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연은 팔뚝에 오소소소, 돋아난 소름들을 손바닥으로 열심히 문질렀다.
결코 쌀쌀한 날씨는 아닌데.
왠지 모를 한기에 부르르르 몸을 떨던 하연은
눈에 익은 차 한대를 보자 손을 번쩍 들었다.
한 번의 주춤거림도 없이 정확히 하연 앞에 멈춰선 차에서 상현이 내렸다.
뒷문 손잡이에 이미 손을 대고 있던 하연은 머쓱해져서 물러났다.
“진하연씨, 제가 충고 한 마디 할까요?
여자는 남자가 문을 열어 주기 전엔 절대로 문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잘 알겠습니다.”
“왜 미리 나오셨습니까? 도착하면 전화 드릴 텐데요.”
“상현씨 화내는 모습 생각하니까 기다리게 해선 안 될 것 같아서요.”
“…제가 한 방 먹었습니다. 타시죠.”
사무적인 말투로 주고받는 농담에 하연은 눈웃음을 웃어주며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행복한 건 틀림없는데 어째서 불안감이 드는 걸까.
이젠 그 사람이 어둠 속에 있지 않아도 되서 마음 놓아도 되는데.
가슴이 바짝바짝 조여드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그래, 행복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일 테지.
그럴 거야.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보기엔 괜찮지 않은데요. 아픈 곳은 없습니까?”
“네. 괜찮아요. 그냥…생각 때문이에요. 생각 때문에.”
상현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뒤
하연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뚫어지게 빤히 쳐다보았다.
걱정스러운 기색만 살짝 깔려 있을 뿐
식은땀을 흘리거나 특별히 아파보이지 않는 다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차를 출발했다.
차는 한산한 도로로 접어들었다.
충분히 붐볐을 도로였지만 이미 교통체증 시간은 지난 뒤였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상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따금, 잡고 있는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기만 했을 뿐
뒤 돌아 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하연은 차라리 빈 시간에 잠깐 눈이라도 붙이는 게 낫겠다 싶어
뒷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살풋 잠이 들려던 순간 하연의 가방 속에서
지이이잉― 지이이잉― 하는 진동 소리가 났다.
상현은 백미러를 통해 힐끔 시선만 던졌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윈도우에는 윤경의 이름이 깜박이고 있었다.
“여보세…!”
“…하연아! 너 어디야?”
재빨리 핸드폰을 귀에서 멀찌감치 떼었다.
윤경의 목소리는 차 안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상현은 대략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찡긋거렸다.
마침 신호가 걸려 잠깐 차를 세운 틈을 타서 상현은 옷매무새를 고쳤다.
윤경의 목소리는 상현에게도 또렷하게 들릴 만큼 컸다.
김윤경 실장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 챘다.
간병 의뢰일 때문에 몇 번 김윤경 실장이라는 여자와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 때마다 걸걸한 윤경의 목소리 때문에 당황했더랬다.
진하연과 김윤경은 아무리 같이 붙여놓고 생각하려 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막역한 사이라니!
하연은 피식, 하며 바람빠지듯 웃는 상현의 웃음소리가 행여나 들릴까 싶어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윤경은 한 참 혼자서 이야기를 해댔는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도무지 꿩 궈 먹은 자리야! 가면 간다, 어디로 간다, 얘기를 해줘야 할 거 아냐!
세 살 먹은 어린 애 아니라고 치자.
그래도 언니 걱정하잖아!”
“미안해, 언니. 걱정하지 마. 나 그 사람이랑 같이 지내.
앞으로 그럴 거야.”
“그 사람이라면…. 아, 그래! 알았다. 잘 있으면 됐고.
그나저나 따라나서는 게 얼마나 바빴으면 문도 잠그지 않고 갔냐?
훔쳐 갈 것도 없지만서두.”
어라? 무슨 소리지? 문을 잠그지 않았다니?
분명히 열쇠로 문을 잠근 뒤 잡아당겨서 단속까지 해 봤다.
그런데 문이 열려 있다니.
열쇠가 손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지는 바람에 주워서 다시 문을 잠궜더랬다.
하연은 벙찐 얼굴로 한참 있다가 윤경의 재촉에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 해?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어! 드, 듣고 있어.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지금 너네 집이라니깐! 참 내! 말할 땐 안 듣고. 근데 문이 열려 있더라고.
얼마나 놀랬는지.
문은 열려있지, 사람은 없지.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은 안 오지.”
“정말…문이 열려 있었어? 정말로?”
“…그럼 내가 손가락으로 문 따고 들어갔겠니?”
하연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아 가면서 기억을 되돌려 봤지만
역시나 문을 잠그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언제나 습관처럼 열쇠로 잠근 뒤 확인까지 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기에.
몸에 밴 익숙한 습관처럼 문은 꼭 잠그고 다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하긴, 열쇠가 없는 그 사람도 간단히 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방에 앉아 있었는데.
하지만 들어왔다면 도대체 누가? 어떤 사람이?
“언니…나 있지, 정말로 문 잠궜거든. 언니도 알잖아. 나 문 꼭 잠궈야 마음 놓는 거.”
“…그러게. 진하연이 문을 안 잠그다니! 그래서 나도 놀랬지, 뭐야.
그나저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잠궈 놓은 대문이 왜 저절로 열려 있담?”
“…뭐 헝클어지거나 어질러진 건 없어?”
“응. 없어. 전혀! 깨끗해.”
“이상하네. 그게 왜 열렸을까?”
“…내 말이. 아! 하연아! 너 잘있으면 됐다. 나 전화 끊는다!
다른 데서 또 전화 왔다. 끊어, 끊어!”
뚝, 끊긴 전화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하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상현은 그런 하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연에게 상현이 말했다.
“훔쳐간 물건은 없습니까?”
“…네. 훔쳐갈 물건도 없는 걸요. 그렇지만 뭔가…좀 꺼림칙하긴 해요.”
상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혹시…?
벌써 알아차렸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언제나 만의 하나라는 확률이 살아 있었다.
상현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한 뒤 하연을 건너다 봤지만
다행히 하연은 아직 상현의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싶었다.
그리고는 짐짓 태연한 척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깜박 잊고 문을 잠그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분명히 잠궜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걸요!”
100% 확신이 가득담긴 하연의 표정을 본 상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의식중에 운전대를 꽉 붙잡은 것을 하연도 봤는지 금새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그래요, 상현씨? 뭔가…있는건가요…?”
“아닙니다.”
단칼에 베어내듯 싹둑 자르며 대답하는 상현의 반응에
하연의 표정은 더욱 더 어두워졌다.
상현은 아예 입술까지 한 일자로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예상 밖의 반응에 머쓱해진 하연은 손에 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차가 멈춰 섰다.
상현은 차 문을 열어주면서 짤막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아니에요. 괜찮아요. 상현씨도 걱정되어서 그랬다는 거 나도 알아요.”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며 배시시 웃는 하연의 모습을 보며
상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위험이라고는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다행히 때 맞춰서 빼오길 잘했다는 생각.
사실 민혁의 예감 때문이었다.
민혁은 한참동안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짤막하게 한 마디 던졌더랬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데려 와야 할 것 같아. 준비해.〕
상현이 민혁의 날카로운 예지력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하연은 그대로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상현은 하연 곁으로 걸어가 물었다.
“왜 안 들어가십니까?”
“…여기에 민혁씨가 있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아, 아뇨! 그게 아니라…저…. 여기가 어딘데요?”
“…자, 그럼 들어가시죠.”
상현은 막무가내로 하연의 등을 떠밀었다.
절대로 거칠게는 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슬슬 떠다미는 터에
하연은 내색도 못하고서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구두로 밟는 것조차 황송할 만큼 반들반들 윤이 나는 대리석 바닥,
한 걸음만 떼어도 발자국 소리가 울리는 넓은 내부,
로비에 조성된 거대한 조각상.
9대나 되는 엘리베이터들을 보며 하연은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하연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서 기다렸다.
상현은 속으로 하연의 반응을 꽤나 즐거워하며 짐짓 딱딱한 말투로 하연에게 말했다.
“그 쪽이 아닙니다. 이 쪽으로 오십시오. 여깁니다.”
“아, 저…엘리베이터도 틀린가요?”
“그 쪽은 A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고 이 쪽이 B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입니다.
물론 서로 통하는 통로가 층별로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여기가 맞습니다.”
건물의 규모를 가늠해보기라도 하듯 하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하연과 상현이 올라탔다.
부드럽게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맨 꼭대기 층에서 땡, 하며 멈추어 섰다.
이젠 아예 발자국 소리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폭신한 융단이 좌악 깔려 있었다.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하연은 자꾸만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더 가야 돼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된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어보는 하연의 질문을
간단히 접어 버리며
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회장님은?”
“…방금 회의 끝나셨습니다. 알릴까요?”
“…그럴 필요 없어! 늦었군. 들어와.”
하연의 시선이 익숙한 목소리를 향해 옮겨갔다.
미미했지만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은 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
민혁을 보자마자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는 여직원과 빙그레 웃고 있는 상현.
하연은 그제서야 회장이라고 칭한 사람이 민혁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이젠 입까지 벌리며 놀라고 있는, 하연의 손목을 잡고 민혁이 문 안으로 들어간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
다듬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답니다. ㅎ;
두 가지 다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해해 주셔요~ㅠ_ㅠ)
글을 올릴까, 아니면 댓글을 달까 고민한 끝에 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답니다. ^^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서요...
벌써 금요일입니다. 늘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을 금요일이 되어서야 깨닫곤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님들께 행복 배달하려면 행복동자가 오늘 밤
꽤 바쁠 것 같습니다. *^^*
그럼 전 이만 물러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