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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48. 까삐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무늬만여우... |2004.11.06 09:59
조회 2,706 |추천 0

너무나 무더웠던 여름은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여름 한 계절 바짝 대들어 일해야하는 양봉일도 서서히 줄어간다는 것이다.

양봉은 여름 한 계절에 수확해서 일년을 먹고 살아야하는 농사다. 한 계절 날씨가 좋으면 일년동안 배 두드리며 풍족하게 살고 날씨가 심란하면 일년동안 사는게 심란해진다는거다.

대부분 한국의 농사는 차근차근 개미처럼 일해서 돈벌어 개미 금탑 쌓듯 쌓아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아르헨티나의 농사는 거의 투기에 가까웠다. 물론 열심히 차근차근 일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일년농사 어떤 작물 심어 잘되면 떼돈을 벌었다.
물론 그 규모가 엄청 커서 그럴꺼다.
그나마 양봉은 아주 아주 소규모 농사에 해당되니 그런 투기랑은 거리가 멀었지만, 하늘만 바라보며 하는 농사란 점에선 같았다.

아버님과 랑은 이동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양봉을 시작한 산타페주가 여름이 끝나가는 반면 더 윗쪽으로 올라가면 아직 날씨가 뜨거운 여름이기 때문이다. 산타페주의 꿀채취가 끝나면 1200키로 위쪽에 있는 '뚜꾸만'주에서 나랑하(오렌지)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럼 그 꽃에서 나오는 꿀을 바라고 그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랑하 꿀은 노란색에 가깝고 꽃향이 짙고 참 맛있다. 그래서 대부분 그 꿀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팔거나 양봉업자들이 주로 먹었다. 싼 값으로 팔기엔 양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고, 맛이 참 좋았다.

뚜꾸만으로 이동하기 전에 까삐딸(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이동 준비를 해야했다. 아들넘과 난 집에 남아 있기로 하고 아버님과 다른 양봉하시는 두 집이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뚜꾸만 주에서 한 달반 동안 꿀 체취를 해야하니 이동을 하려면 거기에서 먹을 김치와 그 외에 한국 음식을 종종 해먹을 준비를 해야했다. 그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갈 준비를 했다.

창고에 중요 물품은 썩거나 쥐가 들거나 하지 않도록 잘 갈무리를 해야했다.

우리 식구가 된 거북이를 종이 상자에 잘 넣어서 트럭에 싣고 고양이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 고양이도 데리고 가면 좋은데 방금 놀던 그 고양이는 흔적도 안보였다.

도시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한국말로 수다 떨 친구도 있고, 사람 북적이는 백화점도 가 볼 수 있고, 영화관도 가야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도 사먹어야지. (지금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그 때 난 햄버거 광이었다.)

아버님과 랑은 끊임없이 말다툼을 하며 번갈아 운전하며 길을 떠났다.
물론 일에대한 의견차이였다.
종종 아버님은 내 의견을 물어오셨다. 그건 바로 편을 들어달라는 신호다. 그래서 아버님 편을 들고 랑보고 아버님 말이 맞다고 하면 아버님은

"거봐라 에미도 그렇다잖냐"

하시며 랑보고 꾸짖으셨다. 랑은 단단히 삐져서 말도 안했다. 으~ 삐질이. 아니 그럼 내가 아버님 편들지 아버님 앞에서 자기편드나? 젠장.

산타페로 갈 때의 풍경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갈 때의 풍경은 다르다. 여름이 시작되는 풍경과 끝나는 풍경이 달라서 일꺼다.

돌아갈 때의 풍경은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라 갈대가 하얀 꽃이 피어서 갈대뭉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개미때문에 혼났던 밭들은 수확이 끝나면 밭에 불을 질러서 여기저기 불이 붙어 타는 밭들이 많았다.

타들어간 들판에는 걔중에 작은 회오리들도 일어나서 두 서너개씩 돌아다녔는데 비록 작게 일어나서 아무 것도 그 것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무서웠다.

우리가 탄 트럭은 소리도 컸고 느렸다. 가는 중에 바퀴 하나가 먼저 굴러가는게 보였다. 내가 그걸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급하게 말했다.

"앗, 오빠 바퀴 봐" (난 랑한테 오빠라고 부른다)

바퀴하나가 우리 차를 앞질러 고속도로를 굴러갔다.

"헉, 저거 우리 바퀸데"

"헉"

랑은 차를 조심스럽게 한 옆으로 세웠다.
바퀴는 지혼자 굴러굴러 백여미터를 갔다. 랑은 열심히 뛰어가서 바퀴를 줏어왔다.
뭐 이런 경우가 다있담.

차를 하도 험하게 썼더니 차축이 어케 잘못됐나?

아버님과 랑은 또 그 바퀴 문제로 한바탕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 트럭은 원래 휘발유 트럭인데 기름값이 아깝다고 아버님이 디젤 엔진으로 갈고 그러면서 차를 개조하셨다.
랑은 그냥 그 차를 그냥 쓰던가 아니면 팔고 아예 디젤 엔진 트럭을 새로 사지 그걸 돈 많이 들여서 개조해서 차가 이모양이 되었다고 했고,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이게 싸게 먹히니깐 이게 맞다고 하셨다. 랑은 차는 차대로 망가지고 고치느라 돈은 돈대로 들며 사람은 사람대로 고생한다며 난리를 부렸다.
난 뭐 중간서 아무 것도 모르니 애꿎은 땅만 발로 긁어댔다.

랑은 길가는 아무 차나 잡고 가까운 동네에 가서 기술자 하나를 데려와 차를 끌고 가게했다.
우리도 그 동네에 가서 뭐좀 먹으려고 갔다.
아버님은 그냥 주유소 한쪽 켠에서 밥을 해먹자고 하셨다. 그래서 랑이 차 고치러 간 사이 길에서 김치찌개를 끓여서 상자 깔고 보재기 깔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랑하고 아버님은 또 여기서 말다툼을 한다. 이 복잡한 가운데 그냥 간단하게 사먹지 해먹자고 하냐며 랑은 투덜댄다.
아, 내 귀가 아프다 이젠.
저녁은 그래서 사먹기로 했다.

차를 대충 고쳐서 아까보다 더 천천히 차를 몰아 다시 길을 떠났다. 시골이니 그래도 수도에 가서 차를 고쳐야 제대로 고친다며 대충 고쳐서 언제 다시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저녁은 중간에서 닭 바베큐를 먹었는데, 난 닭 가슴살 팍팍해서 너무 싫어한다. 목이 멕힌다. 근데 우리 아버님도 같은 이유로 닭 가슴살 싫어하셨다. 아버님 다리 드리고 아들넘 다리 주니 랑하고 난 가슴살 먹어야한다. 으~ 목구멍으로 안넘어간다. 랑은 가슴 살이고 다리 살이고 아무거나 잘먹는다.
어떨 때는 그 식성이 참 부럽다.

새벽에 떠났는데 너무 천천히 오는 바람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새벽에 도착했다.

개똥많은 가오나 공원을 지나 우리 집이 보였다. 반가웠다.

집 앞의 떡갈나무들도 그대로 있었고, 양철지붕 고양이 할머니네도 그대로 있어 고양이가 버글거리며 담벼락에서 우릴 쳐다봤다.

아 신난다.
내 침대에서 이젠 잘 수 있다.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욕조에 따신물 받아놓고 아가랑 들어가서 놀 생각을 하니 즐거워졌다.

우리 집 차고 문 여는 소리도 경쾌하게 들렸다.
옆 집 고양이들을 보며 싱긋 웃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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