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주홍글씨

골룸 |2004.11.01 02:04
조회 1,628 |추천 0

 

재즈와 클래식

 

영화 속에는 두 번의 인상적인 연주 장면이 나온다.
도입부에서는 가희(이은주)가 이끄는 재즈밴드가 The Corrs의 "Only when I sleep"을 멋지게 연주한다. 그런데 이 장면이 좀 석연치가 않다. 클럽에서의 연주라기엔 그 규모도 클 뿐더러 생경하기도 하다. 그것은 재즈밴드의 후위에서 연주하고 있는 현악단 때문이다. 현악단의 숫자도 적지 않은데, 그들이 켜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의 활은 마치 힘차게 젓는 노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선장은 가희가 될 것이고, 그녀를 호위하는 항해사들은 베이시스트, 섹소포니스트, 피아니스트, 그리고 드러머 등의 재즈밴드 일원들일 것이다. 그럼 이런 비유에서 현악단이 담당하는 것이라고는 수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 장면에서 현악단이 필요했을까?

 

영화 중반에서 수현(엄지원)은 예술의전당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첼로연주회를 갖는다. 지휘자로 등장한 변혁 감독이 약간 오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현의 연주하는 모습은 상당히 튄다. 외곬로 치닫는 그녀의 캐릭터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즈와 클래식의 대비에서 이런 결론을 내려도 좋을 것이다. 가희는 재즈밴드의 리더이면서 클래식 연주자들까지 거느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양쪽(또는 兩性) 모두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수현은 클래식에만 천착한다. 그녀는 한쪽만을 가진 외곬이라고 볼 수 있다. 내겐 이 대비된 두 장면이 이 영화의 전체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하나도 쉽지가 않아요

 

트라이 CF의 한 장면처럼 기훈(한석규)은 가희의 집 대문을 두들기다가 주저않으며 말한다. "하나도 쉽지가 않아요." 그는 자신이 모든 상황을 주도해 나간다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모든 상황은 그만 왕따처럼 쏙 빼놓은 채 진행된다. 영화 초반에서 그는 '모든 유혹은 재미있다'라고 혼잣말을 하지만, 사실 그의 유혹이 과연 먹힌적이 있었던가 의심스럽다. 하나도 쉽지가 않은게 당연하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서로 친하다는 것은 이젠 조금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그런 것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애증이다. 수현은 가희의 남자를 빼앗음으로써 그녀의 배신에 대해 응징했다. 이것은 명백한 파괴본능의 소산이다. 가희 역시 복수하지만, 이 복수는 수현의 복수와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수현의 복수는 파괴본능으로 인한 복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가희의 복수는 진정한 사랑도 찾고 파괴본능도 발휘하는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역시 가희는 여러모로 양가적이다.

 

사랑했으면 괜찮은건가요?

 

사진관 여주인 경희(성현아)는 기훈에게 묻는다. "사랑했으면, 사랑했으면 괜찮은건가요?" 기훈은 대답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 가운데 하나이고, 매우 이기적인 욕망이다. 사랑했다고 해서 괜찮을리 있겠는가. 다만 그로 말미암은 결과가 엄청날 뿐이다. 이를 감수할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비난할 권리도 없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