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뽀(농장)의 새벽은 싱그럽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갈대밭과 아직은 회색이 섞인 맑은 하늘, 갖가지의 풀내음이 뒤섞여 마음이 밝아진다.
창고의 정문을 활짝 열고 아기 고양이를 밖에 내줬다. 들고양이의 새끼일텐데....엄마가 와서 데려가줬음 좋겠지만, 암튼 그 고양이를 마당가에 내놨는데 좀체로 다른 데로 갈 생각을 안한다. 불쌍해서 우유를 따라줬더니 열심히 먹어댔다. 그렇게 이틀 있더니 새끼 고양이 종적이 묘연하다.
그 밤에 새끼 고양이를 찾아온 듯한 어미 고양이 소리가 창고 밖에서 밤새 울어댔다.
'아공..이 새끼 고양이가 어디를 갔담. 미안했다. 내 새끼는 찾았는데...네 새끼를 못찾았구나...'
담날 아침에 그 아기 고양이가 기진맥진해서 다시 돌아왔다. 불쌍해서 들여다놓고 우유를 줬더니 열심히 먹는다. 다시 저녁 나절에 그 엄마 고양이가 다시 와서 우니까 새끼 고양이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얼른 대답을 한다. 그래서 밖에 내다 줬더니 서로 얼굴을 비벼대고 몸을 왔다갔다 비벼대더니 갈대밭으로 사라졌다. 흐뭇했다. 지네 엄마 만나서 아가 고양이가 웃는듯했다.
이제 밖을 아니깐 아버님과 랑이 나간 뒤에는 마을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났다. 너무 심심했다. 간단한 먹을거리도 살겸 오늘은 문을 잠그지 말라고 한 뒤에 오전 나절 아들과 길을 나섰다. 갈대밭으로 난 지름길도 있지만(동네 사람들은 다 그 길로 걸어다니는듯싶다. 가끔 아이랑 놀다보면 웅성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곤했다), 그 길은 뱀이 무서워 못가겠고, 찻길 옆으로 난 큰 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근데 그 큰 길엔 가는동안 주위에 나무 한 그루 없다는거다. 그저 뙤약볕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나갔다.
섭씨 39도의 폭염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길은 아지랭이가 맹렬히 올라오고 있어서 어지럽기까지하다. 그래도 아이랑 손을 잡고 걸었다. 한 20분쯤 걸으니 온 몸이 땀이다. 가까이 있을 것 같았던 마을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어 보였고, 우린 그 뙤약볕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차로 갈 때는 가까워 보였는데 이게 만만치않은 거리인가부다.
두 살된 아이걸음은 지치니까 자꾸 안아달라 업어달라 보채지. 에궁. 다시 창고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들넘은 이제 안걸으려고 두 손을 뻗친다. 안아달라는거다. 안다가 업다가 창고에 도착하니 너무 힘들어서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둘은 목욕을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난리를 쳐댔다.
이 뙤약볕에서 밖에서 일하는 아버님과 랑이 위대해보였다.
여기 아르헨티나 벌은 아프리카 살인벌과 교미가 되어서 무지 사납다. 한국 벌은 노란데 보통 색이 노란 벌은 순하다. 근데 여기 벌은 꼬랑지가 새카맣다. 그건 아프리카 살인벌의 특성인데 번식력이 강한 반면 사납고 이동성이 있어서 한곳에 머무르지 못한다는거다. 그래서 양봉업자들에겐 별로 좋은 조건의 벌이 아니다.
한국벌은 노란게 순해서 만져도 안쏘던데....여기 벌은 100미터 밖에서 순찰벌이 돌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지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그야말로 벌떼처럼 몰려와서 쏘아댄다. 그래서 완전무장하지 않으면 큰일난다.
우주복처럼 온 몸을 감싸고 간다. 그 더운 날씨에 그렇게 감싸고 그 무거운 벌통을 올렸다 내렸다하며 꿀을 채취를 하는거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말이다.
아버님은 그 나이답게 구두쇠여서 되도록이면 일꾼을 덜 쓰려고 하고, 랑은 그 나이답게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으면 그 쪽을 택하니 둘은 맨날 티격태격이다. 중간에 껴서 난 아들과 땅바닥만 보고 있기 일쑤다.
암튼 그 여름을 그렇게 나면 랑은 보통 10키로 이상씩 살이 빠졌다.
또 꿀이 제대로 나려면 39도 이상이어야 잘 나온다나...그래서 후덥지근한 습도 높은 날은 꿀이 엄청 들어온단다. 그래서 덥다고 아버님은 좋아하셨다. 나도 돈이 된다니까 좋긴하다만 등에선 땀이 비오듯한다.
랑은 일하러 나가면 하루에 말통하나의 물을 마시고 온다. 석회질이 그렇게나 많은 물을 걸르지도 않고 마셔대서 걱정이었지만, 온통 주위 물이 그러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일대의 사람들은 이가 약했다. 나도 이 때 이가 많이 약해진 듯싶다. 랑은 나중에 담석이 생겨서 고생했다.
아버님은 늘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시는 분이다. 어떻게 하면 쉽게 요령있게 잘하나 그런 연구를 하시는데, 대부분 별로 효용이 없는 일도 많지만, 아주 유용한거도 잘 만드신다. 벌의 꽃가루를 채취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연구를 하시는걸 봤는데 아주 재미났다.
한국에서 30년 양봉업을 하셨지만,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환경이 완전히 달랐기에 새로 개쳑해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쓰는 양봉기구들이 여기에선 맞지 않기에 하나하나 다 손수 제작해서 써야했다.
아버님은 설명을 하신다. 벌이 꽃가루를 뭉쳐서 갖고 날라오다가 집에 들어가면서 그 꽃가루를 자연스레 널찌게 만드는거란다. 어떤 장애물을 만들어서 날개도 안다치고 다리도 안다치게 교묘하게 만들어야한다나...그리고 떨어진 꽃가루를 다시 못가져가게 통도 제대로 달아야하고, 그 꽃가루를 말벌이나, 그 외에 개미들도 못가져가게 해야한단다.
그러면서 양봉업자는 벌에게 있어선 도둑놈이란다. 꿀도 모아놓으면 훔쳐가고 꽃가루도 훔쳐가고....심지어 로얄제리도 훔쳐가고...
아버님은 벌이 너무 독하다고 순종을 가져와야한다고 이태리에서 아주 노란 여왕벌을 다섯마리 수입하셨다. 비행기타고 온 성냥곽 같은데 갇힌 여왕벌을 보여주셨는데, 참말로 우아하니 이쁘게도 생겼다. 머리도 노랗고, 온 몸이 노리끼리하니 이뻤다. 척 보기에도 순하게 생겼다.
난 알레르기 체질이다.
벌 한 방 다리에 쏘이면 다른 쪽 다리의 딱 두배로 부어오른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벌 있는데 안간다. 그래서 아버님과 랑은 창고까지 벌이 안쫓아오게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도 가끔 쫓아온 벌에 쏘이곤해서 팅팅 일주일씩 부어있기 일쑤였다.
난 뭐 물리는게 젤 싫은데, 툭하면 위장병 걸려 고생하니까 아버님이 체질 개선한다고 매일같이 내 위 부분에 벌침을 놔 주셨다. 벌 꼬랑지에서 핀셋으로 침을 빼서 아픈 부위에 살짝 한 번씩 침을 놓고 버린다. 그 침은 꿈틀꿈틀 움직였는데 하얀 독이 부글부글 나와있곤했다.
그 벌침 맞는 날이 여러 날이 되니깐 내 위장 부위는 까만 침 맞은 자국으로 뒤덮이는데 그 간지러움 때문에 잠을 못이룰 지경이었다. 그래서 도중에 그만 두었는데, 그 때문인지 암튼 일주일에 꼭 한번씩 체하거나 위장이 아파서 뒹굴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번 정도로 줄어든거 보면 그 효과가 있었지 않았나싶다. 아버님 말씀대로 꾹참고 한두달 더 맞았으면 완치됐을지도 모른다.
벌침은 여러가지로 쓰였는데, 어디 곪은 데는 특효였다. 특히 잇몸이 부어있을 때 침을 빼서 살짝 놨더니 귀신같이 가라앉았다.
그러다보니 약이 따로 필요없었다. 다치면 로얄제리 바르고, 트면 꿀바르고, 쑤시고 아프면 벌침을 맞았다. 꿀이 흔하니 난 꿀갖고 음식하는걸 개발했다. 설탕대신 모든 음식에 꿀을 넣었다. 잡채를 해도 꿀, 과일 화채도 무조건 꿀, 멸치볶음, 땅콩볶음에도 꿀......
그리고 꿀을 조려서 사탕도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꿀이 너무 좋아서 많이 먹게 되었다.
참깨를 볶아서 꿀에 조려서 참깨엿도 잘 만들어 먹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아플 때 토해야하는데 못 토하면 울엄마가 미지근한 물에 꿀물을 타와서 날 토하게 하곤 하셨다. 그래서 난 꿀물만 마시면 속이 미식거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꿀집으로 시집와서 실컷 꿀을 먹는 바람에 오히려 꿀이 없으면 큰일나는지 안다.
그러니 벌에 쏘여도 그저 약이 되려니 하는 집이다. ㅎㅎ
어느 날 아들넘은 지 아빠 작업복 만지다 쏘이고, 나도 쏘이고 그러다 둘이 온 몸에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둘은 병원에 가서 나란히 누워 알레르기를 잠재우는 주사를 맞고 누워있다 온 적도 많다. 양봉집 며느리에겐 최악의 조건인거다. 아버님과 랑은 예전부터 하도 벌을 쏘여서 그런가 모기 물린거보다 더 표시가 안난다.
비가 오는 날은 쉬는 날이다. (나중에는 밀납으로 만든 소초를 나무틀에 붙이기라도 하셨지만...)
아버님은 비가 오니 일이 없다고 짜증을 내시지만, 랑은 은근히 좋아하며 나와 아들넘을 데리고 마을로 산책을 나간다. 마을 중앙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올라가면, 비가 개인 오후라 다들 의자를 대문 옆에 내놓고 앉아서 인사를 건네온다. 시골의 인사 인심은 너무나도 후하다. 집집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오며 안부를 물어온다.
일일히 인사를 하다 난 앞을 보고 기절할 뻔 했다. 그 먼 길에 의자가 쪼로록 다 나와 있는게 아닌가. 아구..같은 인사를 그렇게 되풀이하며 빵집도 들리고 슈퍼도 들리며 우린 계속되는 인사에 웃으며 일일이 답해줬다. 인사에 서투른 나는 차라리 찻길로 가고싶다.
사람 잘 사귀는 랑은 벌써 친한 집이 여러집 되어서 그 집에 가면 마떼차를 나눠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맥주도 돌아가면서 마신다. 난 별로 그렇게 스페인어로 농담따먹기하며 대화나누는걸 별로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가 너무 지겹다. 그저 아들넘하고 이리저리 정원과 동네를 빙빙 돌며 걸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