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거리며 달아오르는 여인의 몸뚱아리에 니시마루의 흥분은 극에 달하였다. 터져나오는 그의 신음소리가 방안에 뜨거운 열기를 더한다.
"대왕~! 요우단님께서 아까부터 계속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대왕~!"
문밖에 선 시종의 계속되는 재촉에 니시마루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죽일 놈의 시종 녀석 같으니라구... 하루 왠종일 쫑알거리는군. 이봐라 저 녀석을 당장 잡아다 목을 베어라~!"
문이 열리자마자 니시마루의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시종이 부리나케 줄행랑을 놓았다.
니시마루가 옷을 걸치고 품을 가다듬는데 그의 동생 요우단이 들어선다. 침대위에 여인들이 속이 훤히 비치는 옷 아닌 옷들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방을 나가자 가득했던 방안의 열기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훤칠한 키에 기다란 수염을 멋지게 기른 요우단이 들어서자 니시마루가 주색에 절어 바짝 말라붙은 손가락으로 술을 병째 집어 들이킨다.
"무슨 일이냐? 사랑하는 나에 동생아~!"
"대왕! 전국 각지에서 적의 봉기 소식이 쉴새없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
"그럴리가 있겠느냐?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선전포고도 없이 대륙에 성지인 이 아스가르드 왕국에 싸움을 건단 말인가?"
"확인된 바는 없으나 전령들에 의하면 그들은 인간의 무리들이 아니라 하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들은 악마의 군대라고 ..."
"그만~! 그만~!"
요우단의 말을 가로막으며 니시마루가 얼굴을 찡그린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구나~! 악마의 군대라니... 아스가르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신의 왕국이다.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악마가 어디 있다는 게냐? 분명 변방에 야만의 무리들일 것이다."
"대왕 그들이 설령 악마의 군대가 아니라 변방의 야만인들이라고 해도 이는 심각하게 고려하셔야 될 상황인 듯 싶습니다. 각지에서 원병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됐다. 됐어. 그런 조무래기들조차 막아내지 못한다면 아스가르드의 병사들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내버려둬라! 그런 것들은 나가 죽어야 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술병을 움켜쥔 니시마루가 등을 돌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요우단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실망하여 문을 나섰다.
다문천왕이 망루 아래로 쓰러지고 광목과 증장의 거대한 몸집이 무너져 내리는 마지막 탑에서 추락했다.
지국천왕이 멀리서 이 광경을 목도하고는 혀를 찬다.
"멍청한 광목, 증장 같으니라구... 적당히들 좀 하지. 왜 이리 힘을 빼는 것이야~!"
다문천왕의 탑신 소환을 이용한 달라니안의 공방전은 일단락되었다.
혼돈계 제 5대장군이자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다문천왕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음에도 지국천왕은 태평스러울 따름이다.
"이런이런 이러고 있을 새가 있는가?
명성이 자자하던 요괴계 사대천왕의 이름은 그냥 허울뿐이었단 말인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에 지국천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들이 다스리는 나찰의 무리뿐인데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뒤를 돌아다보니 지평선 멀리 파르스름한 빛의 폭발이 연신 일어나는 가운데 수도승 하나가 길다란 고목 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도마 총사령관~!"
혼비백산한 지국천왕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대뜸 넙쭉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한다.
"제 5 대장군 다문천왕은 어디 있는가?"
진지로 돌아온 광목과 증장까지 넙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도마의 물음에 지국이 말한다.
"대장군께서는 이미 적의 수중으로 떨어졌사옵니다"
지국의 대답에 잠깐 이맛살을 찌푸린 채 말이 없던 도마가 그를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나의 힘을 빌리겠는가?"
지국이 퍼뜩 고개를 들어 도마를 쳐다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는다.
"아니옵니다. 도마. 이는 모두 저의 계략이옵니다. 달라니안은 오늘 밤 안으로 끝장 날 것이옵니다."
파크는 연병장에 도착했다. 커다랗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요괴의 시체를 직접 제 눈으로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던 것이다.
과연 살펴보니 역시나 듣던대로 요괴의 체구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
요괴는 짙은 눈썹에 커다란 눈을 부리부리하게 부릅 뜬 채 숨이 끊어졌는데 온통 울긋불긋한 문양의 옷과 모자가 특이해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가 들었던 장창의 손잡이 굵기만 해도 자신이 살던 바이자르의 궁전 기둥만하다.
호기심이 생긴 파크가 슬쩍 요괴의 얼굴 옆에 다가서보았더니 커다란 눈동자는 자신의 몸뚱아리만하다.
두꺼운 그의 입술이 금방이라도 입을 벌려 자신을 삼킬 것 같아 파크는 몸서리를 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성안 백성들과 파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문천왕의 몸에 기름이 부어지고 둘레에 장작더미가 산처럼 쌓였다.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떨어져 어둑어둑해지는데 성 밖으로 귀혼들이 빛의 유영을 시작한다.
시체의 소각을 맡은 병사 하나가 횃불을 떨어뜨리자 순식간에 부어놓은 기름의 흔적을 따라 다문천왕은 불길에 휩싸였다.
지국천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의 비파를 가슴에 안아 들었다.
광목천왕과 증장 천왕은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고 수만의 나찰의 무리를 움직일 태세를 갖추었다. 구릉의 높은 자리에 위치한 도마는 이들 사천왕의 군대를 굽이보고만 있을 뿐이다.
요괴의 시체는 저녁내 계속되는 불길 속에서 여전히 타지 않고 있었다. 부어놓은 기름 덕분에 불이 붙기는 하였으나 다문의 몸뿐만 아니라 입고 있는 옷과 투구조차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전혀 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름을 몇 동이나 들이붓고 장작더미를 몇 단이나 쌓았는지 소각을 맡은 병사들은 팔이 아파 죽을 지경이다.
둘러싼 백성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파크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망루위에 살라도르와 안드레아도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왠일인지 너무 조용하군요?"
살라도르가 불붙은 다문천왕을 내려다보다가 망루위의 침묵을 깨고 몸을 돌려 천사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검은 구름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폭우가 한바탕 쏟아지려는 듯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불어온다.
"적들이 몰려온다!"
비구름에 가려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세찬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높은 탑위에 올라가 있던 초계병 하나가 적의 출현을 알린다.
"모두 전투태세~!"
살라도르의 명령에 수신호가 떨어지고 각 사령들의 구호가 울려퍼지는데 안드레아를 포함한 천사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적의 규모는 오늘 낮과 비슷하구나~! 일단 막아내는데는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안드레아가 멀리 전진해오는 나찰들의 동태를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다.
분명 그들의 우두머리가 죽고 상당수의 나찰들의 피해가 있었으므로 전황은 조금씩 인간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안드레아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살갗이 아프도록 쏟아지는 이 굵은 빗줄기 때문일까?
몰려오던 나찰들이 성의 수십장 밖에서 멈춰서고 나찰들을 이끌던 마왕들 중 커다란 비파를 든 마왕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큰형님 어서 시작해주시지요."
지국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꾸에에엑~!"
불을 지피던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수십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들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듯 하다.
장작더미에 둘러쌓여있던 다문천왕이 벌떡 일어나 주위의 섰던 병사들 몇을 밟아 으깨어버렸다.
기름에 절여진 다문천왕의 몸은 세찬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다.
으깨어진 병사들의 시체에서 붉은 선혈이 고여나와 흙탕물에 섞여 번져나간다.
천막 밑에서 요괴의 화형식을 지켜보던 백성들도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파크도 덩달아 이들을 따라 뛰기 시작하는데 활활 불타오르는 다문천왕이 이들을 쫓아 성안 연병장을 헤집는다.
달라니안 성의 공중에 떠 있던 안드레아가 이를 먼저 발견하였다.
"이런... 저 녀석이 아직 살아있었다니..."
당황한 안드레아가 천사대를 이끌고 재빨리 연병장으로 하강했다.
"파크~! 파크~! 어서 이리로 오거라~!"
어느샌가 의국에 있던 야고보와 마태오도 달려나와 겁에 질린 파크와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있었다.
"야고보 아저씨~!"
파크가 야고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호기심 많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가까이서 이렇게 요괴를 대하고 보니 두려움이 먼저 앞섰던 것이다.
살라도르도 이 광경을 망루위에서 보고 당황했다. 무엇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무서운 생각이 어렴풋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야고보와 마태오가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파크와 함께 관망을 주시하는데 나머지 천사대가 다문천왕을 포위하였다.
그의 몸은 빗속에서도 계속 불타올라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캬캬캬~!!! 나를 잡아보겠다 이건가? 나보다는 먼저 이것들을 잡아야 할 걸~!"
다문천왕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왼손을 땅에 짚었다.
"아뿔사~!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안드레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문천왕의 왼손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성벽 주위의 망루 밑쪽에서 수 개의 탑들이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들 내가 일단 성안에 들어왔으니 성 주위로 둘러쳐진 결계에 상관없이 성 안으로 내 탑신들을 소환할 수 있다는 거지. 캬캬캬~!!!"
불 붙은 몸으로 다문천왕이 고개를 제끼고 천사들을 조롱하며 웃어젖히는데 그 모습이 꼭 영락없는 불의 악마이다.
그가 소환한 열개의 탑신이 땅을 솟아나와 사방의 망루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성문을 따라 위치한 마법사와 마법진들도 잇달아 무너져내린다.
그리하여 결계가 걷히자 하늘을 유영하던 수많은 귀혼의 무리들이 성안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지국천왕이 광목과 증장에게 명령하자 나찰들의 무리가 새까맣게 대지를 메우고 달리기 시작한다.
집채만한 몸집의 지국천왕도 '쿵~!쿵~!' 소리를 내며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었다.
그가 손에 든 비파를 연주하자 달리던 나찰들이 미친듯이 발광하며 그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무너지는 결계를 비집고 비파음이 성안으로 울려퍼지자 망루를 지키던 병사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성 아래로 뛰어내렸다. 추락하는 그들의 얼굴은 공포로 가득 일그러져 있었다.
성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네 놈들이 모든 계의 안녕을 책임지는 천사들이렸다. 어디 한번 악의 무리인 우리 사형제와 나찰들을 물리치고 이 성을 지켜 그 사실을 증명해보여봐라~!"
"도대체 왜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거냐?"
"흐흐흐. 만행이라고? 너희 천사들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신의 이름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혼돈계의 존재들을 베고 또 베어 그 시체가 수천개의 산을 이루는 너희들의 그 만행은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그랬다. 천사들의 제 일 임무는 혼돈계의 토벌. 마물들의 완전한 말살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위가르드가 천사군을 만든 후 천년간 살육한 마물들의 숫자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고귀하신 암흑대왕님을 받들고 신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드디어 봉기한 것이다. 만약 너희가 죄가 없다면 응당 너희들의 신이
구원해줄 터. 뭘 그리 걱정하느냐?"
다문천왕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달라니안의 마지막 보루인 성벽과 결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나찰과 귀혼들에 살라도르와 병사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무리다. 이 성은 이미 함락되었다. 우리들의 목적은 한시라도 빨리 천공으로 돌아가 위가르드님께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제 야고보의 상처도 거의 다 완쾌되었으니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포위망을 뚫어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안드레아의 명령에 천사대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었다. 야고보가 잡고 있던 손을 놓자 파크가 매달린다.
"야고보 아저씨~!"
파크는 천사대의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이라도 하는 듯이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야고보가 눈시울이 붉어진채 파크의 손을 놓고 본대에 합류한다.
"크크 비겁한 천사놈들~! 위험해지니 역시 지들 살 궁리만 하는구나~!"
다문천왕이 비웃으며 불붙은 창을 한번 휘두르자 병사들과 백성들이 한 뭉터기가 되어 터져나간다.
파크가 야고보를 쫓아 천막 밖으로 나왔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옷이 흠뻑 젖는다.
"이봐라~! 인간 꼬마야~! 보았다시피 천사들은 영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차라리 이 사천왕의 우두머리인 나를 믿어보는게 어떠냐?"
다문천왕이 파크에게 으르렁대며 왼손을 들어 움켜쥐려 하자 어느새 나타난 살라도르가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른다.
"네 이 놈~! 어디다 손을 대려 하느냐~!"
"크아왓~!"
뛰어난 검솜씨의 살라도르라 비록 인간의 공격이었지만 다문천왕은 베인 왼손이 따끔거렸다.
"또 네 녀석이로구나.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인데 그렇게 해주지~!"
"안돼~엣!"
다문천왕이 살라도르를 향해 장창을 휘두르는데 야고보와 마태오가 동시에 달려들며 비명을 질렀다.
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장을 지켜보던 도마가 발을 내딛으며 흡족해한다.
"힘만 쓸줄 아는 놈들이려니 했더니 머리도 좀 쓰는구만... 크크"
도마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쌓여 시체들의 밭을 이룬 달라니안 성안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갔다.
"형님! 이제 장난은 그만 하시고 모두 끝장을 내버리시지요."
비파를 손에 든 지국천왕이 다문천왕을 보며 싱글거리며 말한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다문천왕에 몸에 붙었던 불길도 이제 거의 사그라들었다.
지국의 곁에는 광목과 증장이 으르렁거리며 서있다.
거대한 이들 사천왕의 한 가운데 안드레아를 비롯한 베르베르의 십이천사대가 있었다.
마태오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데 파크는 야고보의 손을 꼬옥 잡고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매달린다. 살라도르가 자신을 대신해 창을 맞은 마태오를 살피고 있는 와중에 나머지 천사대들은 사천왕과 나찰들의 무리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네 이 마귀놈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두 숨을 끊어주겠다~!"
안드레아가 분에 겨워 다문을 노려보며 악을 썼다.
"모두 살수 십이법을 완벽하게 시전한다."
공간을 왜곡시켜 무엇이든지 파괴해버리는 신의 살수. 열두개의 동작으로 구성된 살수법이 십이지장의 명령에 따라 십이천사에게서 모두 협동 시전되면 그 화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비록 지금은 열두명의 천사도 모두 모이지 않았고 십이지장도 없지만 그래도 그 위력은 엄청날 것이다.
생사를 알수 없는 마태오를 제외하고 나머지 천사들이 살수 시전을 준비한다. 야고보가 파크의 손을 이끌어 살라도르에게 쥐어주었다. 전투가 격렬해지면 살수의 힘에 휘말려 인간인 그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야고보는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살수법을 시전하는 천사들과 나머지 사천왕과 나찰들의 전투는 호각세였다. 그들의 엄청난 기세에 살라도르와 파크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광목천왕의 철지주가 고철이 되어 떨어지고 이무기가 터져나갔다. 천사들도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고 기력이 떨어져갔다.
살수법은 엄청난 체력을 소모한다. 시간을 오래 끌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임이 틀림없다.
"전진~!"
안드레아의 명령에 따라 천사들이 진법을 유지한 채 지국천왕에게 달려들었다. 가진건 비파밖에 없는 지국은 당황했다. 그의 특기는 직접적인 공격기술보다는 비파를 이용한 마법을 통해 아군의 사기진작과 적군의 사기저하를 일으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증장이 앞뒤 생각않고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뭐하자는 모양새냐~!"
끝이 두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칼을 휘두르며 증장천왕이 달려들자 안드레아와 나머지 천사대가 결연한 표정으로 힘차게 검을 내질렀다.
순간 영문도 모른채 증장은 왼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난 상처를 만져보다가 그제서야 자신의 이마윗쪽 부분이 몽땅 날아간 것을 알아챘다.
'쿵~!' 소리를 내며 그가 쓰러지자 나머지 사천왕들이 오열한다.
증장천왕은 사천왕의 막내로 비록 멍청하긴 하였으나 그 성품이 어질어 다른 형제들의 귀여움을 받았으며 부하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런 귀여운 막내가 머리가 터져나간 채 눈앞에서 쓰러지니 나머지 사천왕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네~! 이 천사놈들~!"
사천왕이 대형을 잊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천사대에게는 전세를 역전시킬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대로 진법을 유지한 채 사천왕들의 머리위로 날아올라 막 내려치려는데 갑작스레 차가운 바람이 세찬 장대빗속을 뚫고 쏜살같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키아아아~!!!!"
도마의 고목나무 지팡이에서 뿜어낸 각기 다른 색깔의 여섯 마리의 용이 여섯 명의 천사를 입에 물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내려와 도마의 주위를 맴돈다.
창졸간에 일어난 엄청난 사태에 안드레아가 경악한다.
진법은 무너지고 각각 여섯 명의 천사를 입에 물어든 여섯 마리의 용이 주인을 호위하는 가운데 도마가 고개를 숙인 채 두건 아래로 길다랗게 턱을 움직여 미소를 짓더니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너희들은 제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