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대로 했다,"는 말 제발 하지 마라. 연령의 고하, 지위의 높고 낮음, 직업의 귀천에 불구하고 이 말은 아주 "무식한 말"이요, 천박한 표현이다. 물론, 아주 비논리적인 감정적 본능적인 표현이다.
인생의 어느 단계까지는 이 말이 통하기도 할 것이다. 요리 실습 중의 강사가 수강생에게 "가르쳐준대로 했느냐"고 묻고 학생이 "예, 배운대로 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이다. 또, 가정에서 부모가 "왜 너는 엄마가 가르쳐주는대로 하지 않느냐,"라고 나무라고, 아이는 "배운 걸 잊어버렸어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온 법과대학 학생이 "시험 잘 치렀니?"라고 묻는 급우에게 "배운대로 쓰기는 했는데..."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통과하여 연수원을 거쳐 법관에 임용되어 이미 특정 형사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나는 배운대로 판결했다,"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현직 판사는 법과대학의 학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한 인격자일 뿐만아니라 독립한 판단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 내의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아니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서" 독립하여 판단하는 "독립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운대로" 판결하는 자가 아니라 건전한 국가관과 세계관에 입각하여 상식과 조리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법관이 언제나 의식을 긴장하여야 할 대상은 "배운 것을 잊지 않는" 기억력이 아니라 "무엇이 공정한가" "무엇이 의로운 일인가"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모색하는 일이다.
"배웠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허망한 것이다. 그 토대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그 지식은 편견일 수가 있다.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과 같이 법학과 그 인근 학문들, 예컨대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학문 이론도 변화무쌍한 것이며, 또한 특정 국가의 특수한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판단 주체인 법관은 "배운 것" 보다는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이정렬판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배운대로 판결했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그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판결했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햇다는 데서 그의 학문적 기초가 아주 천박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가 배웠을지 모르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교수는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완전무결한 존재도 아니다. 이 판사야말로 "완전무결을 추구"해야하는 인격체인데도 스스로 그러한 자격을 포기하고 교수의 품과 법학교재로 달려가는 우매함을 드러낸 것이다.
공정성. 공평성. 정의의 추구는 어쩌면 그가 배운 지식과 법전과 다른 무엇보다도 사물의 인과관계에 대한 치열한 사고에서 오는 것이다. 특정 이념 성향의 구성원들과 교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법관이야말로 구도자적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자기자신과 하느님과 우주와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 판사는 우리 사회의 소수 구성원이 이 나라 법제도가 정하여 강제하고 있는 특정의 임무에 대하여 개인적 신념을 (예컨대 양심의 자유) 내세워 저항하는 사태에 직면하여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의 증오와 반발을 자초하면서까지 "인권"이니 "인간의 존엄성"의 명분을 내세워 보호할 가치가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했었다.
사회구성원의 "머리에 뿔 달린 소수"를 그렇게 달래는 일이 정당한가. 의롭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지 않은가. 그러한 "회유적 대응"이 가져올 사회적 무규범 상태를 예상해 보았는가. 우리 사회에는 군역을 피하기 위하여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육체를 일부 훼손하면서까지 (예: 연골 수술. 체중 감량), 또는 국적을 이탈하기까지 (미국시민권 획득 등) 하는데 앞으로는 '여호아의 증인' 신자 신분을 획득하는 자들이 엄청 늘어날 것이다. 법관이란 그저 법학교재에 쓰여져 있는대로 판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런 모든 인과관계를 심각하게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가족 중의 편식하는 한 사람의 어린 가족의 식성에 맞추기 위하여 다수의 가족들이 과외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가를 그 부모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되레, 편식자를 벌하고 교정하여 절대 다수의 식사 습관에 맞추도록 하는 노력이 온당한 시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