는 상태입니다. 제발 그들도 이해해주세요
그들이 무리하게 요구하고 강압적으로 한다고 한다면
따뜻하게 말 걸며 참아야 합니다. 그들은 아직은 어린 청년들입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분은 그자리에 없고 서에 앉아계시지요.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 하는 꼴을 당하는 것이 됩니다. )
우리 앞에 있는 지금 순간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야로 누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크게 보아야 합니다. 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많은 것을 고려해야합니다.
우리는 문화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문화 시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