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한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혼의 상처가 없는 초혼자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이혼을 속이는 접근
빚으로 깨어진 전 가정
그리고 반복되는 거짓말
그 거짓말을 합리화 하기 위해 저지르는 많은 말들
어떤 의미로 상대를 이해해야 할까?
경험해보지 못한 진실을 초혼자는 감당해야 한다.
상처를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
그 한계는 과연 어디인가?
아직 초혼자는 이해하기 힘들다.
사람에게 어떤 삶이 행복한지는 정답이 없다.
행복하다고 스스로 느끼면 행복하다는데
과거를 답습하는 이혼자의 모습에
초혼자의 절망은 깊어만 간다.
하지만 선택을 했다면 지켜야 한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다 있는 법
때론 견디기 힘든 이혼자의 모습에
원망과 분노가 치밀지라도
시간이 지나 단단해지면
조금씩 변해가겠지.
때론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힘든 모습의 사람들을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주시는지.
이혼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초혼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혼자의 모습은 어디까지인가?
이혼, 빚, 거짓말 또 앞으로 무엇이 초혼자의 가슴에 상처를 줄 수 있을까?
밤을 세워 고민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
진실되고 대화가 자연스러운 가정을 만들자.
하지만 이혼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초혼자에게 때론 힘든 고통이다.
연로하신 어른들이 상처가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지 말라고 하신 말씀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 것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다.
완벽한 것은 없다. 그리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하지만 자신이 소속된 곳이라면
완벽해질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그 욕심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한다.
이혼자의 삶, 초혼자의 삶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고통이다.
아직도 장미빚 인생으로 미래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삶은 현실이라는 것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와도
그것을 놓으면 결국 또 다른 상처가 된다는 것을
늘 고민하면서 살자. 그리고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 해가 기다리고 있다.
이혼, 빚, 반복되는 거짓말,,을 극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이 아닐까.......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주는 방법을 안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도 안다.
인생을 더럽고 얼룩진 삶으로 만들기엔 한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다.
당당하게 살자,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자, 때론 쉽지 않겠지만,
이혼, 초혼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생각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