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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없는 이야기 -1-

상추캔디 |2004.09.08 11:39
조회 499 |추천 0

어느 뜨거운 오후,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그녀와 나는

한가롭게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중 이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 번 크게 깨물어먹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 수업도 안 하고 그냥 끝나버린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간단한 글 짓기를 했는데 주제가 좀 유치했어"

"유치해?"

"응, 내년 부터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니까 점점 어른이 되가는걸

우리한테 다시금 인식시켜 주고 싶었는지 뭐든지 좋으니까 자기가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는거야."

"그래서 뭐라고 적었는데?"

내가 보여줄께 라고 하며 그녀는 옆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진 가방을 열어서

뒤적거리며 시선을 가방속에 둔 채로 말을 했다.

"나는 애기가 너무 좋으니까 빨리 어른이 되서 아기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적었어. 그런데 발표할때 내가 첫 줄을 읽자마자 선생님이 그만!!이라고 소리질렀다?

이상한 선생님이야."

그리고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반듯하게 접어놓은 듯한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들고 펼쳐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섹스가 제일 먼저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이런 내용의 어제 꿈을 생각하며 나는 퇴근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

직장내 화장실 에서 거사를 치루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전혀 일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기라도 해야

내가 직장에 나왔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 것 같아서이다.

집의 변기가 막혀서가 아니다.

....정말이다.

뭐, 컴퓨터 조립과 수리를 하는 조그마한 가게 이긴 하지만 맨날 오늘처럼

한가하기만 하진 않다. 평소엔 굉장히 장사가 잘 되는 편이다.

일을 시원하게 보고 자리로 돌아와 퇴근시간 카운트 다운을 할 겸 2시간만큼의

음악을 윈앰프 리스트에 걸어놓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누가 어께를

토독,톡! 하는 리듬을 실어서 처댄다.

돌아보니 경수형이 언제나 처럼 입가에 웃음을 띄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아, 경수형은  여기에서 나와 같이 컴조립과 수리를 해대는 양반인데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스물 네 살 인데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 두살이 어리게 보인다.

가끔씩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면 또 무슨 농담거리나

장난칠것이 생각나는지 피식 웃어대기도 하는 언제나 웃음을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방금 화장실에서 줏었다? 어떤 코끼리가 화장실에다가 똥을 싸놓고는

물이 안 내려가니까 미안한지 이 지갑을 놔두고 도망 갔나봐."

손에 든 것을 자세히 보니 까만바탕에 하얀 스티치 장식..내 지갑이다.

"그거 제 지갑인데요"

"어? 네가 변기의 입을 틀어막은 장본인이야? 점심 메뉴로 뭘 먹은거야? 강호동?"


점심메뉴로 강호동을 먹다니 정말 독특한 상상력이다.


"그건 그렇고.."

두 손으로 말 머리를 잡고 돌리는 모양을 하곤 내 지갑에서

증명사진 세 장을 빼들고 나란히 펼쳐 보이며 경수형이 말했다.

"세 쌍둥이라도 사귄거야? 아니면 한 여자의 두 번에 걸친 성형수술 성공기?"

경수형의 손에 들려있는 세 장의 증명사진..

여태까지 사귄 여자들의 사진이다.

셋 모두에게 잘 해주지 못 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항상

지갑에 간직하고 다닌다고 예전에 말만 해주고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내 지갑이 손에 들어오자 앗싸 좋구나! 하곤

사진을 빼서 구경을 한 모양이다.

헌데..정말 저렇게 나란히 펼쳐서 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세 사람은 닮아있다.

한 사람의 사진이라고 해도 정말로 믿을 정도로..

"세 쌍둥이라뇨..무슨.."

입이 벌려진채로 말이 끊겼다.

머릿속에 번개가 쳐서 머릿속에 말을 할 정도의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왜 그토록 닮은 여자들을 사귀어 왔는지 왜 그 여자들에게 잘 해주지 못 했는지

정답을 찾아냈다. 아니, 깨달았다고나 해야할까

나는 그 세 명의 여자들에게서 내 상상속의 이상형의 모습을 발견했고

접근해서 연애를 하며 내 상상속의 여자와 실지로 사귀고 있는 여자의

말투,성격,행동을 다 비교해대서 그걸 참지못한 그 여자들이 떠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상상속의 여자는 내가 창조해낸 여자가 아니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꿈속에 나오는 그 첫사랑 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세 여자들에게서 첫사랑과의 공통점을 찾아내기에만 급급했고

그 결과로 나는 그녀들과 '거래'를 했던것이다.

그녀들은 나에게 사랑을 주었고 나는 단지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랑을 주는 척 했던것이다.

결국 그녀들은 두 달이건 반년이건 시간이 흘러

나 와는 사랑이 아닌 거래를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것이다.

주는것 만큼 받으려 하는 거래를..

그걸 깨닫고는 이내 나에게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하곤 떠나갔던 것이다.

여튼 지금 내 머릿속에는 세가지 생각이 머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첫째는 내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것이며

둘째는 내가 그 첫사랑을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나는 분명히 아까 화장실에서 물을 내렸다는 것이다.

경수형이"힘내, 사오정! 언젠가는 다시 나방이 나올꺼야"라고 하며 밖으로 나갈동안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첫째와 둘째 생각을 합쳐서 결국 찾아서 만나야겠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찾자'

번개가 한 번 치고난 후에는 번개가 치기 전 보다 주위가 더 어두워지는 모양이다.

아까는 첫사랑의 발견이라는 번개가 치더니 번개가 치고나자

찾을 단서가 이름과 나이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것에 머릿속이 금세 깜깜해졌다.

!!

아니다, 미약하긴 하지만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우연히 다음에서 사람 찾기 서비스를 하는것을 본 듯 하다.

싸이트에 들어갔다. 사람찾기..사람찾기..

있다!

오른손을 마우스에 대고 떨리는 손으로 클릭을 해가며

찾는 이름 쓰는 칸에 커서를 두고 모음하나 자음하나 천천히 적어나갔다.

'김환희'

나이 23세

사는 지역까지 고르고 난 후 검색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많은 사람이 나오면 어쩌지 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최소한 그 고민은 풀어진 듯 하다.

이름이 독특해서일까, 조건에 맞는 사람은 딱 두사람 뿐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 여자가 다음에 가입을 했는지의 여부지만 그건 이 둘에게

메일을 보낸후에 알게 될 일이다.

편지 쓰기 버튼을 누른 후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긴장했을때만 나오는 나의 버릇이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손가락은 지금 뛰는 심장박동수에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글을 써내려갔다.

2분정도 후 숨을 내쉼과 동시에 글은 다 쓰여졌다.

이제 보내기 버튼만 누르면 내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의 제1 작전이 개시가

되는것이다. 누르기만 하면..첫 물고가 터지는 것이다.

글은 그렇게 잘 써지더니만 편지 보내기 버튼 은 누르기가 어렵다.

두려운것일까? 멀리 있을수록 아름다운 별 과 같은 첫사랑을 괜히 건드렸다가

악몽같은 현실이 되어버리는게?

다시금 숨을 들이쉬곤 편지보내기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그리곤..마우스 커서를 버튼 밖으로 빼내고 마우스 버튼을 땠다.

결과적으로 버튼이 안 눌러진것이다.

네모난 버튼 주위로 얇은 점선이 생겼다.

좋아,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면서 이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라고 속으로 자신에게 말한 후 일어서려고 의자를 돌렸다.

"히익!!"

옆을 바라본 순간 경수형이 옆에서 얼굴의 온갖 근육을 다 쓰며 두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응시하고있었다. 자기가 말하는 '카리스마 표정'이라는 거다.

"지금 뭐 하는 모션이냐?"

질문을 던지며 내가 변명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모니터를 한 없이 바라보고 있더니 오른손을 뻗어 엔터를 친다.

'편지가 전송 되었습니다'

"아악!!!! 지금 뭐 하시는거에요?!"

비명섞인 나의 질문에

경수형은 가슴을 당당하게 펴제끼더니, 뭔가 자랑스러운 듯한 말투로 말 했다.

"너의 러브러브 메신저인 이 형님이 너의 역사적인 순간의 주저함을 없애준거지"

뭐, 시원한 물을 마시던 따뜻한 물을 마시던 내 생각의 결과도 이랬음이

틀림없었기에 화는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옆에 계셨어요?"

"니가 볼에 가득 숨을 마시고 얼굴이 일본원숭이 처럼 빨개졌을 때부터"

경수형은 이렇게 말하곤 우끼끼끼라고 원숭이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좋아, 이렇게 된 거..'남은 한 사람의 후보에게도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보내고 이제부터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까 편지를 쓸때보다 두배는 더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레임..정말 오랜만 이었다. 지금 이 기분좋은 두근거림의 상태에서는

1분이 1시간이고 1시간이 1년만 같을것 같다.

지금 이대로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빨리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장님이 직접 쓴 '혁명적인 번영을 위한 룰'에 따르면 일단 퇴근시간은

2시간 정도 남았기에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컴퓨터 고장났으니 날래 고쳐주라우!'라는 전화라도 오면 나가서 일이라도 하며

퇴근시간까지 시간을 떼울탠데 오늘 이 전화는 고장이 났는지 울리지도 않는다.

나에게 일거리를 줘! 전화기 울려라,울려라,울려라,울려라!!

지금 내 혼잣말을 사장이 들었으면 월급이 올라갈탠데..

여튼, 울려라! 울려!

'따르릉!!'


..내게 드디어 초능력이 생겼다 보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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