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3년 전 일 것입니다. 우리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 일이니까요.
고아로 자란 남편이 너무나 못마땅한 저희 친정아버지의 지독한 결혼 반대 때문에 저와 남편은 고향을 도망 나와 정말 수저 한 벌과 홑이불 한 장으로 지하 단칸 셋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혼생활 시작 처음부터 세상은 정말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왜이리 남편이 하던 일마다 꼬이고 생활이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떡해 우리가 그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는지 가끔 추억 아닌 추억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던 중 지하 셋방에서 남편과 산지 5개월이 지났을 때 몸에 이상이 있어 검사를 해보니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임신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지금 사는 형편도 힘든데 지금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다른 문제를 제쳐놓고 저희는 참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줄 것이 뻔한 상황이었거든요.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습니다.
남편은 신중한 표정으로 한참을 있더니 바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 이제 우리 사정도 좀 나아지려나 봐! 하늘에서도 우리 사정을 알고 바로 맞춰 아이를 보내주시네. 여보!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몸조리 잘 해야해! 알았지?"
남편의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고맙고 기뻤는지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정말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그 때 당시 우리 집 사정이 정말 좋지 앉아거든요. 절대 아이 가질 생각을 추어도 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밥끼니 해결하기도 힘들고 3만원짜리 셋방 방세 내기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남편 말을 듣긴 했지만 분유 값이던지 아기 옷이며 용품이며 그런 일이 너무나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걱정이 많고 두려움이 많았는지 아이는 가졌지만 아직 어려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1개월 3개월 그리고 시간이 지나 드디어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기가 태어났을 때 남편은 그 아이를 보고서는 눈물까지 흘리더군요. 저에게는 너무 예쁘다고 그리고 기쁘다고, 하지만 그 눈물이 그런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는 걸 몇 년 뒤에 알게 됐습니다. 남편은 그 때 너무 아기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일가친척 한 명에 축복 없이 태어나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책스럽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래도 아기는 몇 개월 동안은 다행히 젖도 잘 먹고 아프지도 않고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여름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창문이 없고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습기 많은 지하단칸방은 정말 저 혼자만 있어도 땀이 뻘뻘나는 사우나 같았습니다. 아이는 자꾸 울고 젖도 먹지 않고 하루가 멀다하지 않게 아프고 정말 전에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이 지하방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방을 나가면 갈 곳이 없는 우리부부는 발만 동동 구르며 아기에게 부채질도 하고 차가운 수건으로 열을 식히는 그런 단순한 방법 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 때 남편과 저는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그 방을 나올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 때 방 밖에서 툭툭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희 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외지에서 저희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문소리가 들렸습니다.
혹 밀린 월세 때문에 집주인이 온 것일까? 걱정스럽게 저는 문을 열었습니다.
입이 확 막히더군요.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침통한 표정의 아버지 앞에서 저는 한동안 멍하니 쳐다만 봤습니다.
아버지는 " 너는 이 아비 들어오라는 말도 안 하냐? " 저희 남편도 아버지가 들어오시자
황급히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역시 아무 말이 없이 조용한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하신 첫 말씀이 "서서방! 여기는 너무 덥지 않나? 우리 외손주가 너무 덥지 않겠나?
손주녀석 때문이라도 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지"
그 말을 듣고 전 눈물이 나왔습니다. 서서 방이란 말은 저도 남편도 처음 듣는 말이었고 이제 그렇게 남편을 반대하시던 아버지가 저희를 인정해주신다는 말씀이었거든요.
그러고 아버지는 벌떡 일어서시더니 잠깐 바람 좀 쐬러 밖에 잠깐 다녀오겠다며 나가셨습니다.
저는 빨리 밖에 뛰어나가 콩나물과 두부 한 모를 사와서 고향에서 몇 시간이나 걸려 오셨을 또 점심도 굶으셨을 아버지 생각에 빨리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점심준비가 끝나도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바람 쐬러 나간다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걱정이 된 저와 남편도 아버지를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안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저는 걱정이 되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때 문 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 양손에는 자신의 몸보다 큰 박스와 커다란 수박 한 통을 들고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며 "아버지!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안에서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도안하시냐고요? " 속상함 반과 미안함 반에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너희 방이 하도 더워서 선풍기 하나하고 시원한 수박 한 통 사러 1시간이 버스를 타고 멀리 시내까지 다녀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 더운 여름 낮에 환갑 넘으신 노인네가 자기 몸보다 더 큰 선풍기 박스와 수박을 들고 몇 시간이나 고생했다는 생각에 한동안 눈물이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빨리 손주녀석에게 선풍기 바람이나 쐬어주라고 나보다는 손자걱정이나 하라고 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드시고 아버지는 할말 있다고 우리를 불러 앉아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황소 두 마리 판돈 가져왔다.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 시원한 곳으로 이사하고 서서방도 이제 고향으로 자주 찾아오라고 그리고 이 돈은 너희가 예뻐서 주는 게 아니라 손주녀석 선물이니까! 꼭 잘 키워야 한다고 당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하루처럼 제 평생 그렇게 많이 눈물 흘린 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시고는 하룻밤 주무시지도 않고 극구 말리는 저희를 남겨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 밤 남편과 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 말대로 우리 아기를 정말 훌륭하게 잘 키우자고 그리고 꼭 성공해서 아버지께 어서 빨리 효도를 해서 이 은혜를 빨리 갚자고 깊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 후 저희는 아버지의 그 황소 판돈으로 지하셋방에서 바람이 잘 드는 창문 큰 셋방으로 이사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녀석도 할아버지가 고생해서 사주신 선풍기 덕분인지 그 해 여름 아프지도 않고 젖도 잘 먹고 건강하게 첫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지금은 지하 셋방에서 나름대로 번번한 저희 집도 마련했고 아들 녀석도
무럭무럭 자라 지금 군대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고 3년 후 태어난 예쁜 딸도 잘 자라 저희 마음 고생시키지 않고 잘 커가고 있습니다.
저희 남편은 언제나 여름이 되어 이 낡은 선풍기 청소를 할 때면 항상 옆에다 아들 녀석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 이 선풍기가 몇 살인지 아냐? 그럼 아들은 "아버지, 또 그 이야기하세요? 매년 똑같은 이야기만 하시네요. 저도 다 알아요! 저랑 동갑이잖아요 " 웃으면서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아들 녀석 방에는 그 녀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23년 동안 항상 할아버지가 사다주신 이 선풍기를 놓고 더운 여름을 보냅니다.
녹이 다 썰고 버튼도 없어진 볼품도 없는 선풍기, 자기 수명을 훨씬 넘긴 선풍기이지만 할아버지가 사주신 이 소중한 선풍기는 단 한번 고장 없이 매년 저희 아들 녀석을 시원하게 해주네요.
저는 언제나 우리집 가보인 23년이 된 이 낡은 선풍기가 한번도 고장 없이 이렇게 잘 돌아가는 건 우리 손주에 대한 우리 아버지의 사랑이 아직까지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고장이 나고 고치지 못할 만큼 낡아 없어질 때까지 이 선풍기는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선풍기를 23년 전이나 오늘이나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하는 마음처럼 씽씽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들 방에서 이 낡은 선풍기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그리워지고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도 안 계시고 너무 늦었지만 "아버지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