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2009-04-11]
별명은 ‘한국의 패리스 힐튼’, ‘이슈 메이커’.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통용될 수 없는 행동과 발언으로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웬만한 사람이면 주변의 비아냥이나 비난에 위축될만도 한데,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그의 이름은 낸시 랭(30). 직업은 팝아티스트, 행위 예술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예술에 뛰어든 지도 5년이 흘렀다. 아직까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작품 전시회를 여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비단 팝아트 뿐만 아니다. 각종 패션쇼나 행위 예술에서도 낸시 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것이 호기심이든 관심의 표현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대중 예술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5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물론 욕도 많이 들었고 오해도 많이 샀어요. 반면 얻은 것도 많아요. 일단 20대에 남들 만큼 바쁘게 살았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어요. 20대에 이루지 못한 일들이 때론 아쉽기도 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
낸시 랭의 작품세계…“설명을 들으니까 어렵지 않죠?”
낸시 랭의 작품은 사실 난해한 편이다. 모나리자의 얼굴에 로봇의 몸체가 붙어있는가 하면, 건담 몸을 한 명성황후가 칼을 쥐고 있는 작품 등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난해하지도 않다. 작품의 특징만 잘 잡아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작품마다 등장하는 ‘터부 요기니’가 대체 무엇일까. 낸시 랭은 ‘터부 요기니’를 금기시되는 신적존재라고 설명한다.
“터부 요기니는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천사와 악마의 혼합된 이미지, 즉 신과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메신저라고 보시면 돼요. 이 존재들은 인간이 욕망하고 갈망하던 꿈을 이뤄주고 사라져요. 그러나 죽는 순간 다시 또 다른 터부 요기니로 부활하죠.”
작품마다 로봇이나 기계류가 많이 등장한다. 낸시 랭이 어렸을 때부터 로봇이나 기계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굴복하지 않을 만큼 강한 로봇을 통해 자신의 꿈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특히 명성황후 작품의 경우, 일본 자객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가 일본의 대표 로봇인 건담의 몸으로 복수해주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또한 발에 사람의 장기를 붙인 이유는 깊은 내면의 고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욕망이나 철학이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을 통해 제가 소원하고 소망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예를 들면 팔이 없는 비너스에 팔을 선물하고 싶었고, 명성황후가 일본 대표 로봇인 건담으로 변신해 복수해주길 바란거죠.”
얽히고설킨 오해들…“노출패션? 리비도가 커서 그래요”
워낙 통통 튀다보니 오해들도 참 많았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은 순간에 사람들의 비난을 듣기 일쑤였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낸시 랭을 검색하면 ‘낸시 랭은 왜 이렇게 비난을 많이 받죠?’ ‘낸시 랭이 또 뭘 잘못한건가요?’ 등의 질문이 즐비하다. 그래서 낸시 랭에 대한 갖가지 억측 소문과 오해들을 풀어보기로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故 안재환의 문상복장 논란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새벽 4시 경 평소 친하게 지내던 김창렬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 안재환의 장례식을 다녀오자는 것. 오전에는 서울시청의 다산 120 센터 1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이 센터의 상징이 주황색이라 거기에 맞춰 옷을 준비했다. 이름표도 행사장에서 달아줬다. 오후 3시에는 팝아트 기획전 일로 삼청동 갤러리에 작품을 전해줬다. 그리고 빈소로 달려갔다. 4년 만에 빈소를 찾은 터라 복장은 최대한 단정하고, 야하지 않게 입어야겠단 생각만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의상 논란이 불거졌고,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장례식장에서 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가니까 눈물만 나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어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더군요. 그때는 너무 속상했죠. 의도와 상관없이 비춰진 모습이 그렇게 보이니까…”
두번째는 노출에 관한 얘기들이다. 낸시 랭은 노출이 가미된 퍼포먼스를 수 차례 펼친 바 있다. 굳이 행위 예술이 아니더라도 그는 방송이나 패션쇼에서 종종 야한 복장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몇 몇 사람들은 ‘낸시 랭은 노출 빼면 시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하고 있다. “매력적인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리비도(性的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리비도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에너지들이 제 퍼포먼스에 그대로 드러나는거에요. 노출은 결코 나쁜 짓도, 못된 짓도 아니에요. 자아를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죠.”
열심히 일한 20대…“남아있던 빚 문제도 다 해결했어요”
낸시 랭은 대학교까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남들 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쓰고 다녔다. 그러나 집안에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투병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낸시 랭은 당시 쇼크와 함께 큰 시련을 겪었다.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생각으로 홍대 미대 졸업 후에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더 많은 작품을 위해 힘을 쏟았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게 됐어요. 그때는 정말 밥을 먹고 잠자기 위해 돈을 벌어야했어요. 남들보다 덜 자고 더 뛰면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낸시 랭은 팝아트와 관련된 창작 활동 외에도 기업과의 광고나 비지니스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대 때 이미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빚을 제외한 매월 최소 생계비가 650만원이 넘었는데, 지금은 그 돈을 다 갚았다고 한다. 심지어 월세로 살던 집을 전세로 옮겼다. 주변에서는 ‘돈과 결부된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고 비난도 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상업 예술이 쓰레기라는 것은 옛날 생각일 뿐이에요. 자기 작품에 돈이 필요하면 돈을 투자하는게 맞잖아요? 그래서 저도 기업들과 손을 잡고 작품이나 패션 런칭도 많이 했어요.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올해 작품전도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오는 6월 부암동에서 개인 및 공동 작품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팝아티스트 신창용을 비롯해 다른 작가 3명과 한 층에 개인전을, 또 다른 한층에 공동 작품전을 연다. 9월에는 신사동에서 페인팅 개인전을 가질 생각이다. ‘터부 유기니’와 달리 이번 개인전 ‘킬러’는 순수 페인팅으로만 이뤄진다. “앞으로도 낸시 랭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드릴 계획이에요. 대중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해야죠.”
〈스포츠서울 배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