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같은 집에서 사는 식구들에게는 너무 편해서 그런지 아님 가식을 없애버려서 그런지 자기 본래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나 생각된다.
사람이 학교나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라면서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포카페이스를 갖게 되는데, 같은 식구들에게 그걸 발휘할 필요는 없지않은가. 그래서 그런가 나가서 잘하는 사람들이 집에선 맘에 안드는 구석을 보여줄 때가 많다.
게다가 이 집안의 식구들이 몇인가 말이다. 이 타지 아르헨티나에서 말도 안통하니 어디 돌아댕길 데도 별로 없고 친구도 없고, 난 바로 무인도에 뚝 떨어진 거나 진배없는 느낌이었다.
이십년이 넘도록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한 집에서 살기란 수월치가 않았다. 게다가 남편도 아닌 친척관계는 더더욱 그러하다.
형님은 나를 이해를 못했고 난 형님을 이해 못했다.
우리 형님이 어떤 사람인가.
성실하고 야무지고 똑부러지게 남에게 피애 안끼치고 자기 주장 확실하며 목표가 생기면 꾸준하게 인내심을 갖고 이루는 사람이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거의 독학으로 수준급이 되어 레슨을 시킬 정도로 노력파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아르헨티나에선 그 시집살이 와중에도 첼로도 열심히 배워서 자기 관리를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그림에 몰두해서 아마 거의 십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똑똑한 여자이다.
손도 빨라서 일을 참 빨리 잘했다.
종갓집 맏며느리답게 제삿 날이면 난 마늘까고 파다듬고 양파 깔동안 휘파람나게 모든 음식을 다 해놓았다. 사실 나중에 나도 음식을 배우니 그런 잔일꺼린 표시도 안나고 힘들고 요리하는게 더 즐겁고 생색도 나고 좋은 건지는 알았지만 암튼 음식도 맛깔나게 빠르게 잘한다.
설겆이 하나를 해도 덜그럭 거리는 소리는 날지언정 후다닥 해치우는 편이다. 사실 그래서 우리 형님은 컴이나 유리 그릇은 이가 잘 빠지게 하기도 했다 ㅋㅋ
그런데 난 그릇 소리가 나는게 왜그렇게 싫었는지 모른다. 괜히 맘이 불안해져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조용히 하나하나 차근차근 씻는게 내 버릇이다.
그렇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며느린 서로 이해가 안되어 힘들어했다. 형님이 삐진거 같음 내가 애교 떨며 물어본다.
"형님~ 뭐 제가 잘못한거 있나요?"
"잘못한 사람이 알지 내가 꼭 말해야 아나?"
아...난 정말 눈치도 없는 모양이라 내가 뭔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난 덜렁이에 털털한 성격인데 울 형님 꼼꼼하고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과 맞부딪혀 말못하고 사소하게 지나가는 일이 쌓여갔다. 그러다가 빨래 사건으로 둘은 그 맘의 섭함을 전적으로 내뱉게 되었다.
그 날도 부엌에서 형님은 뭔가 화가나서 나랑 말도 안하고 있었다. 옥상 빨래터에서 모든 식구들의 빨래가 다 행해졌는데 내 옷도 빨래통에 넣고 내려왔다. 형님과 부엌 일이 끝나고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옥상을 올라가다보니 형님이 빨래들을 떨어뜨렸는지 신경질적으로 빨래를 찼다. 나름대로 스트레스 쌓인걸 그케 풀었나부다.
난 그 성질난 상태의 형님과 부딪히기 싫어서 다시 내 방으로 내려왔다. 십분 후에 다시 옥상에 올라갔더니, 빨래통에 있던 내 옷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게 아닌가. 바로 형님의 빨래를 향한 그 발길질이 생각나며 난 너무 섭섭했다. 그래서 바람이 많이 부는 옥상 밖으로 나갔다. 빨래가 흔들리고 있었다. 잔뜩 널려진 빨래를 보며 난 또 다시 내 눈을 의심했다. 빨래가 널려 있는데 조카의 옷들은 빨래 집게가 두 개씩 꽂혀 있었고 우리 아들 옷들은 하나도 꽂혀있지 않은 채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며 다른 곳으로 날아갈 위기인 것이다. 집게는 넉넉했고 다 꽂아도 될 정도였는데 우리 아들 옷들만 바람에 걷어지려는게 화가났다.
집게들을 동원해서 모든 빨래에 집게를 꽂은 다음 난 바로 형님에게 갔다.
"형님 그럴 수 있어요? 어떻게 빨래에 윤희 옷에만 집게가 안 찝어져 있는거에요?"
집게가 모자란거도 아닌데 그럴 수 있냐고 흥분한 목소리로 그랬다. 그리고 빨래통에 정확하게 넣어진 내 옷이 왜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지도 물었다.
형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그랬다.
너무 기가막혔다.
그렇게 멋있고 똑똑하고 유능한 형님이 그 사소한 일에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 밉게 생각되었다.
나도 할말을 잃고 내 방으로 왔다. 속상했다.
어머님은 형님과 말을 하고 오시더니 대뜸 나보고 사과하랜다. 아랫 사람이 숙이고 들어가야지 윗사람이 숙이는 법은 없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우신다. 며느리 잘못 들어와 집안 망하게 생겼다고 하시면서 형제간 우애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원망을 하셨다.
형님의 친정 아버님은 서울대 출신이란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디에서건 애비없는 후레자식 소리 듣기 싫어서 예의 바르게 살려고 하는게 내 약점이고 콤플렉스이다. 항상 비교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그리고 친정 어머니 욕먹이기 싫어서 난 한번도 아버님이나 어머님 내지는 시댁 식구들에게 지금까지 싫은 소리 한마디 안했다.
우는 어머니 소리에 맘이 약해졌다. 그래 나 하나 참으면 되는데 이렇게 분란을 일으켜 놨으니 이 사건을 그냥 내가 무마하자 싶었다.
형님도 화가난 상태라 우리 윤희 옷에 빨래 집게를 꽂는걸 잊으셨을 수 있을꺼야.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다보면 내 옷이 잘못해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
"알았어요. 어머니 제가 형님에게 먼저 가서 사과드릴께요. 울지마세요."
어머님과 아가씨는 내 방에서 기다리시고 난 형님 방에 가서 사과를 했다.
"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시고 제가 뭔가 잘못하면 지적하고 고칠 것 이 있으면 고치라고 하세요. "
형님은 싸늘한 시선으로 날 보더니
"뭘 잘못했는데? 뭘 사과하는거냐구. 모르면 관둬. 사과 필요없어."
"그래요?"
"나가줄래?"
난 화가나서 도로 나왔다. 가서 사과한게 너무 억울했다. 어머님은 분란을 일으킨 내가 섭해서 그 뒤에도 내게 섭함을 드러내셨고, 내가 섭섭한 것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층층 시하 내가 먼저 사과하고 잘못을 비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주눅 들어갔다.
그 당시에 랑은 뭔 돈을 번다고 한국에 출장을 간 상태였다. 철이 없던 랑은 밖으로만 돌았다. 시집을 와서 살았지만 일년에 랑 얼굴보며 사는 것이 몇 달 안되었다.
친구도 없고, 타국에서 그렇게 난 안으로만 삭히며 살았다. 물론 나만 삭힌 것이라고 생각은 안한다. 그 당시 같이 살던 다른 식구들도 그렇게 삭혔을 것이다.
나중에 출장 다녀온 랑은 내 지나가는 푸념을 듣곤 자기 와이프인 내게 자기도 없는데 그렇게 박대했나 싶은게 섭했는지 어머니에게 그 섭섭함을 표시하곤했는데, 어리석기 짝이없는 행동이었다. 그게 그대로 어머님이 섭함이 되어 내게 부메랑 효과로 돌아오곤 했으니 말이다. 친구도 없는 내가 그래도 믿고 투정 부린다고 한 일들이 그렇게 내게 다시 가시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당신에게 신경질부리고 불효하면 어머님 맘은 또 어떻겠는가. 며느리가 미워지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이다.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랑은 오면 날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었다. 오랜만에 아이를 데리고 영화도 보러가고, 햄버거도 먹으러 가고, 올리보스란 부촌에 가서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랑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곤 했다.
올리보스 지역엔 피자 거리가 있고 레스토랑 거리가 있는데 커다란 나무가 그늘이 되어서 그 낮은 나뭇가지 밑으로 야외 식탁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그 나무를 보는걸 난 참 좋아했다. 잎도 이뻤고 깨끗했으며 가지 하나가 뻗친게 십미터가 넘어가서 장관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나무 밑에서 잎 냄새를 맡으며 밤공기를 쏘이며 자는 아이를 안고 별구경도 했다. 음식은 맛있었고,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나이 지긋한 무희의 탱고가 멋스러웠다.
우리가 자주가던 노천 카페의 이름은 '달리'이다.
그 카페는 화가 달리 그림으로 도배를 했는데 거기서 인기리에 팔리는 음식은 내가 원하는 재료를 선택해서 햄버거를 먹는 것이다. 안에 들어가는 재료가 이십가지가 넘고 빵 종류도 많아서 자기 취향대로 시켜서 나만의 햄버거를 먹는 것이다. 게다가 그 집에서 내리는 커피맛은 향이 좋아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그 집의 웨이터들은 은퇴한 대학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들의 박식함에 놀랐고, 그 품위있는 커피나름과 커피 하나에 애정을 쏟는 전문성 등등 그들에게 나이는 먹었지만 그리고 돈이 없어 웨이터 일은 하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그들이 하나도 초라하다거나, 비굴해 보이지 않고 멋져 보였다.
심신이 피로에 지치는 날에는 지금도 그 달리 카페의 품위있는 웨이터들의 커피 시중과 커피내음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