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 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은 추악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착한 것을 착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착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인식의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율적이거나 타율적이거나 미추와 선악을 직감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꽃은 아름답다 하고 쓰레기는 눈살을 찌푸린다. 그것이 보편적인 우리들의 인식세계인 것이다.
음식의 맛도 마찬가지다. 소멜리안들의 술에 대한 감각은 가히 동물적이라 한다. 혀끝의 감각으로 생산년도와 맛을 귀신처럼 알아맞힌다 한다. 물론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와 타고난 감각이 일조를 하겠지만 술에도 분명 맛이 있는 술과 없는 술이 있다. 무릇 모든 것은 본래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음식도 조리해 내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맛이 차별화 된다. 그래서 맛을 찾아다니는 식도락도 있는 것이다.
지난 저녁 친구들과 과음을 했다. 속이 쓰리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별스럽게 냉면이 먹고 싶어 유명하다는 냉면집에 들리기로 했다. 나는 메밀 음식을 즐긴다. 묵은 특별히 좋아한다. 묵은 가장 향토적인 우리의 토속 음식이다. 우리의 생활패턴이 아무리 서구화 되어간다 해도 먹거리만큼은 서양화 시키지 못한다. 아직은 우리 전래의 문화적 전통이 소멸되지 않은 이상 우리의 문화전통을 무시하고는 살아갈 수 없다. 묵은 그래서 더욱 친근감이 가는 전래의 맛을 지닌 민속 먹거리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방마다 요리 방법도 다르다. 경상도 북부지역은 가늘게 채를 쳐서 김치고명을 하여 국수처럼 먹는다. 묵은 부드러워서 먹기가 좋고 영양가도 최고다. 메밀묵, 도토리묵, 녹두묵, 그중 쉽사리 구할 수 있는 메밀묵을 가장 많이 먹고 도토리묵은 약간의 떫은맛이 또한 별미다. 녹두묵은 속살 투명하여 시린 듯 찬 청량감이 느껴진다.
메밀은 가장 서민적인 작물이다. 제 아무리 험한 박토라도 메밀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때문에 옛적부터 구황작물로 이름 높았다. 강인한 생명력만큼이나 재배기간도 두세 달이면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작물의 마지막으로 택하는 작물이기도 하다. 이효석은 그의 불후의 명작 “메밀꽃 필 무렵”에서 소금을 뿌린 듯 하다고 표현했다. 사실 메밀꽃이 들판에 촘촘히 피어있는 것을 보면 소금을 뿌린 듯 하얗다. 서양속담에 “맨 처음 장미를 미녀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지만 그 말을 두 번 다시 쓴 사람은 바보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이효석의 천재성을 인정 안 할 수 없다.
메밀은 맷돌에 갈아서 고운 체로 치면 하얀 가루가 나온다. 이것이 메밀가루다 이렇게 만든 메밀가루로 묵도 쑤고 국수도 뽑는다. 메밀가루 자체는 응집성이 없기 때문에 열을 가하면 똑똑 끊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밀가루를 3할의 비율로 섞어야 제대로 면을 뽑을 수 있다.
사실 메밀국수의 맛은 장국의 맛이 좌우한다. 이북지방에서는 꿩고기를 삶은 물로 장국을 만들어 먹는다 하는데 별미라 하지만 나는 아쉽게도 꿩고기 고명을 한 메밀국수를 먹어보지 못했다. 속 다스리려 냉면집 찾아가지만 어떤 맛을 보여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시원한 육수의 상큼한 맛에 아마도 숙취의 뒤 끝을 풀기에는 더 없을 듯 하다.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