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1 | 국민연금 폐지 운운, 수준이 문제다.
등급 토끼풀 둘 필명/아이디 공덕면 / wjdd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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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연금 폐지논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근 국민연금에 관한 사회적 논란은 사회보험의 본질과 동떨어지고, 국민연금 폐지이후의 적절한 대안도 없이 대중영합이 지나치다.
"국민연금의 비밀"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국민연금제도를 비난하고 있다.
첫째, 맞벌이 부부의 경우 등, 연금을 납입하는 사람의 사망에 관한 유족연금에 대한 비난이다.
독일, 캐나다의 경우 병급(자신의 퇴직연금에 유족연금의 일부를 함께 받는 제도)을 하는 사례를 들어 병급을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국민연금이 부부단위로 운영되는 제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선택제인 현행제도가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일본이나 영국의 경우도 우리나라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다.
둘째, 왜 초고소득자(재벌)과 일정수준이상의 고소득자가 동일한 연금액을 납부하냐는 문제. 소득재분배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액을 받게 되어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현 세대의 납부로 조성한 사회적 종자돈을 정부 등에서 운영하면서 이들이 연금을 수령하는 과정과 소득이 있는 후세대가 종자돈을 매꾸어 가는 과정이 순차적, 병존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저소득자일수록 좀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소득자에게 실수령액보다 더 많은 부담을 안길 수 없다는 것은 연금제도가 지니는 본질적 한계이다.
연금제도는 세금이 아니라는 것은 이점에 있다. 즉 사회일반으로 효과가 귀착되는(누가 받는지 알 수 없는) 세금과 달리 연금의 경우에는 그 받을 자(재산적 급여의 수혜가 있다)가 분명하다. 고소득자들에게 원금에 미치지 못하는 직접부담을 강제하는 것은 보험제도 자체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를 받아들이는 전제하에서,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하면 같은 세대 안에서는 소득재분배가 이뤄지지만, 후세대에게 훨씬 많은 부담을 떠안기는 것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고소득자에게 있어 사회보험은 "소득보장"적 성격이 아니라 혹시 모를 위험발생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위험예방"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것이 국민연금의 취지에도 맞다.
최근 정부의 불만해소책은 이런 점에서 더욱 국민연금의 개선을 어렵게 만든셈이다. 연금상한액 납입 대상을 월소득 420만원으로 높일 경우, 단순히 고소득자의 납부액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장차 지급될 급여액도 늘어나 결국 연금재정의 안정이나 소득재분배 기능에 별로 기여가 안된다. 이는 더욱 후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세째, 지역가입자의 경우 연금 못내면 재산을 압류한다며 경고장을 발송하고 차압, 압류하는건 물론이고 연금 납부액도 동종업계 평균을 잣대로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다는 문제. 강제징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국민연금의 가입은 법이 정한 의무다. 사보험처럼 가입해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험료 납부가 임의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성실히 납부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형평성에 문제는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가뜩이나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마당에, 혜택은 받으면서 무임승차하는 지역가입자들이 늘어난다면, 이들의 노후비용까지 성실히 납부한 사람들이 부담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법정 의무의 사회 구성원간의 형평있는 부담을 위해서 사후적 조치로 강제징수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봉급생활자의 연금납부의 불만은 (세금문제에서와 같이)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가 공평하게 거둬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는(원천징수) 임금근로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자영업자들은 지나치게 적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것은 의혹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의 가입자 소득 파악 능력은 여전히 저조하다. 이러한 능력을 높이려는 시도 역시 그다지 보이지 않으면서, 최근 국내경기가 악화되자 지역가입자의 절반 가까이가 체납자 및 유예자 등 납부예외자가 됨으로써 정상적인 납부자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적정한 제도개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해 (현장의) 납부강요나 재직자 노령연금의 지급시기, 반환일시금의 상속여부 등 불만의 소지는 해소될 수 있으나, 졸속 접근은 다시 정상적인 납부자들의 불만을 사고 후세대의 부담도 가중시킬 것이다.
2. 국민연금이야말로 후세대를 위한 정책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인식 부족은 국민연금을 확정이자율을 가진 저축성 보험의 일종으로 여기거나, 국민연금이 후세대에 더욱 부담을 준다는 식의 태도이다.
전국민 연금제도가 실시된지 5년이 되어가는데도,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여전히 여기에 머무는 것은 정부와 이를 관리하는 공단의 책임이다.
더 많이 준다, 재테크다, 효자다는 사탕발림을 국민을 호도한 정부와 공단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민연금은 저축이 아니다. 저축이라면 원금에 대한 일정수익률(이자)을 합하여 확정적으로 지급하여야 한다. 국민연금이 재테크라는 선전을 한번만 곱씹어 본 사람이라면, 연금이 저축이나 저축성보험(저축보다 수익률이 낮다는 것은 너무 당연)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보험은 위험이 상존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인 경제제도이다. (같은 종류의 사고를 당할 위험에 노출된) 많은 사람이 미리 금전을 갹출해 종자돈을 만들고, 불의의(우발적) 사고를 당한 사람이 이것으로부터 재산적 급여를 받는 것을 전제로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이르러서는 그 목적인 사고(소득없는 정년)가 우발적이라기 보다는 확정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일반적인 경우) 사보험의 사고에서처럼 한번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거의 모든 구성원이 장기적으로 재산적 급여의 수혜자가 된다.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서 이 동일하고 거의 확정적으로 발생할 (노인이 된다는) 사고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대응방식은 계층적으로 무척 상이할 수 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반면 출산율과 가정내의 부양(효)의식이 낮아지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노년이 빈곤화하고 이에 의해 사회경제적 문제가 양산될 것임은 합리적 예측범위내에 있다.
한국사회는 자본주의의 압축고도 발달로 인해 생활구조의 변화(가족내 부양의식의 약화),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른 인구 노령화 현상과 도시형 생활구조의 정착(농촌노인에 비해 도시거주 노인의 생활이 보다 열악하다)등 허다한 노인문제의 가능성을 가져올 결과들에 빠르게 노출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제도에 의해 미리 조성된 종자돈이 없다면 일부 특수계층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의 노년에게 강요될 경제적 불우함으로부터 미래사회가 해방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후세대의 세금에 전적으로 의존해 기초생활을 보장받거나 아니면 평균 1.5명도 되지 않는 자식들의 부양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연금제도 없이는 현세대의 미래는 참담하고, 후세대의 부담은 가중된다. 오히려 더욱 분명한 것은 경제사정이 어려울수록 국민연금의 필요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푸념은 내뱉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나, 사회적 차원 특히 사회단체를 표방하는 자들은 할 수 없는 말이다. 이들이 전부 65세이전에 사망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일시적 경기변동에 의해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빠듯할수록 강제적인 공적연금제도가 중요성은 커진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현재도 어려운데 왠 미래라고 하겠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연금제도가 더욱 필요한 셈이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처한 미래이고, 구성원 개인이나 부부 차원에서 대비하기 어려운 생활의 위험을 사회적으로 연대통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제도로서 국민연금이라는 사회보험은 필요하다. 가족상호간의 부양능력이 약화되어 개인의 차원에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클수록, 반대로 공동체의 부담이 늘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가입을 의무화하는 사회보험의 형태로 운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보험은 개인보험처럼 자유의사에 의해서 가입하는 것은 아니며, 보험료도 개인, 기업, 국가가 서로 분담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사회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그 개인의 미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현재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을 국가의 수혜적 차원에서 보거나, 세금과 같이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이를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와 정년이라는 개인의 노동쇠퇴에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자본주의 제도의 필수적 제도로서 인식되는 것이 마땅하다. 개인연금의 도입에 대한 각 국가별 차이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거기에 도달했느냐와 각국이 연금제도를 운영해야 할 현실적 조건에 처해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바라볼 문제이다.
국민연금이 보험료의 계산에 있어서 위험의 정도보다는 소득에 비례하여 분담함을 원칙으로 하는 것은 "저축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이 부수적으로 가지는 소득의 재분배 기능 때문으로 볼 문제이다. 따라서, 동일인에게 하나의 공적연금제도에서 2가지 이상의 급여를 중복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저축성이 아니므로, 손해의 발생에 의해 (사적 보험은 이와 관계가 없다) 공적 보험의 보장의 합은 각 보험중 최대 급여액을 한계로 할 것이고, 이것은 소득재분배의 기능에도 맞다.
여기서 과다한 급여를 방지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가입자 및 후세대의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일 것이다.
3. 국민연금은 사회주의 정책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기책임의 원리가 작동한다. 이는 현실이자 당위이다.
한 세대가 소득활동을 끝내고 상당 기간 퇴장하지 않을 정도로 수명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 원리는 세대간에도 적용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임금을 기본소득으로 하는 노동자들의 노후생활이 엄격한 자기통제에 의해 노후생활의 준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는 정년과 사망시점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그렇다.
즉, 사회적 강제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노후에 대한 사전준비를 할 여지를 없을 것이다. 비록 임금이 상당한 수준에 있더라도 일상지출을 감당한 후에 장래에 예정된 불확실한 필요규모의 노후 준비에 충당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수백만 신용불량의 시대에서 더욱 드러난다.
연금보험은 개별적으로는 용이하지 않은 준비를 집단적으로 확보하도록한 사회적 합의이다. 지금의 연금투쟁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경시한 정부가 경기침체의 장기화 과정에서 역풍을 맞은 꼴이다. 보험기금은 임금중 평균적으로 포함되는 노후생계비의 강제투입이며, 가계지출의 구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임금의 일부에 대한 사회적 관리이다.
연금제도에 대해 일방에서는 없애라고 난리지만, 정부와 기업, 학계, 언론의 연금제도 해법은 보험료율을 높이고 급여수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데로 모이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급여액이 줄어들 경우, 국민연금이 노후보장 수단으로 제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발하며, 적극적인 국고 지원을 요구한다. 문제는 공적연금의 중요한 존재의미중 하나가 확정 급여를 지급할 것이라는 기대를 통해 연금수급자와 납입자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인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국민연금이 벌써 수차례 급여수준을 낮추게 된 것이다. 정부는 마직막 개혁이라고 생각하고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아뭏든 적어도 노동계, 기업, 정부 할 것 없이 국민연금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국민연금을 저축성 보험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는현실에서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국민연금은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될수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라는 이름의 단체가 이러한 국민연금제도의 본취지와 올바른 이해에 진력하기 보다는 폐지에 "목숨을 내맡기겠다"는 극언을 서슴치 않는 것은 상식도 정도도 벗어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진정 후세대를 생각한다면, 국민연금 폐지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현재 ‘저부담, 고급여’로 되어 있는 연금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30~40년 뒤의 기금고갈을 비난하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장의 어려운 선택에 기꺼이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 역시 초기의 정책집행과정에서의 국민에 대한 기만을 사과하고, 지금이라도 국민연금제도의 본취지를 알기쉽고 자세하게 알리고, 소득과 재산정도의 파악이 용이한 국세청을 통한 수납 등을 통해 차제에 형평성시비를 말끔이 씻어 더이상의 미봉책을 막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적 동의를 통해 세금을 연금재정(종자돈)에 투입하고, 공단의 관리감독주체도 국민적 지지를 상실한 보건복지부에서 국무총리나 기획예산처로 옮기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볼 일이다. 기금의 운용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민간금융기관에 위탁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유지관리비용을 최대한 축소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공단의 고통없이 국민에게 그 분담을 강요해서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노인인구는 이미 4백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2030년이 되면 1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액수가 충분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다수의 노년의 경제생활과 그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무책임하게 방기하자는 국민연금폐지 주장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들의 수준에 맞춰서 실시해야 한다."는 폐지단체장의 말처럼 국민들의 수준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2004-06-03 오전 4:13:00 from 211.32.5.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