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의 미스터리 중에는 "발해는 왜 무너졌는가"가 있습니다.
200여년간 거의 외침도 없었고,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남아있던 나라가
거란의 공격으로 한 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기 때문이지요.
발해 멸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두 가지는
1. 내부 분열설
2. 화산 폭발설
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 중에 두번째 화산 폭발설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926년(혹 그 이전)에 백두산에서 대폭발이 일어나서
그 화산재가 발해의 도읍 상경까지 퍼져나갑니다.
상경을 비롯한 백두산 주변의 여러 곳은 기온이 크게 떨어져 심한 가뭄이 들고,
그 변경은 거의 초토화 되었으며 이로 인해 [고려]에 망명자가 생겼는데 바로 이 때에
[거란]이 침입해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그 학설은 일본 학자가 맨 처음 주장했었는데 바로 일본에 퍼진 화산재가
바로 백두산의 것이었기 때문에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하면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부분열설도 매우 간단한데 내부 분열이 일어나 그 세력 다툼 중에 진 여러 명이 고려로 망명했고,
그렇게 서로 분열이 일어난 상태에서 거란이 침입,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주장하는 것들은 요사의 이심이라는 기록,
고려 망명자들이 중앙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등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발해가 내부분열에 의해서가 아니라 요에 의한 활발한 전쟁에서 패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주장도 설득력은 있습니다만 오직 활발한 전쟁만을 요인으로 꼽기는 힘듭니다.
적어도 두세가지의 원인이 있어야만 재앙이 일어나듯이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도 두세가지 원인은 적어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 이유가 두번째든 뭐든 그 이유를 대조시키려는 것이고
그래서 뽑힌 것이 내부분열설과 화산폭발설이긴 하지만 내부분열설은 그렇게 많은 근거를 대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비교에 들어가기 전에 화산 폭발의 위력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대부분 화산폭발에 회의적인 분들 중에서
"화산 하나가 폭발했다고 나라가 망하는가? 말이 안된다" 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화산의 위력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백두산 같은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매우 큰 피해를 입힙니다.
전 세계의 온도는 2,3도 정도 떨어지고, 동아시아 전역은 매우 혹한의 기후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화산재의 방해와 태양열이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농작물은 제대로 자랄 수가 없고
아주 오랜 기간 가뭄으로 시달립니다. 그러다 보면 수천명, 심하면 수만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사망합니다.
위력이 매우 강한 화산은 전 세계 수백만명의 목슴을 위협합니다.
실제로 7만 5천년 전 토바섬에서 초대형 화산이 폭발해서 "호모 사피엔스"종은 멸종 직전에 오고,
먹이 사슬이 붕괴되어 신생대 멸종기가 이 때에 찾아왔습니다.
오직 화산 하나가 폭발했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초대형 화산에만 해당되는 경우이고,
백두산 같은 경우는 수만명 혹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죽을 수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의 크기도 탐보라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라 보다 더 큽니다.
보통 화산 폭발의 위력을 가늠할 때에는 칼데라의 크기로 보는데 백두산의 천지도 칼데라호입니다.
그것은 1815년 탐보라 화산의 폭발로 생긴 칼데라 보다는 몇 미터 더 크다는 것이지요.
즉 탐보라 화산보다 더 큰 위력을 가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발해"가 화산폭발로 멸망했다는 설의 쟁점은 "백두산 대폭발은 언제 있었는가"입니다.
문제는 발해가 멸망할 때 백두산 폭발이 있었는데 왜 기록에도 없고 왜 고려에는 피해가 없었는가? 입니다.
이것은 화산폭발설을 지지하는 분들이 여러가지로 풀이 합니다.
"백두산이 측면폭발이었으면 고려에는 피해가 적으며, 발해는 피해가 컸을 것이다"
"우리나라 상공에는 제트기류가 있는데, 그것으로 전 세계로 화산재를 날려 버리고 고려의 피해를 막았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덕왕 5년(915년) 겨울 10월,지진이 있었는데 우레같은 소리가 났다'고 했다
백두산은 당시 신라의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화산 폭발을 기록 할 수는 없고 거대한 지진과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
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반박합니다. 전 이 글에 역반박 한 글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진이 있었고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는 그리 확실하게 반박한 글은 아닌 듯 보입니다.
또한 내부분열설을 지지하는 분들은 또 이러한 것으로 반박합니다.
"발해인이 망명했는데 그것은 백두산 주위의 인물들이 아니다.
모두 정부 관련자 들이며 오히려 거란이 침입했을 때 가장 활발한 저항을 펼쳤던 곳은 백두산 주위의 부들이다.
백두산 주위에 가장 많은 피해가 있었다면서
백두산 주위의 부들이 가장 활발한 저항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신빙성이 있는 말입니다.
백두산 주위의 부들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인데 왜 백두산 주위 부들이 저항하였을 까요?
내부분열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백두산 대폭발은 1200년대에 이후에서야 있다고 주장하며
고려사의 다음과 같은 기록을 그 증거로 뽑습니다
"1278년 강물이 얼었다.
1143년,1324년,1384년 동사자가 있었다 이외에 공민왕 때 기근은 13회에 이르렀으며,
대풍, 우박, 대무가 빈번했으며 대수해가 5회, 한발이 있었던 해가 8회에 달했다.
그 외에도 기온은 이상 온난과 이상 저온을 되풀이하였다"
사실은 이것도 백두산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산폭발설은 학자들도 냉담한 입장을 취합니다. 송기호 교수도 그렇고 또 여러 학자들도 비슷합니다.
발해의 멸망에 대한 진실을 도대체 무엇일까요? 화산이 폭발해서일까요, 아니면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을 까요?
화산폭발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내부분열이 생겼던 것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두산 대폭발이 언제 있었는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발해 멸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발해 멸망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아직 까지 발해 멸망이 화산폭발로 있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 그제서야 확실한 주장을 펼 수 있습니다.
어째든 발해라는 그 거대한 나라가 요의 침입으로 아주 쉽게 멸망했다는 것은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분명이 발해가 멸망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 이유가 내부분열이든 화산폭발이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