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내가 속해있는 "가정"에 대해 가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한다.
남들은 아니지 솔직히 말해서, 나를 그나마 조금은 알고 있는 그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그네들이 나 자신이 되어 본 적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리 살 필요 없다 바보야 그런다고 어느 누가 알아줄까!!"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다 "누가 알아달라고 하는게 아니고 그건 내가 해야할일이라서 한다 집안일이잖아"
스물에 부모반대 무릅쓰고 시작한 인연이다
아이하나 덜렁 낳고보면 부모마음 누그러질까했더니 아예 아버지 돌아기시기전까진 친정 출입조차 못하고 지켜온 가정이다
둘다 달랑 몸하나에 간난쟁이까지.. 고생을 이루 말로 다 할까만은 백말띠에 남편은 늘 사고뭉치 개구쟁이처럼 내 얼굴에 눈물자국 지울새 없이 속으로 속으로 미운정을 흘러보내고 있었다
지난 사진을 보며 "참 청순하고 마음여린 너였는데"하는 남편을 보며 "미안하지만 네 앞에서만 아니면 난 아직도 풋풋한 첫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질수도 있는 사람이네"슬며시 속웃음을 짓는다
금지옥엽 부모사랑 귀한줄 모르고 몸이 약한 탓에 동생들한테도 늘 위함을 받으며 이기주의로 또 개인주의로 길들여있던 내가 임신 6개월까지 공장에서 일을 해야했고 기저귀를 들여서 마산 몽고정 건넌편에 있던 "솔잎 탁아소"에 큰 아이를 맡기면서까지 생계 걱정을 할때남편이 술마시고 싸움을 해서 파출소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어찌 할 바를 몰라 아주버님한테 연락을 할때도 남편이 아주버님께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망설이고 용기를 내야할만큼 나 아닌 다름사람을 먼저 생각할줄 알게 해준 남편이 되레 고마웠었다
지금도 남편한테 아이들한테 서운한 마음이 있을때면 "다 받아들이기 나름!!"해가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노력을 하며 살고있다
술이 약한 남편은 또 왜 그렇게 친구를 좋아하는지 술을 좋아하는지
가난한집 칠남매의 네째. 어디 관심한번 받을 기회가 있었겠냐하는 느그러운 마음으로 내가 다 해줄께하며 부처님 마음 가져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술한번 마시면 다음날엔 어김없이 결근, 지금까지 거쳐온 회사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 모자라고 발가락까지 다 동원해야겠다
오죽해야 지난달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입사날을 한번 다시 봤겠는가 너무 대견해서, 이번엔 5년이 조금 넘네
인연을 맺은지 올해 17년째, 둘째를 가져서 5개월째부터 여기 시골로 이사오면서 생후 18개월째에 놀이방에 보내기까지를 제외하면 14년이 넘는세월을 맞벌이로 일했건만 남편은 아직도 밥물조차 맞출줄 모른다
그것이 큰 자랑인양 동료들한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얼굴 모르는 동료 아내들은 나란 사람을 어찌들 보고있으려나 생각하면 너무 쓸쓸해진다
일년내내 5시 이후에 일어나본적 없고 자정을 안넘긴적도 거의 없을 정도로 회사마치고 10시쯤에 집에들어오면 설걷이부터 시작해 우편물 정리까지..
삼년전 이맘때 어찌 그리 피곤하던지. 며칠 11시쯤에 자는 날 보며 요즘 뭐하느라고 그리 일찍 나느냐는 거였다.
큰아이 중학시절 도시락을 쌌었는데 작은 아이 유치원 수발에 청소기에 설걷이까지 통근버스를 놓칠만큼 아침일이 많을때, 미안하지만 청소기는 니(남편)가 좀 돌려주면 안돼겠냐는 말에 그날밤 만취한 상태로 퇴근을 해 두팔로 X자를 만들어보이면서 절대 그럴수 없다는 거였다.
힘들면 회사를 때려치라는 거였다.
참으로 웃기는건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건 워밍업하는(집안일을 하기 전) 거고 자기가 하루 8시간 겨우 채우고 오는건 생업 때문이라 여기는 남편의 생각이었다
모르겠다 그리 오랫동안 맞벌이를 했으면 이제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편해질만도 한데 워낙에 맨몸으로 시작해서인지 애들 둘 치닥거리하고 나니 빠듯하다
그나마 아내가 맥없이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만큼 밥이라도 먹고 살지하는 안스러운 마음이나마 남편이 가져줬더라면 내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일이다
어젯밤에 책읽고 있는 아내를 위해 커피 한잔 부탁한다는 말에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직접 타 먹으면 되지 재미있게 TV 보는사람한테 시킨다며 잔소리에 잔소리를 하는 남편을 보며 오늘 아침에 난 또 그눔의 끝도 없는 가정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지금까지 내 가정을 위해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의무이며 사랑이라 자족하며 해온 가사노동(?)의 시간들이 내 어깨위에 무거운 짐이 되어 짓누른다
나는 이렇게 주절이를 해 놓고 아무일도 없었는듯 또 그렇게 내 가족들 앞에서 웃어야한다 금지 옥엽 사랑받던 그 딸이 아니고 끊없이 사랑주던 내 어머니의 그 사랑법을 말없이 말없이 배워야하는 나이므로, 무뚝뚝한 내 아버지곁에서 돌아서 눈물 훔치던 그 수줍던 무던한 사랑, 그것을 베풀어야할 나이므로..
스물, 철없는 나이라고 어른들이했던 그 말속에 아내로서 어미로서 다해야할 소임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알음이 없었던 나이였다것을 내 나이 서른 일곱에 겨우 어슴프레하게나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