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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러브송 < 31 >

카엔 |2004.06.15 19:14
조회 3,217 |추천 0

   

- 말랑송 처음편 보러가기-


31


여전히 얼굴에 맥주가 흐르고 있는 나와 달리 언제나 그렇듯 깔끔한 옷차림과 날카로워 보이는 은테 안경을 쓴 윤섭씨를 보자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스르륵 풀렸다.


‘채····, 채련이가 왜 윤섭씨를 데리고 온 거지?’


순간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평소에 채련을 얄밉게 생각한 친구들이 방과 후에 나오라고 하니 알겠다고 큰 소리를 쳤던 채련이 약속장소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나갔다는 이야기. 말싸움에는 웬만해서 지거나 하지 않지만 적은 체구 때문에 몸싸움은 싫어하다는 채련이. 그 이야기가 떠오르고 보니 윤섭씨의 모습은 학생부 선생님 같았다. 그에 비해 난 말썽만 피우는 학생. 룸싸롱에서 춤추다 걸리고 주먹 싸움하다 걸린 문제아 학생.


“미선아! 괜찮나?”


쥐방울의 남자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다가왔다.


“괜찮다. 오빠야.”


미선이란 이름의 쥐방울도 남자친구가 오자 아까와는 다르게 사투리를 썼다. 눈치 빠른 채련은 금세 수건을 가져와 내게 건넸고 나도 대충 맥주를 닦아내느라 어느 정도 상황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두 남자는 밖으로 나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경상도 사나이는 우리를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 주고 다시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다른 단체석. 저편은 아까처럼 세 명의 여자가 조르르 앉아있고, 우리 편도 윤섭씨, 채련이, 나 세 명이 앉게 되었다.


“야! 치사하게 친구랑 남자친구를 부르냐?”


쥐방울은 싸움을 계속하려는 듯 빈정 되기 시작했다.


“이제 싸움은 그만들 하시죠. 남자친구 되는 분이랑도 애기 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싸움을 못하게 막겠다고 말했어요.”


윤섭씨.


“당신은 뭔데 껴들어요? 나는 뭐 남자친구 없나? 당신도 저리 가 있어요! 이건 여자들끼리 할 얘기에요.”

“야! 상관있는 사람이니까 데리고 왔지! 네가 우리 문희 광고 PD 접대 나갔다고 했다면서? 이 분이 그 광고 PD 이윤섭씨야. 뭘 알고나 말해라.”


채련이가 쥐방울의 말을 받았다. 혼자 싸울 때보다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해명을 하려고 윤섭씨를 데리고 왔다는 점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그 점에 화가 나서일까 난 별로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윤섭씨 앞에서 아까처럼 소리 지르고 싸운다는 점도 싫었다.


“소문이 맞나보네. 이런 일로 여기까지 오는 거 보면.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불려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사적으로 아니까 나온 거 아니야? 안 그러니, 애들아?”


미선이란 여자는 나름대로 똑똑했다. 그 여자 말대로 사적으로 모르는 사이라면 이런 자리 나오라고 말할 수 없었을 테지. 이건 어째 내가 더 불리해질 것만 같았다.


“야! 너 아까부터 쨍알거리는데 내가 알고 말하랬지! 모르면 물어봐, 조그만 대가리 굴리지 말고! 두 사람 당연히 아는 사이지. 둘이 결혼할 사이라고. 이제 알겠냐? 결혼할 사이에 접대하고 그러니? 너는 그런가보구나. 똑똑히 들어. 또 말 바꿔서 말하고 다니지 말고. 둘은 결.혼.할.사.이. 라고!”


‘뭐야? 설채련! 결혼할 사이?’


“못 믿겠다는 그 표정들은 뭐니?”


나의 표정도 물론 굳어있었을 것이다. 세 명의 여자들 역시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눈치였다.


“윤섭씨 빨리 말해줘요. 문희가 회사 사람한테는 아직 말을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집애가 별 걸 다 숨긴단 말이에요. 윤섭씨! 빨리요. 직접 말해주라고요!”

“예. 문희씨와 저 곧 결혼할 사이입니다!”


윤섭씨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어깨에 떡하니 손까지 올렸다. 나도 맞장구는 쳐줘야 할 분위기라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정말 연인처럼 다정하게. 그녀들도 이제야 믿는 눈치였다.


‘아! 맞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 싸웠어야 했어. 채련이란 카드는 아니었던 거야. 아까의 불안감. 그건 지금을 예감했던 거라고! 나중에 윤섭씨에게는 뭐라고 한단 말야.’


“이제 됐습니까? 왜 회사 동료들끼리 말을 만듭니까? 아니 이사님 문제가 남았군요.”


‘이사들 얘기까지 했다는 거야? 채련이 별 얘기를 다했군. 내가 미쳐! 미쳐!’


“그 날 그 회사 이사님들에게 호출이 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자리에 나갔습니다. 그날 문희씨 혼자 집에 먼저 갔어요. 그리고 남자들끼리 따로 나왔고요. 못 믿겠으면 홍보부 김부장님께 여쭤보세요! 의심스러우면 직접 확인을 하세요. 우리 결혼식 때는 청첩장 직접 드리겠습니다. 그 때 세분 다 오세요!”

“······.”


어느 누가 이 말에 대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채련이? 세 명의 여자? 아무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상황 정리 된 건가요? 그럼 문희씨가 먼저 사과해요!”

“사과요? 제가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요. 사과를 제가 왜 먼저 한단 말이에요?”

“문희씨!”


진짜 꼭 학생주임 같은 폼이었다.


“문희씨! 저는 모두의 축복을 받는 그런 결혼식을 하고 싶어요.”


진심을 말하는 것 같은 저 표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축복받는 결혼. 청첩장. 모두 사실 같았다. 그저 내가 잊고 있던 사실. 나는 잠시 그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사과해요. 그리고 우리 빨리 나가요.”


‘그래. 빨리 나가자. 더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아까 소리 질러 미안해요. 그래도 없는 말 만들어져서 화가 너무 났었어요.”

“문대리도 회사 생활 해봐서 알지만 말이야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데니까 그러려니 해.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말을 만든 건 아니라고. 들은 얘기야 할 수 있는 거잖아. 꼭 문희씨 얘기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야. 다음에 그 얘기 듣게 되면 사실이 아니라고 말은 해줄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은 사과하고 싶지 않네. 감정도 서로 상했으니까 억지로 화해하는 건 무리인 것 같고 오늘은 이쯤에서 그냥 헤어지자고.”


정식 사과가 오고간 것은 아니지만 그 편이 더 솔직한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 그냥 참고 지나가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께요.”


우리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윤섭씨는 주인에게 술값을 지불하며 다음에 좋은 기분으로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매너 있는 윤섭씨. 그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 싸움이 될 뻔했을 것이다. 많이 창피하긴 했지만 그 점은 고마웠다.


“문희야! 나 피곤하다. 강북은 정말 너무 멀어. 오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단 말이야. 요즘 연말이라 일이 많아서 난 일찍 가봐야 할 것 같다. 데이트 잘 하고 가!”


결혼이란 말을 처음 꺼낸 장본인은 뒷수습을 두려웠을까 황급히 사라졌고, 윤섭씨와 나만이 남게 되었다.


“문희씨! 기분 안 좋죠?”

“좋을 리가 없죠.”

“그래도 오늘 두 번째 데이트 있는 날이라는 거 잊은 건 아니겠죠?”


‘아! 맞다!’


아까는 너무 흥분해서는 그 사실도 잊고 있었다. 윤섭씨에게 말도 하지 않고 약속을 깰 뻔한 것이었다.


“잊다뇨? 잊지 않았어요. 데이트를 잊을 리가 없잖아요. 저는 빨리 끝내고 약속장소로 가려고······.”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원래는 영화보고 싶었는데 안 되겠네요. 우리 술 마시러 갈래요?”

“술이요?”

“맥주 사서 남산에 가서 마셔요.”

“그럼 운전은요?”

“운전은 대리운전 부르면 되죠. 어때요? 갈래요?”

“예. 지금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네요. 남산에서 먹는 술이라 좋겠어요. 그런데 양주 마시면 안돼요? 맥주는 배불러서.”

“화장실 자주 가는 게 싫어서가 아니고요?”

“아니에요. 틀렸어요. 아까 맥주를 뒤집어써서 맥주는 보기도 싫은 거예요.”

“하하하. 그래요. 간단히 술이랑 안주 사서 남산으로 갑시다!”


나의 추한 모습을 보고도 추궁은커녕 내 기분을 풀어주려 하는 윤섭씨. 난 아주 멋지고, 매력이 넘치는 남자를 따라 남산으로 향했다.


연말이라 서울 곳곳은 흥청대고 있었다. 하지만 남산 이 곳만큼은 연말쯤은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적막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남들이 호들갑을 떨어도 혼자 묵묵히 추운 겨울밤의 풍경을 유지하는 남산. 윤섭씨도 그럴 것만 같았다. 그는 남산을 자신을 닮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남들에게 휘둘리기 쉬운 세상에서 태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남산을 찾으면 노력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채련이가 결혼 얘기를 갑작스레 꺼내서 당황했죠?”


나는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지금 화는 내고 있지 않지만 그가 흔쾌히 용서를 해줄 것인가? 아니면 또 짓궂게 이것을 빌미로 다른 요구를 해올까? 내가 잘못한 일이니만큼 꾸짖는다 해도 할 말도 없었다.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용의로 사과의 말을 꺼낸 것이었다.


“읍!”


그는 기다렸던 용서의 말 대신 기습적으로 키스를 해왔다. 순간 진한 사람냄새가 밀려왔다. 나와 이렇게 가깝게 사람이 숨쉬고 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바로 내 곁, 아니 가깝다는 말이 부족한 거리,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그의 숨결이 뿜어져 나오는 그의 코가 내 코와 맞닿아 있었다.

그의 혀가 내 입속으로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왜 연인을 ‘허니’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입 속에 온갖 단 것을 다 놓은 것 같았다. 사탕, 초코렛, 꿀 모든 단 것들을 입속에 넣는다 해도 이보다 더 단 맛은 아닐 것이다. 그래. 지나치게 황홀한 느낌이었다. 마약이란 것 해보지 않았지만 사람을 이렇게 기분 좋게 할까? 일상에서 맛보기 힘든 황홀한 기분이었다. 귓가에 노래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왕비의 ‘몽중인’. 난 정말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 구름을 밟고 있는 듯한 기분.

그의 혀가 내 입속에서 살며시, 조심스레 돌기 시작했고, 나는 팔로 그의 목을 감쌌다. 그를 놓고 싶지 않았다. 나의 손은 그의 목을 어루만지다가 그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아주 가는 머리카락이었다. 냉정해보이면서 때때로 부드러운 윤섭씨의 부드러움은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먼저 슬쩍 날 놓아주었다.


‘어머! 내가 먼저 놓을 걸! 슬며시 미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키스에 굶주린 얘처럼 이게 뭐야.’


후회를 하며 나도 그를 놓았다. 그리고 쑥스러움이 밀려와 계면쩍어 하고 있었다. 


“문희씨! 우리 진짜 결혼 할래요?”

“예? 결혼이요?”

“결혼해요, 우리!”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우리의 키스가 너무나 달았다는 생각. 적어도 속궁합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 말랑송 다음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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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답글 못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답글 모두 읽고 힘 얻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말랑송에 푹 빠져 있어요.

문희가 된 착각에 빠져있답니다.

이 기분으로  열심히 써보려 합니다.

 

글로 인사드릴 욕심 이해해 주시면 다음 편 빨리 가져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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