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 ‘권위 있는 학술지’ ‘권위 있는 전문가’ 같은 표현이 있듯이, ‘권위’ 그 자체가 惡은 아니다. ‘권위’란 크고 작은 공동체가 특별한 영향력과 위상을 가질만하다고 인정하는 어떤 실질적 내용이자 실체다. 그에 비해 ‘권위주의’란 ‘권위’가 누릴 혜택에 합당한 실질적 내용을 가지지 못하면서 특별한 영향력과 위상을 공동체 구성원에게 강요하는, 즉 ‘사이비 권위’를 내세우는 태도를 말한다. ‘권위’란 여러 가지 종류와 형태가 있고 공동체의 화합과 질서유지에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의의 이상의 것을 무리한 방법으로 추구하면 ‘권위주의’가 된다.
우리에게 ‘권위주의의 청산’은 오랜 과제였고, 이제는 이미 하나의 시대적 가치로 국민적인 공감을 얻은 상태다. 따지고 보면 권위주의 극복의 과정이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시켜 가는 과정이며 모든 산업사회가 민주화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요컨대 한 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또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 유구한 나라일수록 극복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뿌리 깊은 유교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도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유교도 출발이야 진정한 의미의 ‘권위’를 추구하는 이념이었고 그것을 철저히 제도화시킨 것이 조선왕조였지만, 인간만사가 그렇듯 오랜 세월 고착화되면서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는 비합리적 요소로 작용해온 측면이 크다. 더구나 식민지 경험을 통해 왜곡된 형태의 근대화를 겪으면서 유교적 전통은 극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부정의 과정을 비껴갔다. 청산의 대상이긴 커녕 일제에 대항하는 ‘우리 것’으로서 대접받아 왔고, 해방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지배해왔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현대사를 ‘권위주의 청산의 역사’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무현 정권의 최대 업적으로 ‘권위주의의 청산’을 들고 싶다(최대가 아니라 유일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권위주의의 청산’이 ‘권위 자체의 파괴’와 더불어, 아니, 주로 ‘권위의 파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심히 유감이다. ‘권위의 파괴’는 주로 노 대통령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말’하는 스타일은 그의 큰 정치적 자산이기도 했지만 결국 나중엔 정치생명을 크게 손상시켰다. 대통령으로서의 적절한 필요한 권위마저도 파괴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아도 무리가 아니다. 법조인 출신에 정치적인으로서의 특유의 이력, 게다가 타고난 달변가. 과거 5공 청문회에서의 활약으로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 한 이래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언변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매료시켜온 측면이 있지만, 대통령이 된 이래로 그의 언어는 꾸준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처음엔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 스타일에 점차 사람들은 곤혹스러워하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계속 심화되어 왔다. 정권 후반에 들어서면서는 그 말마따나 ‘막 가는’ 분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발언파동 - “말이 많다”와 “말을 많이 한다”
“말이 많다”는 비판에 대해 노 대통령은 “민주사회는 ‘말’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말이 많은” 것과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해버린 데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특유의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발언 스타일이 크게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노 대통령 발언의 진정한 의도를 헤아리기 이전에 발언 시의 비류나 어휘선택 같은 형식적인 면에 사람들은 거북해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찍힌 거지요, 제가.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닙니까?” (2007.1.4 과천청사 공무원 격려 오찬연설). “제가 그래도 왜 그래 인기가 없나 말을 막말을 많이 하다 보니 그렇다 하니까, 할 수 없죠, 뭐 일만 잘 하겠다 그겁니다.”(2006.12.27 부산 북항재개발보고회 후 오찬간담회) “미국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짓가랑이 매달려 가지고, 미국 뒤에 숨어서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의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가 있겠냐.”(2006.12.21 민주평통 상임위 연설) 변함 없는 의리의 지지자들은 “노짱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환영할지 모르지만 국민들 전반적으로는 비판론이 강한 실정이다.
노 대통령의 문제 발언은 특히 주로 해외순방 중 동포간담회 자리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동포간담회가 아니라 ‘공포’간담회 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겼을 정도라니 알만하다. 작년에 크게 논란이 된 ‘대북 양보 발언’도 몽골 동포간담회에서 나왔다. 인도네시아 순방 중 청와대 브리핑에 띄운 ‘열린 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2006.12.4 통합신당 반대를 거론)는 당내 친노-반노 갈등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지난해 연말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모임에서는 2002년대선후보시절을 연상시키는 제스처와 격한 음성으로 연설을 해서 화제가 됐다. 이 자리에서는 군복무를 “몇 년씩 썩는” 것으로 묘사해서 군 원로 및 직업군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비난이 일었다.
신년 들어 표현은 더욱 과격해졌다. 4일 과천청사에서 경제점검회의 후 경제 관료들과의 오찬자리에서 소비자 주권문제를 언급하면서 “언론은 불량상품”이라는 표현을 하는 등, 경제관련 국장 이상급 인사들은 아연 긴장시켰다는 후문이다. 외교가에서도 마찬가지. 노 대통령은 민주평통 연설 중 방코델타아시아(BDA)문제를 얘기하다 “미국 재무부가 BDA 계좌동결조치를 한 것을 국무부가 몰랐던 거 아닌가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또 나쁘게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한 미국정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워낙 노대통령이 많은 말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뉴질랜드 동포간담회(2006.12.9)에서 노 대통령은 “일본에서 국가가 일어나 통일이 되면 한국에 와서 짓밟고 중국이 통일되고 새 왕조가 일어났다 하면 꼭 한국에 와서 분탕질 쳤다”고 말했다. 한·일관계 한·중관계가 주기적으로 역사문제를 두고 갈등관계에 빠져들었음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공개적인 석상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의 ‘말’ 스타일과 관련된 일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취임 이후 국회에서 첫 연설을 할 때였다. 원고대로만 읽으시라고 다른 이야기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노 대통령이 ‘알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연설 막판에 원고에 없는 내용을 말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훌륭한 연설이었다. 노 대통령 얘기를 나중에 들어보니 연설을 하려고 하는데 내 얼굴이 보여 눈을 질끈 감고 해버렸다고 말하더라.”(열린우리당 중진의원) “노 대통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참는다. 그러니 대통령의 말에 권위가 없다. 대통령은 마지막에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먼저 이야기를 한다”고 말하는 의원도 있다. 한편 “노 대통령에게 말을 아끼라고 진언하면 ‘그건 권위주의 시대의 이야기다. 대통령도 이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 비서진들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구체적 발언보다는 기본적인 취지를 이해해 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다. 한 여권 관계자에 의하면 “노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비서진이 청와대비서실에 아무도 없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발언문제에 있어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과연, 권위주의시대의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그들 가운데 이만한 달변가 달문가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군인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덕목이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언이란 보통 비서진이 써온 것을 기껏해야 한번 훓어보고 사인한 원고를 기본적으로 그냥 낭독하는 수준의 것이었으리라.
의학전문가가 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습관
노무현 대통령의 거친 ‘말 스타일’에 대해 의학계(신경정신의학)에서는 이를 ‘발달론적 미성숙’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 학자도 있다(문화일보 인터넷판 2007-01-06). 신의진 연세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노 대통령의 말 스타일을 분석하면서 “마치 파자마 차림으로 공개석상에 나오는 것 같다”는 비유를 했다. “발달론적으로 보면 미성숙 내지는 지도자로서 훈련되어야 할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는 신 교수의 진단은 특히 공감 가는 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미지 조사를 하기도 했던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의 진단도 그렇다. 요컨대 “노 대통령의 어법은 국민들과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는 시원하고 명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말을 하면 할수록 거부감을 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황 교수는 “노 대통령 말투는 농경시대 말투로 집안 식구들끼리는 재미있을 수 있”지만, “산업화 시대에는 매너 없고 부정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비록 사석에서긴 하지만 노 대통령은 “나는 욕설이 체질화된 사람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막노동판에 있었는데 그때 배운 게 욕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욕이었다”(2006.8)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 자신의 고백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그간 그의 언어에 국민들이 느껴온 당혹스러움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권위의 파괴’와 ‘권위주의의 청산’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사회의 권위주의 청산은 확실히 가속화되었다. 뿌리 깊고 완강한 권위주의적 전통이, 급속하게 부상한 근대적 중산층(시민)의 이해와 충돌하면서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과 혐오의 의식도 빠르게 보편화된 것이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권위’와 ‘권위주의’가 혼동되기 시작했다. 극복해야 할 것은 ‘권위주의’이지 ‘권위’ 그 자체는 아닐 터인데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위아래가 없는’ 상태로 변해왔고 변해가고 있다. 물론 문제는 ‘위아래가 없는’ 상태 자체가 아니다. 그것이 경우를 가리지 않고 있으며 또 합리적인 한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 사회, 국가 등 모든 공동체에 있어서 진정한 나름의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 그 자체가 파괴나 청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권위'가 현재와 같은 식으로 파괴되어도 좋은 것인지, 노 대통령의 언어가 ‘권위주의의 청산’과 ‘권위의 파괴’ 어느 쪽으로 더 작용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 프리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