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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헬싱---레스타드 저택

사이렌 |2004.10.18 09:22
조회 180 |추천 0

 


-여기서 그런 이야기 해봤자 나올 건 없어요, 닥터. 당신에게 우리가 원하는 건 오직 한가지에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와 함께 벨프 족을 소탕하는 것이죠.

 

나는 순간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지금 영화 찍나요? 이게 무슨 소설입니까? 내가 메트릭스의 키에누 리브스라도 되나요? 이러다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됩니다.

 

나는 순간 로저의 얼굴에 불쾌한 그림자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로저가 들어오라고 했고, 문이 열렸다. 버지니아였다.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왜 나만 빼는 거야?

 

-넌 이런 회의 싫어하니까.

 

로저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흥, 오빠는 항상 그런 식이지. 나한테 언제 이런 회의 하자고 얘기나 해봤어?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두 남매의 싸움에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곁눈질로 카밀라를 보니 그녀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니, 그건 말이야.

 

카밀라가 버지니아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사납게 뒤를 돌아보더니 카밀라의 손을 뿌리쳤다.

 

-끼어들지마. 

 

-잠깐 나가있어. 닥터 헬싱도.

 

로저가 카밀라에게 말했다. 카밀라가 나에게 눈짓을 했고 우리는 방 밖으로 밀려났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서 은은한 가로등 불빛만 창가에 비치고 있었다. 카밀라는 복도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복도는 전등 불이 들어오자 더욱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원래 저런 성격은 아니었어요. 아마도, 보헨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나봐요.

 

-보헨..

 

나는 중얼거렸다. 카밀라는 조용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그러나 나는 이미 보헨과 버지니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카밀라 역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그저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운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선 왠지 모를 우울함,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처음이었다. 그녀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것이.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버지니아가 문을 거칠게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녀는 복도에 걸린 샹들리에가 흔들리도록 문을 꽝 닫고는 우리를 지나쳐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쌩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버지니아.

 

카밀라가 뒤쫓아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왜?

 

버지니아는 차갑게 그녀를 돌아봤다.

 

-로저가 뭐라고 했든 잊어버려. 그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잘 알잖아.

 

-문제는.

 

버지니아는 숨을 고르듯 잠깐 말을 쉬었다.

 

-니가 아는 것을 나는 모른다는 것이지.

 

나는 두 여자를 보며 다시 한번 둘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닥터 반 헬싱. 당신도 당신 아버지처럼 죽지 않으려면 이 곳을 떠나는 게 좋을거에요.

 

-버지니아!

 

카밀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까지 침착하던 모습과는 정 반대여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없는 말을 했나?

 

버지니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동안 버지니아의 말이 뭘 뜻 하는지 생각하려 애썼다. 분명, 카밀라와 로저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숨기는 것이 있었다. 처음부터 뭔가 숨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나의 아버지에 대한 것이든, 나의 어머니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나에 대한 것이든. 나는 의혹에 찬 눈초리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살짝 시선을 피하더니 다시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당당함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로저가 나왔다.

 

-로저, 들어..

 

-오늘은 그만하지. 영 기분이 안 좋군. 도대체 저 애는 뭐가 저리 기분이 안 좋은건지. 아, 미안합니다,

닥터. 내일 다시 이야기하시죠. 잘 생각해보시구요.

 

로저는 나를 돌아보고 고개를 까딱하더니 버지니아가 간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텅빈 복도엔 나와 카밀라만 남았다. 한참을 로저의 뒷 모습을 보고 있던 카밀라는 나에게 살짝 웃어보였다.

 

-저 두 남매는 많이 닮았어요. 서로 그 사실을 모르지만요.

 

그녀의 말에 나도 살짝 웃어보였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했다.

 

-뭘 좀 먹고싶군요.

 

-아, 그렇군요.. 셰리에게 뭔가 먹을 걸 만들어 오라고 하겠어요. 방으로 가시겠어요?

 

-그러죠.

 

나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 다시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장미향으로 가득 찬 보랏빛 방문을 열었다. 포근했다.

 

-솔직히 난 혼란스러워요. 갑자기 나에게 닥쳐온 일들이 말입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내가 처음 뱀파이어가 되어 눈을 떴을 때 난 너무 두렵고 혼란스러워서 울고 말았죠. 당신은 잘 이겨내고 있어요.

 

카밀라가 보라색 비로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난 침대에 걸터앉아 빳빳하게 풀이 먹여진 시트를 만지작거렸다. 정서불안에 걸린 어린애처럼.

 

-당신은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반 헬싱처럼 자신의 운명을 택해야 해요. 참 우습지만, 당신의 힘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받아들여야지요.

 

-난 모르겠어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그때, 셰리가 들어왔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커다란 쟁반을 세 개나 들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도련님이 좋아하시는, 게살수프, 샐러드 그리고 스테이크입니다만.

 

그는 언제나처럼 메뉴를 말하더니 탁자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나는 셰리의 겸손함,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았다.

 

-그럼, 있다 치워 가겠습니다.

 

-셰리.

 

난 나가려는 셰리를 불렀다.

 

-난 당신 미워하지 않아요. 다만 일찍 이야기 해주지 않아 섭섭할 뿐이지.

 

-알고 있습니다.

 

셰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고 그런 내 모습을 카밀라는 알수 없는 표정을 하고 바라봤다. 첫 번째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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