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부모님,친척분들 살아계실 때 잘하세요...

ㅠㅠ |2009.06.10 02:47
조회 671 |추천 0

안녕하세요.

 

대구출신 20살 09학번 공대 새내기 남자입니다. 글 쓰는 재주가 없으니 이해해주세요..

학교가 안산에 있어서 집을 떠나고 생활중입니다.

 

외가쪽에는 이모가 3분이 계십니다.

첫째이모: 경북 상주 거주

둘째이모: 서울 거주

셋째이모: 대구 성서 거주

넷째이모: 저희 어머니입니다.

 

제게는 부모님만큼 소중한 둘째 이모와 이모부가 계십니다. 누나와 저는 어릴적에 이모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당시 애 키우는 방법을 몰라서 맡겼었다네요.

 

누나도 유치원 입학하기전 7년동안 이모부께서 키워주셨고 저 또한 3~4년간 이모부께서 키워주셨고 초등학교때는 방학마다 이모부집에 놀러가서 서울 구경도 많이하고 이모부께 글씨 예쁘게쓰는법, 맞춤법 등 공부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매우 엄격하셔서 집에서는 조용히 살았지만 이모부께서는 온순하시고 이해심이 많으십니다. 그런 이모부가 정말 좋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희 이모부.. 古 노무현 전 대통령님처럼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띄고 계셨습니다..

 

셋째 이모네가 염색공장을 하고 계셨는데 사업이 잘 안되자 1999년 당시 3억을 부모님께서 빌려주셨다고 합니다. 갚기로 한 3년이 지나고나서 셋째 이모와 이모부는 그대로 도주하고 잠적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허물없이 믿고 지내던 친언니가 배신했다는것에 엄청 충격을 먹으셨었습니다.. 정말 돈 때문에 핏줄도 버리더군요...

 

이런 와중에도 둘째 이모와 이모부는 굳게 믿으셨습니다.. 그정도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둘째 이모부께서는 이모와 결혼할 때 돈이 없어서 신혼여행도 못다녀오시고 집도 못구해서 큰할머니집에서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택시기사를 시작하시고 정말 열심히 일하셔서( 항상 새벽 4시에 나가시고 점심시간때 잠깐 돌아오신 후 다시 나가셔서 11시에 돌아오셨습니다. 개인택시로 하루에 16~20만원은 거뜬히 벌어오셨습니다.) 집도 마련하고 아들(이종사촌형)도 서울 고려대학교에 보내서 졸업시키셨습니다. 서서히 살림살이도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불행이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모부께서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3기 초기라고 하더군요. 하고있던 개인택시를 그만두고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항암치료때문에 그나마 있던 검정색 머리카락도 백발로 단번에 변하시고 나중에는 머리카락마저 빠지시더군요..

 

저는 정말 빌었습니다.. 이모부께서 완치되기를요.. 전 중학교 다닐적이였는데 자기전에 제 목숨을 조금 가져가더라도 이모부를 살려달라고  평소엔 믿지도 않았던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받아주셨던것인가요? 3기임에도 불구하고 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고 항암치료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이소식을 듣고 16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습니다.. 힘드셨을텐데 잘 이겨내셨다고... 제 나이에 맞지않게 격려도 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더군요.. 정기검진을 받던중 2007년쯤에 간쪽으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네요.. 그당시에 찾지 못했던 이유가 척추 속에 작은 암세포가 숨어있어서 발견이 안되었다고합니다.. 그래도 암세포가 크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 사이 자라났던 머리카락이 또 다 빠지셨습니다..  또 치료도중에는 힘이 필요하기때문에 영양보충을 잘 해야한다고 부모님께서 고기도 사서 올려보내고 서울 이모집에 찾아가서 직접 요리도 해드렸습니다. 이모부께서도 이겨내시려고 식욕이 없지만 꾸준히 밥을 드셨습니다.

 

항암주사를 1달에 1번씩 맞으시면서 힘든 와중에도 대구에 놀러 오시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차차 괜찮아지고있다고 말하더군요..

2009년 3월달에 안산으로 짐을 옮기기 위해서 이모부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저를 대리러 내려오셨습니다. 정말 힘들어보이시더군요.. 통통하셨는데 거의 뼈밖에 안남으셨었구요.. 그 때가 이모부를 본 가장 최근입니다.

 

조금 전에 대구에 있는 누나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이모가 엉엉 울면서  저희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더군요.. 이모부께서 한달도 넘기기 힘들것 같다고.. 요 일주일간 밥도 못먹고 물 한모금도 못마시고.. 영양주사를 맞고있다면서.... 이모부께서는 일어나시지도, 움직이기도, 지금은 말도 못하신다고 하네요..

누나가 말하고있는데 저는 그냥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습니다.

 

늘 부모님같았던 이모부인데.. 전화 한통만 해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데.. 전화할 시간이 없다는건 다 핑계였습니다.. 전화 2~3분 할 시간이 없다니요..

 

네 맞습니다.. 대학교 오고나서 집을 떠나왔다는것 때문에 신이나서 친구들과 매일 술마시러 다니고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고.. 집에 전화도 잘 안하고.. 누나로부터 들었는데 한번은 어머니께서 하나 있는 아들 집 떠나 보냈더니 집안에는 관심도 없다면서.. 누나한테 펑펑 울면서 말했다고 하네요.. 그래도 차마 저한테는 말할 수 없었다네요;;

 

집안에도 관심을 안가졌는데 이모부에게 관심을 가졌겠습니까..

 

이런 제 자신이 정말 바보같습니다.. 전화 한통 하는게 힘드는것도 아닌데..  자주 이모부께 전화할 껄... 이라는 후회도 하고있습니다..

 

정말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는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모부의 따뜻하고 온화한 목소리도 못 듣습니다.. 받기만하고 평소에 아무것도 못해드렸다는게 미칠것 같습니다..

 

톡커 여러분, 특히 집을 떠나서 타지방 대학교를 다니고 자취나 기숙사 생활하시는분들..  1일 혹은 2일에 한번씩은 집에 전화해서 부모님과 통화하세요.. 어떤 사소한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신의 자식이 집안을 신경쓰기도 하고 또 잘 지내고있다는것에 안도감을 느끼십니다..

 

또 살아계실때 잘해 드리세요.. 이 말 저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부닥치기전에는 실감이 안왔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니.. 후회스럽습니다.

 

전 지금부터라도 이틀마다 한번씩은 꼭 부모님께 전화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집안에 계시는 외할아버지께도 전화를 자주 할 것입니다. 외할아버지 연세가 올해 93살이신데.. 전 외할아버지를 생각도 안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기전에 잘 해드릴겁니다..

 

지금은 기말고사 시험기간이지만 주말엔 더 늦기전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모부를 보기위해 서울로 갈 예정입니다..

 

이모부께서 다시 일어나셔서...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듣고 미소를 보고 싶습니다..

 

글 솜씨가 없어서 내용이 왔다갔다 거리네요... 죄송합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