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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올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2004.11.03 18:32
조회 2,480 |추천 0

안녕하세요.
저희는 92년도 결혼한 12년차 부부입니다.
먼저 이 글은 전적으로 제 입장에서 본 저희 부부의 모습임을 감안하고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회 성가대에서 만나 1년간 연애 후 결혼했습니다.
아내가 저를 사랑한다고 믿었습니다. 저도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다음해 첫아이를 낳았고 둘째도 낳고 행복하게 몇년을 살았습니다.
당시는 저희 아버지가 하시던 작은 건설회사 일을 했습니다. 짠 아버지가 월급을 많이 주지는 않았지만 식구도 적고 어머니가 따로 챙겨주시는 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IMF 이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주식에 손을 대셨고 결국 사업은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형편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집안이 망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5천만원의 받아 당시 동서가 운영하던 가방 하청 공장에 동업의 형태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야를 동서 말만 믿고 시작한게 잘못이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납품하던 나산, 꺄슈 등이 부도를 내면서 정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사무실 보증금을 건졌습니다. 그 돈으로 문정동에 가방 매장을 냈습니다. 남은 물건 처분을 포함해 겸사 겸사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1년만에 권리금도 없이 나왔습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분당에 다시 가게를 냈습니다.이때 타던 갤로퍼를 팔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아내가 타던 티코가 있었습니다.
다행이 이번엔 저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자내고 생활비 충당은 할 만큼은 되었습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답니다. 비록 지방이긴 해도 장인이 잘나가는 총판 사장이었답니다. 그러나 이래저래 싹 망하시고 저희 결혼 얼마 전에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아내와 처형은 대학 공부를 위해 그전에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성악 전공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아내는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여유있게 삽니다. 더군다나 제가 모 구립합창단을 추천해 벌써 10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구 4,50대 여자들의 생활 짐작 가시지요. 그런 부류들과 함께 10년을 지냈으니 아내도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모 여성합창단에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운영하는 것이기에 못가게 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분당에 가게를 낼때 저희 어머니에게는 티코는 애들 태우기 불안하다고 당신이 타시던 소나타를 주셨습니다. 그거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내가 타고 다닙니다. 왠만한 거리면 타고 나갑니다. 제가 매장에서 앞치마 두르고 티코타고 시장 볼때도 아내는 소나타 타고 노래하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가끔 다투기는 했어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집에 안가고 매장에서 돗자리 깔고 잘만큼 큰 문제여도 아내는 결코 굽히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생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내 말이 한달에 백여만원 생활비로 살줄 알았냐는 것입니다. 제가 월급으로 100만원에서 120만원 줬습니다. 문정동에서 장사할때부터입니다. 하지만 그돈은 생활비였습니다. 이자나 공과금 등은 다 제가 냈으며 푼돈으로 들어간 돈도 적지 않았습니다.

분당 매장을 정리하고 인터넷 회사 창업했습니다. 1년반만에 접었습니다.
생활비..어떻게 제가 전혀 안줄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2001년부터 회사로 들어가 지금까지 월급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꼬박꼬박 120만원씩 생활비는 줘왔습니다.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지출은 역시 제 몫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학원비가 추가되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이 조금씩 늘어갔습니다.

어느날 아내가 카드빚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돌려막기를 했는데 한도가 줄어들면서 문제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친척에게 조금씩 빌린 돈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땐 그게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았습니다. 2200만원.. 제 카드 연체금 일부 정리하고 그날로 아내 카드빚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이에게 맛난 음식 한번 못사주고 2천만원을 날렸습니다.

그러고 다시 1년여가 지난 6월입니다.
아내가 언제부턴가 모 여성합창단의 회계를 맡았습니다. 년 집행예산이 2천만원 정도됩니다.
이 돈을 유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몇년을 회계를 했습니다. 그러다 후원회사가 계속 줄고 잔고가 드러나자 결국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7백만원입니다. 약속처럼 이곳 저곳 카드회사에서 연락이 옵니다. 빠짐없이 다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삼촌에게 2천만원을 빌렸답니다. 모두 4000만원이 넘었습니다. 말로는 사람을 잘못 만나 사기를 당했다고 합니다. 더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집 내놨습니다. 더 이상 방법은 그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매기가 없던 그 여름, 예상액 보다는 훨씬 적었지만 집을 팔았습니다.
대출금 먼저 갚고 9천여만원 남았습니다. 저 마이너스 대출 일부 8백만원 쓰고 아내빚 정리하고 나니 남은 돈은 4천만원이 안되었습니다.
이사할 곳은 수지로 결정했습니다. 4천만원으로는 20평대 아파트 전세금도 안되었습니다.

아내는 24평에서 살수 없다고 합니다. 보니 저도 못살겠더군요.
어차피 이자내는 셈치고 월세로 얻었습니다. 3천5백에 월 65만원입니다.

그래. 이사하면, 7월부터는 아내도 달라지겠지. 희망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일주일에 4번 나갑니다. 구립이 2번, 모 여성합창단이 2번 주중연습이 요일도 안겹치고 있습니다. 연주회라도 있으면 거의 매일입니다. 우리 아이들 엄마 없는 빈집 따고 들어오는 것 하나도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익숙합니다. 작은 아이는..이제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서울에 살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3학년때 같습니다. 그날도 혼자 문을 따고 들어오는데 어떤 남자가 뒤에서 함께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학교에서부터 따라오길래 나름대로 위층으로도 올라가는척도 하고 했답니다.
집으로 들어온 남자는 이곳저곳을 뒤져 마침 있던 70만원-왜 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요-을 찾아 넣고 울고 있는 아이의 옷을 벗겼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아이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얼마나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다행히도 다행히도 남자는 그냥 달아났다고 합니다. 오 주여...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아이는 이 기억을 언제 잊을까요. 언제 다시 기억해낼까요..)

이 일이 있은후 뭐가 달라졌을까요. 현관 자물쇠가 번호키로 변했습니다. 한달쯤 아내가 외출을 자제했습니다.
한달후 아이는 다시 혼자 이제는 열쇠대신 번호를 누르고 빈집에 들어왔습니다. 한달 정도 뿐이었습니다. 저는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사했습니다.
환경은 훨씬 좋아졌습니다. 비록 훨세지만 넓은 아파트에 학교도 바로 옆에 있습니다.

또 한달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생활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 월급은 수령액 기준으로 230만원 정도됩니다. 연봉제이니 보너스 같은 것은 없습니다. 200만원을 줄테니 월세내고 알아서 살라고 했습니다. 8월 10일쯤 되서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썻다고 적어주는 것보면 딴데 쓴건 없습니다. 목욕비 3만원 뭐 이런것은 있습니다.
아내 기준에서 쓸것은 써야합니다. 제 상식은 정해진 예산 아래서 써야하는데 아내를 이해시킬수 없었습니다. 당신에겐 300만원을 줘도 부족할것이라하니 한번 줘 보랍니다. 그렇게 합의가 없은 싸움이 계속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아버지가 기흥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어머니와 두분이 사십니다.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 골프입니다. SBS골프 같은 동호회에서 어떻게 팀 짜서 1주일에 1번 정도 돈 걱정 안하고 다니시는게 소원이랍니다.

어느날 자식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애는 잘 못사니까 하루5천원 점심값, 작은애는 잘사니까 기름값,.. 제가 큰앱니다. 그게 올 봄이야기입니다.

아내는 한번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통장 번호도 모릅니다. 이사 전이야 이해가 됩니다만 아내 빚 정리할때 몇천만원 만지면서 단돈 10만원 보내지 않았습니다.
늘 아내는 돈이 없는데 어쩌냐는 말 뿐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어도 더큰 문제가 될까 아내에게 미룬게 잘못되었을까요..

어느날은 십일조를 하자고 제가 그랬습니다. 어차피 부족하게 사는것 하나님 것에 손은 대지 말자라고 했습니다. 8월 월급날이군요. 20만원 빼고 180만원을 주면서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난리 났습니다. 저도 이젠 질리더군요.

그러고 서로 말안하고 지낸게 오늘까지입니다.

아내는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갑니다. 교회 안가겠다는 표시지요. 아이들은 왜 못가게 하는지.. 게다가 친정에서는 몇달을 그렇게 받아주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정말 알수 없는 집안입니다.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생활력이라고는 눈꼽만큼의 능려도 없는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살 방법이 없더군요. 친정이라고는 그들 살기도 빡빡합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저를 두고 하는지 모든 말씀이 용서에 대한 내용, 땅에서 풀라는 내용, 넒은 마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기로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누구를 정죄할 수 있는가. 다 받아주리라.

주변의 도움으로 몇번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심방 핑계도 대보고 공연 티켓도 준비해보고 아이들을 동원해보기도 했습니다. 별 소득 없습니다. 마치 제가 무슨 엄청난 잘못으로 인해 비롯된 일인것 같습니다. 저도 어쩔땐 내가 바람이라도 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5시20분이면 일어나서 강남으로 출근합니다. 조금만 늦어도 1시간이 넘게 막히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퇴근은 1시간 넘게 버스르 탑니다. 강남살땐 20분~30분 거리였습니다.
아침 먹은 기억은 12년 동안 셀수 있을 만큼입니다. 자는 모습 보며 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10월9일이 제 마흔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케익은 커녕 미역국도 못먹었습니다. 토요일이고 해서 혹시나 기다렸지만 6시 되어서 들어와서는 밥도 안합니다. 찬양 연습하고 돌아오니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입니다.

두서없이 길게 써내려왔지만 어디 이야기가 이뿐이겠습니까.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디로 가야할까요. 생각을 안하려고 합니다만 혼자 라면을 끓일 때면 자꾸 생각이 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걱정되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이젠 아빠를 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에만 잠깐 보는 아빠가 무슨 아빠겠습니까.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잡니다)
차라리 잠깐이라도 집을 나올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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