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54. 팔라시오스 맏형 결혼

무늬만여우... |2004.11.17 03:20
조회 2,492 |추천 0

같이 양봉팀으로 이민 와서 팔라시오스에 자리잡은 집 큰 아들이 선을 봤다.

랑이 호박 부친개 해 놓으면 옆에서 쏙쏙 집어먹었다는 그 형이다. ㅋㅋ

이 집은 아들이 셋인데 부모님들도 모두 점잖으시고 아들 셋 다 인간성도 좋고 참 좋은 사람들이다. 큰 아들은 아주버님과 동갑이라 아주버님 친구가 되고, 둘째 아들은 랑하고 동갑이라 랑과 친구, 막내 아들은 우리 아가씨와 동갑이라 친구다.

연령대가 기가막히게 맞아들어간거다.

겨울에는 양봉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없으니 결혼 할 기회가 되면 얼른 하는게 상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형은 열심히 선을 보러 다녔다. 괜찮다 싶은 여자는 나보고 판단해 달라며 우리 집에 데리고 오기 일쑤였다.

우리집은 큰 아들이나 작은 아들이나 일찍 결혼들을 해서 손주들이 있었지만, 그 집은 아직 하나도 장가를 못보내서 좀 서두르고 있었다.

그 형은 몇 번 만나다 성격좋고 괜찮은 여자다 싶어 우리 집에 데리고 온댄다.
후훗. 아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오려나?

긴 생머리에 키는 나처럼 작고 눈이 동그랗게 생긴 작은 인형같은 여자를 데리고 왔다.
잉.
그래도 저 집 큰며느리감인데 모양새는 막내 며느리 감일세.
올망졸망 이쁘게 생겼다.

나이도 어려서 차이가 많이 났다.
이야기를 해보니 완전 신세대.
우와. 전혀 맞는게 없지 않은가.
팔라시오스 양봉집은 그야말로 온 식구가 유교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약간 고리타분한 냄새도 나는 집안인데 저 여자 저 집 가면 물과 기름이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우리 집에 데리고 온 손님이니 최선을 다해서 잘했다.

여자가 썩 괜찮았지만, 그 먼 시골 농장에 쫓아가서 양봉일도 도와야하고 그러는데 버틸까 싶었다.
하긴 뭐 나도 버티는데...

그들은 밥을 먹고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일주일 후 그 형은 그 아가씨가 너무 어리고 이상이 안맞는다고 다른 선을 봤다.
뭐야. 우찌된겨.
그 아가씨가 안맞는겨 형이 안맞는겨.

암튼 이번에 새로 선을 본 아가씨는 너무 맘에 들어서 우리집에 선보일 시간도 없단다.
오호~
자기 이상형이랜다.

그러더니 아무래도 결혼을 해야할 것 같다나....

우린 저녁에 그 집에 놀러갔다.

임신부 때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으면 밥맛이 꿀맛이다. 한국 토속적인 맛을 내는 그 집 어머니 음식 솜씨에 내 배는 더 불러보였다.
아가씨에 대해 무지 궁금해서 갔는데, 역시 사람은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는걸 발견했다.
내가 보기엔 먼젓번 그 아가씨가 인물이고 성격이고 훨씬 난거같은데, 이번 아가씨에게 홀딱 반했으니 말이다.

거실에서 수다떠는 동안 우리 아들넘은 안방서 자다가 그 집 안방 요에 털버턱 오줌을 싸버렸다.
아공 미안해라.

이번 아가씨는 나이도 많고, 눈은 황소눈처럼 큰데다 경상도 사투리가 어찌나 쎈지 누가보면 경상도 아지매같다. 아가씨가 아닌 약간 천연덕스러워 보이기까지한 아줌마스런 시원스런 아가씨였다. 그 형 취향이 이랬나부다.

둘은 서로에게 완전 콩깍지가 씌어져 서로 멋있고 이쁘다고 칭찬했다.
으~ 닭살.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노총각 노처녀의 결혼식이라 그 주위 친구들이나 하객이 신랑신부보다 나이가 다들 어렸다.

나도 오랜만에 신혼 여행 때 제주도 가며 입었던 정장을 꺼내입었다.

우리 결혼 할 때는 정장 메이커가 그리 많지 않았다. 두 세개 정도였다. 조이너스 아님 논노였다.

그래서 대부분 신부들이 정장을 빼입고 한자리에 모이면 같은 옷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 정장을 입고 제주도 신혼 여행을 갔더니. 흐미. 나랑 같은 옷을 입은 신부들이 곳곳에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눈여겨 봤더니 거의 논노 아님 조이너스 정장을 입은 신부들이 제주도에 쫘악 깔린거라.

웃긴건 내 정장에 달린 액세서리를 봤더니 다들 달랑거리는게 달렸는데 나만 달랑거리는게 없는게 아닌가. 난 그걸 보고 내 옷에 딸려온 액세서리가 불량품인지 알았다는거다. 그래서 나중에 신혼 여행 다녀와서 그 액세서리를 고쳐서 사용을 했다.

외국에 사는 것 중에서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옷의 유행이 별로 없다는거다. 내가 무슨 옷을 입건 아무도 흉을 보지도 않을뿐더러 촌스럽다고 할 사람이 없다. 그저 나름의 개성으로 입는거니까.
그래서 난 그 몇 년 흐른 유행의 정장을 자신입게 입고 나갔다. 물론 이 정장은 그 뒤로 몇 년을 더 폼내며 입었다.

알렉한드로와 로미나네 결혼식처럼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각자 갖고 있는 승용차를 세차를 깨끗하니 하고 클랙션도 손보고 차가 없는 사람은 주위에서 좋은 차를 빌려 오기도 했다. 신랑 신부를 태울 차는 풍선을 달고 색테이프랑 작은 깡통을 매달아서 차가 지날 때 땅그랑 땅땅 소리가 나게끔 했다.

모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밤의 정적을 깨며 클랙션을 빵빵 울리며 일렬로 행진했다.

차 트렁크에 실려서 고생하며 온 신랑 신부는 밤의 운치있는 팔레르모 공원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우리가 기다리던 장소로 왔다.

짖궂은 동생 친구들이 신랑에게 루즈로 장난을 하다 무서운 신부에게 걸려서 된통 혼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신부들이 수줍고 부끄러워하는데 이 신부는 너무나도 씩씩해서 함부로 장난을 치지 못하고 짖궂은 그 동생 하객들이 주눅들어 말을 너무나도 잘들었다.

결혼식을 올린 뒤에 언제나 약속한 듯이 가는 팔레르모 공원의 카페에 갔다. 아름드리 큰 나무들 사이에 안이 훤하게 다 보이는 유리로 집 전체가 되어있는 그 카페는 부드러운 조명으로 더 근사해보였다.
집채보다 더 큰 알로에더미를 지나 차를 주차했다. 풋풋한 알로에 냄새가 밤공기에 섞여 축제 분위기에 있는 우릴 진정시켰다.
모두 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케잌도 시켜먹고 칵테일도 마셨다.

서로 오랜만에 다들 모여 수다를 떨어대니 신이 났다. 게다가 여기서 먹고 마시는건 다 공짜가 아닌가. 신랑신부가 내는거지.
짖궂은 동생들은 장난을 못한 대신 비싼거 시켜 먹는다고 한 사람씩 두 세개씩 시키기도 해서 다들 몰려가서 뺏어 먹곤했다.

비디오 촬영 기사가 비디오 카메라를 내 얼굴에 갖다 대었다. 장난기가 발동이 되어 눈썹을 계속 깜박거리며 이쁜척 했더니 다들 비디오 카메라를 부셔버린다고 난리들을 쳐댔다.

역시 신랑 신부는 그 날이 최고의 날임에 틀림없다.
행복한 미소로 이루어진 얼굴은 둘다 너무 이뻐보이게 해서 영화배우들 같았다.

이 때쯤의 아르헨티나는 케나다 바람이 불어 거의 30프로가 넘는 인원이 케나다로 재이민을 떠나갔다. 랑 주위의 친했던 친구들도 미국이나 케나다로 떠나고 정육점 하던 성규씨는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아르헨티나에 들어가려면 입국 비자가 필요한데 그 당시엔 입국 비자 받기가 좀 까다로웠고, 이민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영주권을 빨리 발급받으려면 영주권자인 배우자의 초청장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초청장을 빨리 만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좀 행동이 굼뜨거나 정보가 늦은 사람들은 남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랑은 아주 빨리 초청장을 만든 케이스에 해당했는데 6개월만에 만들어서 나를 데릴러 한국에 왔었다.

이민을 나오면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민 간 사람들을 아예 못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을 하고 초청장을 갖고 가려던 사람들 몇이 헤어지는걸 보게 되었다. 그 집은 좀 초청장 만드는 기간이 좀 길어진 케이스였다. 2년이 다 되어 갔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이혼하러 온 그 아내는 참 발랄하고 이뻤다. 그 이혼할 부부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이혼 절차를 밟으며 우리와 같이 볼링도 치러가고 커피도 마시러 가곤했는데 역시 헤어지는 커플들하고 있으면 우리도 맘이 불편하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 또 다른 커플은 그렇게 결혼하여 고생문이 훤하게 보이는 양봉 집 큰며느리로 살고 그런가부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