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사기에 속아 성노예로 팔려가"
미국서 위안부 강제동원 문건 입수
정진성 교수팀, "위안부 연구와 배상문제에 획기적 자료"
2003/01/03 오마이뉴스 공희정 기자
"구 일본군 성노예 강제동원 입증 문건"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1945년 8월 15일 종전 직후 미군에 생포된 일본군인, 한국군인, 징용자 그리고 10명의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신상카드와 포로심문에 관한 자료들 속에서 발견된 것. 이들은 필리핀으로 끌려간 위안부들로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정 교수팀이 '미 연방정부 기록보존소'에서 발굴한 파일명 'Kunming-REG-OP-3'에 따르면, 구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정부가 강압적 또는 사기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쿤밍의 예난 군화중학교에 위치한 중국 군 본부에 25명의 한국인(여성 23명, 남성2명), 대만 남성 1명, 그리고 81명의 일본인(여성 4명, 남성 77명)이 전쟁포로로 잡혀 있었다. 한국인 포로와 일본인 포로의 태도와 증언은 다르며 대조적이다. 한국인 포로들은 모두 일본 부대로부터 도망 나왔으며, 중국 부대에 자발적으로 투항했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신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그들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황남석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22명의 한국인 여성들은 모두 성노예(위안부)였다. 그들은 강압(compulsion), 그리고 사기(misrepresentation)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다. 1943년 7월 한국을 출발한 15명의 여성들은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한국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왔다. 약 300여 명의 여성들이 비슷한 사기로 성노예로 모집되어 왔다."
정 교수팀은 이외에도 필리핀 루손섬의 포로수용소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포로명단 중 한국인 여성 42명의 신상카드도 찾아냈다. 정 교수는 "신상카드는 한국인, 대만인, 일본인 성노예 명단이 따로 작성됐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인 성노예 명단을 찾기 위해 118개의 상자와 20000여 신상카드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신상카드에는 이들의 국적이 '한국(Korean)'으로 명시돼 있고 주소, 나이, 직업, 교육 정도 등이 기재돼 있으며, 직업은 대부분 웨이트리스(Waitress)나 엔터테이너(entertainer)로 돼 있다. 신상카드에 기재된 여성 중에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고학력자도 포함돼 있다. '소세란 오미나'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대구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끌려가 성 노예가 된 것으로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케이스다.
이밖에도 한 중국인 기자가 쓴 '비루마(버마)전선 종군기'라는 책에 포함된 '타타미'라는 일본군 연대장의 위안부 관련 '일기'도 공개됐다.
"1944년 4월 16일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에 투숙한 후 연금되어 있던 영국 소녀를 불러 욕실에서 등을 밀게 했다. 결국 해상에서 반달동안의 성욕을 해결했다. 오후에는 꽃과 같은 미모의 프랑스 여자 애를 호텔에 불러 음주 시중을 시키고 밤에 그녀를 묵게 해 함께 밤을 새우다."
정 교수는 "일본군은 한국인과 대만인 이외에도 유럽인들까지 성노예로 끌어 들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조사 활동을 통해 이를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를 지우려고 지우려고 해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야. 지금 이것도 기사 중 일부이며 사건으로는 작은 하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면 결국 너네 자신의 덫에 걸려 묶이는 신세만 되는거지. 너네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권이라는 건 알겠지? 인권을 침해해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너네가 살인을 하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나 생각이 드는구나~
불쌍하신 할머니들의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거대한 함성으로 들릴때면 이미 늦어버린단다.늦었다고 생각할때가 시작이란 말도 있듯이 많이 늦었지만 부디 지금이라도 너희의 만행을 사과하고 용서받아서 새롭게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