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의 얘기입니다.
전 저녁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라 오전엔 집에 있죠.
오전 11시 22분에 휴대폰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002-8861-8899 (리얼하게 번호와 시간대 말하겠습니다..어차피 추적불가능..)
( 002?..이게 뭐지? 국제전화인가? 제가 별로 국제전화 받고 산 일이 없어서리...)
받았습니다. ARS 자동안내전화더군요.
" 우리은행입니다. 고객님의 수표결제일이 내일이므로 안내전화를 드립니다.
직원과 상담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십시요 "
( 이게 뭔가요....뭔 수표? 그런거 한번 발행해 봤음 좋겠네...)
1번을 눌렀습니다. 직원이 받더군요.
정중한 목소리로 ...남자였습니다.
" 예 우리은행입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 제게 안내전화로 수표결제일이 됐다는데 전 그런거 한 적이 없거든요."
" 아..그러십니까. 최근 한 달 이내에 가계수표 발행한 적 없으십니까?"
" 예 없습니다. 뭔가 잘못된 듯 한데요..." (훗...왠지 쭈뼛대며 말했습니다.)
" 아마도 고객님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발생된 일 같습니다.
혹시 최근 몇 개월 내에 카드나 신분증 잃어버리신 일 없으십니까?"
"아니요..없는 것 같은데요" (실은 카드 잃어버려 재발행 한 적 있었는데 찔려하며 말했죠)
" 예...그러시다면 이 건을 사이버수사대로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객님께서는 절대 안심하시고 계십시요. 저희 쪽에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러고 끊더군요
오...놀라운건 뭔지 아십니까. 목소리 뒤 쪽에서 나는 소리들이 꼭 은행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왠지 믿어야 할 것 같더군요.
어리둥절..콩닥콩닥..하며 몇 분이 지났습니다.
오전 11시28분...393-9112 번호로 전화가 오더군요. 여자였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서대문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 XXX입니다.
( 앗..진짜 이런 일이 발생한건가? 경찰서 단어에..이름도 안들리더군요..오..뭔가요
)
방금 우리은행으로 부터 개인정보 유출 수사를 의뢰받았습니다.OOO님 되십니까?"
" 예..." ( 앗...본격적으로 걱정 반, 긴장 반...)
이름 묻고, 인적사항 묻고...그럴싸하게 이것 저것 묻더군요.
근데 갑자기 이들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 000님의 재산을 국가가 보호하기 위해 카드와 은행 계좌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카드는 어떤 걸로 몇 개나 갖고 계시죠?"
" 국민, 신한, 현대....x개입니다. 앗...저 외환꺼도 하나 더 있습니다."
( 저..순진하게 빼놓지 않고 말하려고...안쓰는 카드까지 기억하려 애쓰며 말합니다..으구 )
" 예..카드 0개란 말씀이시죠...그리고 은행계좌를 상세히 말씀해주십시요."
어디 은행에 몇 개의 계좌가 있는지, 금액이 얼마인지, 우리, 국민, 신한, CMA 등등
상세히 묻더군요. 특히, 예금액수를 재차 확인까지 해가며 묻더군요.
( 아니 뭔노무 사이버수사대가 내게 묻는게 이리 많아...전산에 안뜨나..T.T)
꽤 긴시간 질의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 예..수고하셨습니다. 님의 은행계좌는 국가가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저회 과장님께 수사보고를 올릴테니 잠시 후 바로 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갈겁니다.
그동안 인터넷이나 전화를 삼가해주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만약을 위해서니 절대
주변사람에게 이사실을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끊고 난 후...잠시 다시 멍해져 있었습니다
오전 11시45분 393-9112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남자였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전 서대문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 김지영과장입니다.
방금 보고를 받고 전화를 드립니다."
이 때부터 앞 서 말했던 내용들을 다시 확인하더군요.
어디 은행에 얼마..CMA...훗...특히 액수가 좀 되는 통장에 대해 집중 묻더군요.
" 국민은행에 0000의 예금이 있는게 맞습니까. 우리은행의 CMA계좌도요?"
" 예 맞구요...CMA는 우리은행이 아니라 현대증권꺼고 우리은행이랑 연계계좌지요"
( 아...순진하게 그들이 틀린 것도 바로잡아주며 다 불어댔습니다. )
" 근데요...그 잘못 발행된 가계수표 금액이 얼마지요? " (여태 금액도 안물었네요..이런..)
" 예...0000입니다 "
( 참나...이 금액이 제 통장에 들어있는 금액과 얼추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들의 마각이 드러납니다.
" 00님, 지금부터 00님의 예금보호를 위해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계신 곳은 자택이신가요 직장이신가요?"
"자택입니다"
" 그렇다면 가까운 곳에 은행이 있으신가요?"
" 예,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있는데요."
" 그렇다면 전화를 끊지마시고 바로 국민은행으로 가십시요.
국민은행CD기로 가셔서 가지고 계신 카드와 통장을 모두 조회하셔야 합니다"
.....아차차차.....
이제야 전 알게된겁니다....이것들이...확...![]()
" 아...왜 CD기로 가야하죠? 그냥 인터넷으로 하면 안되나요? "
( 웃기죠...보이스피싱이구나...생각들면서도 확신이 안서며 묻습니다.)
" 직접 가셔서 CD기로 조회하고...은행직원들에서 확인을 받고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 왜 전화를 끊고 가면 안돼죠"
" 제가 직접 설명해드리고...중간에 주변에 알리거나 하시지 마시라고...."
( 제가 가기를 머뭇거리니...이것들이 안달을 합니다.)
" 빨리 가셔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주변에 알리지 마시고 지금 바로 이동하세요"
( 훗...자꾸 주변에 알리지 말라니...확신이 들더군요.)
" 예....근데요. 제가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요. 전화를 끊지않고 갈 수가 없네요 "
( 이때부터 약간 재밌기도하고.....솔직히 약간 알 수 없는 두려움도 들더군요 )
" 그러시면 CD기로 이동하시면 바로 전화주십시요"
" 저기요...과장님 성함이..뭐라 하셨죠?" "김지영입니다"
( 혹시 나중에 잡을 때 도움이 될까 싶어 이름을 다시 물어봤습니다..쓸데없이 )
이러고 끊더군요.
전 재빨리 112로 전화걸어 확인했습니다.
서대문경찰서 사이버 수사대라 하며 은행가라한다...
경찰 펄쩍 뛰며... 그거 보이스 피싱입니다. 전화 절대 받으시면 안됩니다.
이러더군요.
에구구...이렇게들 속는거구나 싶었습니다.
얼마 전 혼자사시는 여자분이 8000만원을 예금보호 해준다는 말 믿고
보이스피싱으로 날리셨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 일이 제가 겪은 일이더군요.
솔직히 사람이 얼마나 바보같으면 저런 말도 안되는 거에 속을까 했는데
막상 내 일이 되니까 저도 마지막까지 긴장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얘기 따르게 되더군요.
이정도로 치밀하게 짜고 하는 줄 몰랐습니다
생각해보세요.
ARS은행안내방송 -> 은행직원연결-> 사이버수사대 이름까지 밝히며 상담
-> 사이버 수사대 과장전화
이런 식으로 하니..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분들이나 겁많으신 여성분들이라면
충분히 속고도 남을 정도로 치밀하지 않나요.
거기다...분명 은행직원과 통화 시에는 배경소리가 은행이었답니다. 참나..
제 경험담으로....주의점을 조금 정리해보자면
1. 002....이딴 번호로 ARS안내전화가 올리없다. 대부분 15XX-XXX임!!
2. 억양을 주의하자.
딱히 서울말이 아니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말투가 어딘지 딱딱하다.
주의깊게 들음 뭔가 좀 다르다.
3. 계좌를 내게 상세히 묻는다.
은행에서 의뢰를 받은건데 왜 내게 묻나..이미 계좌 다 알고 있어야하는거 아닌가
우리은행에서 가계수표건으로 의뢰받고는 타은행 계좌와 예금액수까지 상세히 물어댄다
4. 서울 전화번호라고 안심하지말자
사람에게 전화온 건 393-9112이다. 보이스피싱은 중국에서 오는 이상한 번호만이 아니다.
5. CD기 소리 나오면 백프로 보이스피싱이다.
별 내용도 없는 글 길게 써 조금 죄송하군요.
좀 리얼하게 상세히 써야...다신 이런 일들 당하시는 분들 안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요.
보이스 피싱...이거 절대 나이 드신 분들이나 당하는 일이 아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으신 분들이나 좀 배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특히 더 조심하셔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