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유진박과 썰렁한 공연을 함께 하다-_-...

이원영 |2004.09.16 13:44
조회 9,209 |추천 0

내가 속해 있는 연주팀은 성악을 전공한 남성 8인조로 구성되었다

개그맨 전유성이 기획한 팀으로 일반인들이 거부감 없이 클래식을 받아들이도록

정통 클래식 + 뮤지컬 + 동요 + 만화영화 주제곡까지 다양하게 부른다

(열린음악회 등 여러 매체에 나갔으니 아시는 분도 있을테다)

 

 

워낙은 교수(강사)들로 이뤄진 팀인데 바쁘신 관계로 유학을 앞둔 제자들이

2진을 형성해서 대신 행사를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 행사는 모 기업체의 박람회장 오픈 행사였다

우리 팀이 30분 공연하고 바이올리스트 유진박씨가 20분 공연키로 되 있었다

 

 

우리팀이나 유진박 씨나 클래식을 클래식답지 않은, 유쾌하고 즐거운 크로스오버로

만들어서 하는 팀이니만큼 초청하는 쪽의 분위기도 젊고 감각있는 이벤트를 원하는

쪽에서 많이 초청을 한다. 특히 우리팀의 경우엔 노래 부르는 내내 계속 웃는 컨셉이라

젊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분위기도 살고 더 즐거운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공연장에 딱 도착한 순간부터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 우리가 가는 공연장 분위기라면 예쁜 언냐들이 아기자기한 유니폼 입고는

 

 

「방가방가해여 *^^*」

 

 

활짝 웃으며 손을 반짝반짝 흔들어 주는 게 정상인데

여기는 검은색 양복을 쫙 빼 입은 정장의 사나이들이 입구에서 차를 '정중히' 막고는

 

 

「내려 주시겠습니까」

 

 

손수 차 열쇠를 받아서 운전하고 키를 보관하는 폼이 마치 1급호텔 로비에 도착한 분위기였더랬다

공연장에 입장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호텔 로비처럼 휘황찬란하게, 그러나 클래식하게

세팅된 인테리어 안에서 고급 음식들이 뷔페로 준비되어 있는, 완전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특히, 나 같은 경우엔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는 것이

공연 때 연미복을 입기에 평소 차림 (추리닝 반바지에 슬리퍼) 으로 껄렁껄렁 갔는데

로비에 차마 들어갈 엄두가 안 나서 잽싸게 차로 가서 구두라도 신고 들어가야 했다

(추리닝 반바지에 구두라니... ㅠ.ㅠ)

 

 

알고 보니 이번 행사는 소위 말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들의 점잖은 행사였다

참석자들의 평균 연령은 50대 이상이었고 90프로 이상이 남자들로 이뤄졌다

거기에다 회사 회장이 독실한 기독교라서 목사님까지 와서 예배를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당장 우리는 구석에 모여서 레파토리에 대한 회의부터 해야겠다

 

 

「분위기 완전 구리다! 곡 다 바꿔야겠다」


「뭐뭐 바꾸지?」


「일단 동요 메들리는 빼야 되지 않겠냐?」


「그래. 올챙이송 율동하며 불러봤자 좋아하지도 않을 거다」


「마징가 제트도 빼! 저 아저씨들 그것도 모를 거야」

 

 

이리저리 다 빼고 좀 점잖은 곡으로 다시 레파토리를 바꿨다

근데 우리보다 더 문제는 유진박이었다

우리야 한 스무 곡 이상 되는 것에서 이리저리 구색맞춰 바꾸면 되지만

유진박씨는 원래 준비한 곡의 반주 테이프까지 가져온 상태라서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원래 유진박 씨가 좀 별난 기질이 있잖는가-_-...

 

 

말 나온 김에 유진박씨 얘기 좀 하자면

처음 '어디서 많이 본' 그런 작고 똥똥한 남자'애'가

약간은 후질구레한 옷으로 로비를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는

설마 여기 직원이 저리 후질구레하게 다닐까 싶기도 하고 인상도 낯익어서 다가가서

 

 

「혹시... 유진박 씨 되십니까?」

 

 

라고 인사를 했더니

 

 

「응?」

 

 

뭔가 인사인지 되묻는건지 묘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휭 생까는 걸 보니

평소 낯선 행동의 소유자로 유명한 유진박씨가 분명하였다

 

 

근데 좀 충격적인 사실이

나는 그가 나이가 좀 많은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나보다도 두 살이나 어린 이십대 후반이지 않은가!

나는 그가 하도 예전부터 유명해서 지금은 사십대 가까이 되었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팀 대부분이 그가 그렇게 어린 줄은 상상도 못했고

특히, 유진박 과 같은 나이인 한 팀원 녀석은 거의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쟤는 저 나이에 천하를 쥐었건만 나는 뭐란 말인가!!」

 

 

울부짖으며 땅바닥에 쓰러졌으니...


 

그럼 두 살 많은 나는 어쩌라는 거냐-_-......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유진박 은 예의 평소처럼 아주 신나고 발랄한, 아니 발랄하다못해 발광에 가까운

그런 무대위에서의 퍼포먼스로 꿍짝거리는 디스코 노래를 연주하며 리허설을 했다

지켜보던 우리는 사실 약간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왜냐구?

 

 

본 행사에 들어서자 공연장 안 분위기는 완전 '아이스맨 한 트럭' 옮겨놓은 듯 했다

유진박이 무대에 올라서자 좀 들어본 이름인 듯 아는 내색을 비치던 그 어르신들이

 

 

「좌우이장지지~~ 장지지~~ 우장창탕탕탕탕~~」

 

 

반주테입이 귀가 터질 듯 들려오고 유진박 이 미친듯이 몸부림치면서

바이올린을 뜯고 물고 발을 구르고 나르고 무대 위를 온통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보며

 

 

(-_-) (-_-) (-_-) (-_-) (-_-) (-_-) (^_-) (-_-)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위 그림처럼 한 명 정도 살짝 반응을 보일 뿐

나머지는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누군가가 박수를 유도하는 듯 선빵으로 박수치기 시작했지만

그 돌 같이 굳은 표정에서 박수들만 몇 번 치다가 그마저도 그만 두는 폼들이

이야... 이건 정말 무서워서 연주를 못 하겠는 거였다

 

 

여튼, 유진박씨가 끝나고 이젠 우리가 공연을 하러 갈 때였다

 

 

「자!~! 죽을 힘으로 공연을 하자!!」


「그래!! 저 영감들의 입에서 한 번이라도 웃음꽃을 피우고 내려오는 거다!!」

 

 

우리는 씩씩하게 올라가서 우리의 비장의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다

그러나...

 

원래 우리의 비장의 곡 중 두 곡이

 

우리들은 미남이다  

여자보다 귀한 것은 없네

 

이거다

하나는 우리가 미남이다 라고 잘난 척 떠들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곡 끝 무렵엔 옥동자틱한 놈이 혼자 나와서 '나는 미남이다' 라고 솔로하는 건데

대부분 이 부분에서 뒤집어지고 즐거워해야 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빗 꺼내며 잘난척) 내가 미남인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웃기려고 노래하는데 어르신들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묵묵히 있거나

아님 컨셉을 이해못한 방청객들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여자보다 귀한 것은 없네 는 더 과간이었는데

원래 곡이 뮤지컬 영화 '남태평양'에서 나오는, 해병들이 여자가 필요하다고 부르는 곡인데

곡 중에서 여자를 객석에서 데리고 와서 우리가 장미꽃을 전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곡 중간에 여자를 데리러 내려간 놈이 곡이 끝나가는대도 여자를 데리고 오지 못하더니

결국엔 환갑도 훨씬 지난 할머니 한 분을 겨우 찾아서는 데리고 나오는데

그 분을 가운데 두고

 

 

「내 사랑을 받아주오~~! 오늘밤 나와 뜨거운 밤을~~!」

 

 

이렇게 고백을 하니 이게 말이 되냐구-_-......

 

 

 

결국, 그 썰렁한 무대를 겨우 마친 우리는

주최측을 차마 볼 염치가 없어서

그 고급 부페를 눈 앞에 두고 도망치듯 빠져 나와 버렸으니...

(연주자들은 공연하기전 미리 밥부터 먹어두자. 행사 망치면 쪽 팔려서 밥도 못 먹는다)

 

 

그 날 행사장을 도망치듯 나온 우리는 인근 500미터 떨어진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단장선생님은 그나마 밥도 안 먹고 소주만 들이키더라-_-;)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연주장 분위기에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그 분위기

그래도 무사히 행사를 마친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잊어 버리고 있는데...

밥 다 먹을 정도에 한 통에 전화가 왔다고 한다 (난 밥도 안 먹고 혼자 집에 왔다-_-)

 

 

「회장님께서 흡족하시다고, 반응도 뜨거웠다고 한 달에 한 번씩 와 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으악! 한 달에 한 번!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저 고통을 어떻게 겪냐구!!  -0-

 

 

 

http://www.cafe.daum.net/leewonyoung    <- 작가의 다른글을 볼 수 있는 곳

harang2006@hotmail.com                  <-- MSN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