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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 일러 주고 싶다.(11)

이순호 |2004.06.01 23:12
조회 179 |추천 0


절반의 어머니.
1999.6.17.
큰누이에겐 아직도 제 앞가림 하나 제 되로도 못하는 당신의 딸과 동갑내기인 못난 동생
때문에 늘 걱정하게 만드는 골치 덩어리인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딸만 넷을 낳으신 어머님이 막내딸 낳고 칠 년 동안 하루같이 매일 목욕하시고 정안 수를
떠놓고. 시집간 딸에게도 부끄러워하시며 어머니가 낳은 남동생 때문에. 칠순이 다 되어 가는 늙으신 몸에 당뇨에다 합병증으로 자신의 몸도 겨우 겨우 움직이는 몸으로 뒤뚱뒤뚱 오리걸음으로 한쪽 손엔 반찬이 혹시 쏟아져 남에게 피해라도 줄까봐 반찬이 질식하도록 겹겹이 꽁꽁 묶은 검정 비닐봉지 드시고. 또 한 손엔 과일 가계에 들러 과일 가계 새댁과 산다 안 산다 실랑이하시면서 까지 과일 몇 개라도 더 얻은 과일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과일 담긴 까만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서 몇 걸음이라 덜 걸으시려고 동생 댁 가는
버스를 염색한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버스를 겨우겨우 세우시고. 양손에 드신 과일 봉지는 타는 문 두 번째 칸에 먼저 올려놓으시고 어린아이 마냥 한쪽다리를 끌어 먼저 버스에 올리시고 남은 다리는 당신의 손으로 끌어당겨 겨우 올리시고 걸음마 배우는 얘기처럼 손을 버스 계단에 짚으시고 비틀비틀 오르시어. 버스기사의 눈치를 힐끔 힐끔 보시며.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성 치 않는 허 리를 연거푸 구부려다 펴다하시면서 운전사 한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고서야 의자 앉으시고. 하루에 몇 번 밖에 다니지 않는 동생 네 집으로 가는 버스를 다시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뱉으신다.그 고생을 감수하시면서 까지 동생 댁에 다니시는 칠순을 앞둔 누이가 나의 큰누이 이시다. 의자에 앉으신 누이는 반찬 통을 혹시라도 쏟아 질까봐 발 사이에 끼어 두발로 힘을 주어 잡으셔서도.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과일 담은 봉지가 굴러 둘째 딸보다 더 어린 올케에게 줄 과일봉지를 그만 놓쳐 버리셨다. 버스 안에 여기저기 구르는 과일을 주우시려고 버스 바닥을 팔도 다리가 되어 기어다니시며 주워 담고서. 동생 네 집에 와서 "참말로 명은 길다 길어" 하시며. 다리를 벌려 뒤뚱거리시며 부엌으로 가시어, 설거지를 하시며 "이기머꼬 이기머꼬" 하신다. 설거지를 끝내시고 방에 기어 들어오시어 둘째 딸보다 어린 올케 먹일 쇠고기 국을 끓일 준비하시면서 내게 이르신다. "형주 어마이 한데 잘하는지는 알지마는 우야든동 잘 해레이 이거도 다  니 업보다. 니 업을 우얄끼고 니가 풀어야지 우야노. 나도 지한테 전생에 지은 죄가 있는지 모리겠다" 하시며 손바닥으로 기어서 자신의 육신을 끌고 올케에게 다가앉아 이마 짚으시며 "내 누군지 알겠나" 하셔도 아내는 눈만 껌뻑 거릴 뿐 아무런 기척도 없다. "아이고 이 사람아 아이고 이 사람아" 하시며 긴 한숨을 아내가 덮고 있는 이불이 펄럭이도록 내 뱉으시는 큰누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계시던 누이는 부엌에서 새카맣고 찌그러져 냄비 뚜껑 역할도 제 되로 못하는 냄비 뚜껑과 냄비 사이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시면서 내게 이른다. "국이 다 끓었거든 가와 봐라 쪼매 뜨미기 보자"며 갓난아기에게 먹일 때처럼 후후 불어 자식 같은 올케에게 떠 먹이는 칠순을 코앞에 둔 노인의 모습이 내 큰누이의 모습이시다. 설. 추석. 그리고 부모님 제사 때마다 음식을 손수 장만하시어 들고 오는 큰누이이시다. 농사지어 오일 장날마다 내게 반찬 해먹으라고 채소를 주시는 셋째 누이와 친정으로 제사 지내러 오시기를 벌써 여럿 해를 반복하시는 내 어머니 같은 큰누이다. "내년에는 올 수 있으려나" 하시며 한숨 토하시며 걱정하시는 내 큰누이 한데 나는 아직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사는 그런 인생이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며느리 없는 시간에 부르시어 반찬 통을 건네 주시며 어린아이에게 이르듯. 사십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동생에게 늘 당부 말씀을 하시는 내 큰누이 이시다. 그런 큰누이가 내게 있었기에 내게는 큰 버팀목이 된다. 나는 내 삶이 가끔 고달파 올 때면 씩씩거리며 큰누이를 찾아가 욕설을 퍼댄다. 내 거친 욕설도 받아주는 큰누이가 내게 있어 내 업을 지고 끌고 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큰누이! 큰누이가 세상을 등지는 날에는 나는 어쩌면 그녀의 자식들보다도 더 슬피 목놓아 울며 통곡할지도 모른다.
누이라기보다 내게는 절반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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