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둘러 집근처에서 택시를 내렸다.
골목으로 많이 올라가는 길이라 마음은 급했지만 택시 기사에게 더 가달라고는 할 수 없었다.
경사진 길을 허겁지겁 숨을 몰아쉬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인기척 없이 조용했다.
나는 그제서야 레종이 죽어간다는 메시지만 받고 현수와 레종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위독하다면 동물병원에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수에게 전화를 여러 번 했으나 받지 않았다.
갑자기 레종이 무지 보고 싶어졌다.
훌짝홀짝 물을 먹던 모습, 앞다리로 수염을 흝어내던 모습, 오득오득 사료를 씹어 먹던 모습, 아침에 내가 일어나면 이불 속에서 침대 밖으로 황급히 달려나가던 모습...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애완동물에게 정을 붙이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사치스런 취미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람의 정은 꼭 인간에게만 제한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현수의 전화일까 싶어 봤는데 정훈의 전화였다. 뭐라고 둘러댈까 고민하다 그냥 받지 않기로 했다.
내일 쯤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당황해서 전화를 못받았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메시지가 금방 들어왔다.
'정신 없나 보네. 늦게라도 어떻게 되었는지 전화해줘. 기다릴게.'
정훈의 배려가 반갑기 보다는 부담스러웠다. 오늘 늦게 전화를 안하게 되면 또 그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역시 거짓말은 계속 되어야만 진실처럼 보이는 것인가 보다.
나는 다시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제발 통화가 되기를 바랬다.
다행히도 수화기 저편에서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요?"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이미 늦었어요."
현수는 예상외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내가 거기로 갈게요."
"아닙니다. 오실 거 없어요."
"나도 레종이 보고 싶어서 그래요."
만약 레종이 세상을 떠난다면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다.
"거기 큰 길로 나와 신촌 로타리 쪽으로 오다 보면 푸시캣 동물병원이라고 있어요. 지금도 불 켜 있으니까 찾기 쉬울 거에요."
나는 다시 서둘러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현수가 말한 곳을 찾아갔다.
막상 푸시캣 애완동물 병원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니 나는 레종의 단골 병원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는 불이 켜 있었지만 문은 장겨 있는 듯 했다. 창문 너머로 현수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수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어줬다.
현수의 앞에 있는 유리관에 잠자듯 누워 있는 레종이 보였다.
"현수씨!"
나는 현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불렀다.
나를 올려다보는 현수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폐렴이 심했대요. 너무 레종에게 무관심했나봐요."
현수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혹시 레종의 사료를 주는 데 게을리한 것이 아닐까 혹은 사료에 이상한 것이 섞인 것이 아닐까 자책감이 들었다.
무엇이든 무관심하면 애정을 받지 못하면 생명에 위협이 있는 것은 아닐까.
"미안해요. 나도 잘한다고 했는데...."
현수에게 레종을 빌미로 월세를 깎았던 내 모습이 속물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레종을 잘 보살핀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에요. 그래도 민아씨가 있어서 이만큼이나 한 걸거에요."
현수가 나를 원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마워하다니 나는 더 미안해질 뿐이었다.
나는 정신적 충격으로 멍하니 있는 현수를 두고 레종의 처리를 수의사와 상의하고 돈을 지불하고 현수를 데리고 나왔다.
아마 현수는 내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밤을 세웠을지도 몰랐다.
무엇이든 잃어버린다는 건 참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음의 빈자리는 죽을 때까지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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