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그리하여 집나온 그녀와 그녀친구들2명과
같이 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0대들을 고용하는 술집이 그땐
마니있었나부다 그녀 친구들은 단란주점과 룸싸롱 등에 저녁마다
샤워하고 화장하고 출근들을 하였고...그녀는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당구장 알바 고기집 서빙 부페집 홀서빙 등을 하였다..
본레 소주한잔만 마셔두 취하는 그녀는 그리하여 술집으로 빠지지 않았다.
그때나는 고등학생이었고..오토바이 매니아였었다.
나는 125씨씨 깜장 오토바이 하나를 타고 다녔는데 경주용 오토바이 같은거였다
그때 당시 이름이 드림인가 그랬던것 같다..지금 아마이름이 브이에프라
부르는것 같다 ....그땐 그오토바이와 함께 할때 머가 그리 좋았는지....
그녀는 오토바이 타는걸 아주 실어 했다...무섭다고...나는 스릴감있어 넘 조았다
아마 고2때부터 등하교용으로 타고 다녔던것 같다..시내안에 있는 우리학교는 자전거나
버스 아님 걸어 가는 학우 들도 있었지만,,,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늘상 지각을 했기에
빠른 교통수단을 모색하다 폼나는 오토바이를 선택 한듯하다...
결울엔 까만 가죽잠바와 가죽장갑 까만 골땡바지를 입고 그때 당시 삐삐(무선호출기)
허리에 차고 금줄을 달고 홍콩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처럼 그리 살았다..
넘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던것 같다..여름엔 발가락만 걸치는 슬리퍼에 썬그라쓰끼고..
바닷가까지 가서 달리곤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우여곡절끝에 나는 졸업 하였고..대학 보다는 취업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고등학교다닐때 가라오케에서문방이나 홀써빙 주방 카운터를 보던 친구녀석의
권유로 내가 그일을 맞게 되었다 이름하여 패밀리가라오케 영업부장 ..
학교 다닐대 그놈대신 가끔 대타로 나가서 일도와주고 가라오케 마스타 들이
하던 일들을 잼나게 보여 음치인 나를 수준급 마스타로 만들게 까지 해준 계기였다..
마스타들 파업 하거나 안나오믄 내가 가서 한번씩 봐줄정도 였는데..기계가
일본식 옜날 기계와 현대식 노래방기계 두대로 큰홀 두개가 돌아가고 룸이 8개 있었다
늘 보던 여자마스타보다 남자가 마스타 보니깐 손님들이 말들이 많았다..
기냥 그땐 아가씨몇명 옆에 붙혀주면 조용해지곤 했다..^^
아..사설이 넘길어진다...그녀와동거 이야기로 들어가자...둘만의 동거로 어느순간부터
들어가면서 부터...잼나고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다..넘어린나이라..그땐그런것같다
둘다 일안하고 그럴땐 정말 밥도 굶고 매일 집에서 티비나 보다가 몰래 울집에가서
쌀하고 김치 훔쳐다가 김치뽁음밥 이라도 해먹음 ..세상을 다가진듯 행복 했었다
미래에 대한 대처도 음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 지나갈무렵..
그녀를 집에 보내기로 했다..그런대 그녀는 집에 못들어 가는 사정이 있으니
안들어 간다고 죽어도 나랑 같이 살다 죽을꺼라고 애절하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들여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린 매일 화장실 갈때도 밥먹을때도 슈퍼갈때도
일안하는 동안은 3달정도 그림자처럼 꼭곡 손잡고 붙어 다녔다.
그게 사랑인줄 알았다 그때는...
그런데 동거 4개월차에 들어서 마른 그녀는 유달리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임신이었다...병원가니 6개월이란다 헉 이럴수가 나랑산지 4개월인데
내아이가 아니었다...워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
그제서야그녀가 입을 열었다,,예전에 남친 사겼는데 남친하고 남친 친구랑
번갈아가며 만나서 누구 아기인줄도 모르고 ....모든걸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화가 나기 보단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그녀는 넘어린 나이에
그냥 어찌하다보니 여기 까지 온거 아닌가.........
낙태를 하고 난뒤에 집에 들갈려고 했는데..일하는곳 마다 어리다고 월급을
차일 피일 미루었고 ..그러다 짜증나서 걍 댈대로 대라 씩으로 자포자기
하면서 있었던 것이다.........6개월이면 낙태수술 받기도 힘든 상황...
우선 야매라도 하는곳을 알아보고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았다
상당히 큰액수 였다..오토바이 팔아서 수술하면 딱인데
오토바이를 도둑을 맞은터라...나는 집 친구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지만
그때 당시 80만인가 든다는 그돈 은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친한 친구 몇넘들이 내아이도 아닌데 나보고 미쳤따고 했따...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나두면 10대 미혼모...가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사실을 감당하기엔 넘 어린 나이였따...
어쨌던 이리 저리 날띠다가 다른도시에 일자리가 있다는 친구 소개를 듣고
선불 얼마 준다며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일단 몇일 다녀온다며 그도시로 갔었다
일이란게 그친구와 내가 나이4살을 더올려 속이고 그동네에서 건달 생활을 하는것이었다
친구놈 애인이 그도시에 어떤조직에 부두목동생 이라서 타지 맴버들 몇명 유입 하는데
내가 거기기게 된다는 거였따..맘은 안내키었지만 내나이 20살에 24살로 속이고
차도주고 숙소도 주고 우선 필요한 돈을 준다는것에 구두계약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내가 없어서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아픈거라며 나에게 원망석인 목소리로 머라고머라고
그녀가 말했다....그리고 나보고 미안하다고...그말도......
새벽에 그녀가 말짱한 얼굴로 일어 났다...바람쐐러 가자며 나가자고 했다
나는 다른도시에서 몇달 일해야 한다고 말도 할겸 수술비는 걱정말라고
이야기 할겸 일단 밖으러 같이 나갔다
새벽에 같이 길가에 서 이야기를 하다가 불신검문을 받았다....
경찰차가 와서 우리를 태웠다......그녀는 가출신고인가 실종신고인가에 올라있었던것이다
그녀 부모님이 파출소로 왔고 나는 그녀집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임신 그리고 동거 모든 이야기를
부모님께 그제서야 했다.....나는 그녀 어머니에게 뺨도 맞고 꾸지람도 들었지만
나중에 아기도 내아기가 아니고 잘보살펴 준거에 미안해 하셨다
그녀는 그담날 수술을 받으러 갔다.....아기는 유산되어 있었단다
잘 못먹고 어린나이라 그리되었다고 의사가 그랬다........
그리고 그녀랑 꿈같은 동거는 끝이 났었다......그러고도 우린 총 3년을 사귀었다..
내가 군대 갔을땐 면회도 두번이나 왔었고 .........
그녀랑 짦은 4~5개월 동거는 아직도 내머리속에는 꿈같이 느껴지고 있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고 한달반후 부두목형님이 연락이왔다 친구랑 그도시로 들어갔다
그도시는 경산도에붙은 작은 도시인데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있는 도시였다
첨엔 프린스 한대 받고 친구랑 야시장을 맡았다..맛나는것도 많고 사람들도 좋았고
건달이라보단 무슨 경비원 같았다....술주정 부리는 사람 조용히시키기 소매치기못오게하기
어짜피 공터에 불법으로 장사하는곳 야바위및 별에별 장사를 다하니...그런것을
빌미로 거기에서 세력을 키우는듯 하였다....
세금 걷는건 우리 위에 형님들이 하셨고 우리는 다른도시에서 스카웃 해온 동생들이라며
부두목형님이 사장으로 있는 술집에서 선후배들 인사를 시키고 상하선을 그어주셨다
여기서 실명 거론하긴 머한데 편이상 부두목형님이라 부르는게 편할듯 하다
우리는 낙하산이라며 24살 동기들의 시기어린 눈치를 좀 보았다
사실 나인20살인데 좀 그랬지만 말트고 지내며 23살형도 아우님아우님 하고
첨엔 존칭을 썼었다...우리는 돼지사료 같은것에 우유를 말아 맥주로 입가심하며
살을 찌웠다..친구는 98키로나 나깠었고 단단하고 야무진 나는 60키로가 안넘었었는데
거기가서 90키로 까지 졌었다..정말 굴러 다녔다
어느날 늦게 야시장으로 나가서 순찰? 하는데얼굴에 수염이 한가득하고 등치는 씨름 선수들 같은
놈들이 야시장에서 소란을 피우는게 보였다.. 지원요청 할껏도 없이 친구랑 나는
그무리를 향해서 힘차게 걸어갔다
대략 20여명 이 봉고차 몇대랑 자가용 몇대 타고 왔다고 동생들이 이야기 해주었다
동생들은 이미 주늑이 들어 저만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는 상태였고 우리는 다른도시고
나이가 어려서였던지 겁나는게 그땐 없었나 보다. 일단 그무리로 가서 말을 건냈다
니들머꼬?.................
우리한테 말하는거가?
그래 느그들 특히 얼굴에 트래기 나고 돼지같이 생긴 니말이다........
우리는 부산에서 왔데이..온천장 xxxxx 동욱한태 말 못들었나?
동욱이가 누꼬? 친구랑 얼굴에 털난놈이랑 말쌈을 하기 시작 했다
대충 내생각으론 야시장 접수 하로 온것 같았다...부산이면 ...흠...
내생각은 이랬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어떤 빌미로 야시장을 내어 주어야 하긴한데
주긴 아깝꼬 그리고 야시장 관리하던 놈은 뺐기면 쪽 팔릴꺼고 그래서 우리 둘보고
맡으라 한것 같았다....상황 판단이 정리되자...
이대로 물러나면 집에 갈수도 있겠다 생각은 들었지만...잘못하면 우리가 책임져서
손덤태기도 쓸수 있다는 생각이들었다,,,일단 한판 뜨자 판단을 내렸다
여기 있는 후배놈들도 있고 쪽수는 비슷 할끄다...
내가 먼저 젤 키큰놈 정강이를 차고 옆에놈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뒤돌려차기로 그옆에놈 턱을 정확하게 마추고 다시 옆에서 키큰놈을
목잡고 무릎으로 복부를찍었다. 멍하게 있다가 내가 기습을 하니 전부 선체로 보고만
있는게 아닌가...우리편도 내친구도 부산놈들도.... 일단 잠시 옆으로 비껴서서
내가 말을 뱉았다.....꺼지라xxx쎄끼들아
그때 작은체구에 날쎄게생긴놈이 내친구에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다시 난 그놈들 틈에
들어가 정신없이 싸웠다..촉을 마니세우고 긴장을 한탓에 세월이지났지만
아직 까지도 생생 하다....우리 후배들은 열라게 맞다가 다도망갔고 친구랑 나는
끝까지 싸웠다....그런데 경찰차 가 왔따.....
전부 흩어지고 도망갔다...그리고 다음날 후배들은 입원하고 우리는들은 형님들에게 붙들려가서 이야기를 하게되었다,....동생들이 나랑 내친구가 붕붕 날아다니며 쌈 겁나게 잘하더라며 형님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노은 상태 였었고 우리는 먼가 잘못했나시퍼 가자마자 무릎 꿀고 머리를 숙였다
두목을 첨보는 순간이었다...개그맨 이경규 같이 생겨서 금테 안경에 지적으로 생기신 분이었다
본레 회계사 출신이라던데 ..암튼 우리 때문에 문제는 커졌지만 쇼부(결판)보러 부산간다고했다
그리고 몇일후 야시장은 우리가 손땠다 ....그리고 나는 작은 나이트 하나를 맡게 되었고
거기서 디제이 보는 동생이랑 의형제를 맺었다..사실 나보다 나인 1살 만은데..거기서 내나이가
더만은걸로 되어 있으니...넘 지루했다....손님들도 마니 음꼬....볼거리 만고 먹걸이 많은
야시장이 그리웠다....
하루는 서열5위쯤 되는 형님이 밴츠 를 타고 왔다 내가당분가 타야 한다고 했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선거철이 되었다고 시장후보밑에서 일을 맡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형님 밑에서 거친일을 해야 한다고.....시장후보 만나고 식사하고
오리고기집에서 식사 했는데 거기서 나와 내식구들 먹는밥은 전부 그냥 주라고
후보가 말했다...지역에서 손꼽히는 갑부라 그런지 씀씀이가 좋았다
내가 맡은일은 상대후보측에서 돈뿌리는거 사진으로 찍기 비방견제하기등등
많은 잡일등이었다 작은카메라를 들고 다니니 상대후보측 건달들 시비가 많았으나
서열5위형님이 워낙 유명한분이라 아무도 건들진 못했다...하지만 두려웠다
친구는 시의원인가 머시기 작은선거후보자 밑에 들가서 일했는데 무슨당인진 몰라도
나랑 다른당 소속인거 같았다...자주 만나고 숙소에 같이 있었지만..좀 불안해 보였다
우리는 선거를 무사히 끝내고 내가 밀어주는후보자가 시장이 되었다
기뻤다...20살 나이에 300만언 짜리 휴대폰을 가지게 되었다..모토로라 택씨리즈 첫번제꺼..
아날로그 방식이라 전파 잘잡히는곳에서 통화해야했고 혼선도 가끔 잡혔다^^
친구가 집에서 연락왔는데 군대영장 나왔다고 했다....우리는 조직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힘든 결정이었고 언제 이생활 하다 칼맞을줄 모른다는 공포감이 나를죄었다
후배 한넘이 그상간에 죽었다...영안실에 노여 있는 그녀석을 보니 나도 언제 그리될지도..
조금 두려웠다.....그래서 가죽보호대를 구해서 차고 다녀야만 했다
살이 자꾸쪄서 늘 쪼이는 느낌이들었고 여자들 거들이나 코르셋인가 하는기분을
조금이나마 알듯했다....우여곡절끝에 우린 거기서 탈출했고 돈도 차도 다 노쿠 나왔다
친구는 군대를 갔고 나는 그녀를 만났다...그녀는 공장에 취직했는데 그달에 뽀너스 까지 합쳐서
월급을 300만 넘게 받았다며 자랑 했었다,,,,먼 공장에 가스나한티 그리돈을 마니주남..
가지고 시픈거 있음 다사준다고 그래서 라이터달린금색 담배케이스 가지고 싶다고 했더니
백화점에서 사주었다...그리고 나는 볼트모양으로된 금반지를 공사장에서 몇일 알바해서
모운돈으로 사주었다..그게 내인생에 첫번째이자 마지막 금은보석 선물이다..
우리는 자주 만났고 그녀는 울엄마도 호텔커피숖에서 만났고 울엄마 말씀이
너무 약하게 생겼다...살림이나 하긋나..^^
그녀 집에는 이틀에 한번꼴로 나는 놀러를 갔다...딸만 셋인집이라 나를 어느순간에
이군이라 부르며 좋아하신것 같았다...
너무너무 좋았고...그녀랑 이세상 끝까지 같이 가고 싶었다....
나두 군대를 가고 그녀는 마니 울었다....울면 헤어진다던데...야~울지마레이
첫휴가를 복귀하고 얼마지나서 그녀가 편지가 왔다 사실 통장에 30만언 넣어두고 2년2개월동안 자동이체될 삐삐요금 넣어두고 삐삐 음성사서함을 마니 이용했지만 삐삐는 군에서 못가지고 있기때문에 거기다 계급도 낮아서 첨엔 전화기 사용도 눈치보여 마니 못했는처지라 편지를 마니 이용했었다
편지 내용엔 자기도 20살인데 나이트도 가고 싶고 친구들 앤하고 붙어 다니는거보니 속이 뒤집히고
미티겠지만 잘참고 있으니 몸조심하고 얼른 제대하라는 글이었다.
나도 답장에 나이트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러 다니고 남자들도 만나고 잼나게 보내라고 적어보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그녀의친구의애인친구가 대쉬를 자꾸해온다며 농담섞인 음성사서함 음성이
남겨져 있었고...그리곤 그녀는 그남자에게 넘어 간듯 해보였다....나만 사랑한다고
끝까지 함께하자고..했지만..우리나라 20대 초반의 그젊고 아름다운 청년들은 국방의 의무
때문에....아무튼....그녀는 떠나갔고 ...어렵게 그녀를 길에서 만났지만 다른남자랑 팔짱을 끼고
가는것을 본순간 나는 모든걸 포기 했다...그녀는 그남자를 저만치 세워두고 나에게 와서 이랬다
잘지내지? 잘살고있는거지? 그녀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뜨릴듯 눈물이고여 있는듯했고 나는 웃으며
응.......... 그녀 손가락에는 내가 사준 반지 자국이 ...자국만 남아있었다...반지 오래 꼈나보네...
자국이 남았잔오...응..좀 오래 끼고 다녀서 그런가봐 ...목욕탕 갈때도 잘때도 끼고 다녔드만..
그래 ... 안녕...............그녀는 아직도 시내에서 한번씩 마주 칩니다...
제가 지금30살 계란한판이니 슴둘에 헤어졌으니 8년쩨 이군요 .........
사귄게 횟수로4년 만3년쯤 되나 그런데 슴여다섯인가 여섯인가 까지 그녀가
잊혀지지 않더군요 ....이제는 다잊었답니다...........그녀는 제가 군대 있을때 이사를 갔더랬어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답장없는 편지를 99통 보냈지요....ㅎㅎ 지금생각해보니
그땐 마니 유치 했었죠...마지막 100번째 편지는 제대하는날 써서 직접 가지고 있다가 어느 소중방에서
태워 버렸답니다...마니 좋아 했는지 알았는데....지금 와보니 ...사랑이 아니었던것도 같아요
그냥 ...머랄까...어린나이에 앓는 열병...내지는 집착정도랄까...........요즘 사랑이 먼지 마니
정의를 내리는데요 헤어진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이런말들을 해주고 시퍼요...
-3부-를 기대 하세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