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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부 1막 : 묘령(昴靈)의 추억 #20)

J.B.G |2004.11.19 00:36
조회 209 |추천 0

 

무위은 목진국(木眞國)의 변방인 작은 연성의 성주였다. 그리고 그러한 연성은 지금 풍전등화에 놓인 신세였다. 목진국(木眞國)은 무국(武國)과의 전투로 연성에 원군을 파견할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목진국의 주요 전략군은 수도방어를 위해 절포진(折怖津)과 장성(將城)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를 방위하면서 연성을 넘어오는 적을 평지에서 에워싸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강으로는 군의 수급과 보급이 원할 치 않은 연국(燃國)의 사정을 감안한 전력인 것이었다.

 

중림에서 정신을 잃고 한 동안 혼절해 있던 운향은 정신을 잃은지 며칠 만에 귀를 찢는 듯한 함성에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이… 이건… ”

 

운향은 상처도 없는데 머리가 찢는 듯이 아파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를 찢으며 들려오는 비명에 이끌려 통증도 잊은 채 무엇엔가 이끌려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전… 쟁…”

 

어느새 성벽의 다가선 운향은 온통 전투에 몰두해 있는 병사들을 목격했다.

 

“…”

 

성 밖에서는 연국의 병사들이 노도같이 성벽을 기어 오르고 있었으며, 성 내에서는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나와서 연국의 대군에 항전하고 있었다.

 

“막아라!”

“성을 지켜라!”

 

무위는 성의 망루에서 백성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그의 명에 따르고 있었다. 분명히 훈련을 받은 병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두려움 없이 분업화 된 자신의 병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로 등을 지고 적에게 둘러싸인 두 병사가 자신의 등뒤를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앞의 적을 대적하는 형상과 같은 것이어서, 백성이 서로를 신뢰하고 또 장수와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전략 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많은 전쟁을 경험해 온 그녀로서도 사실 놀라운 광경 이었다.

 

“도대체… 이 성은…”

 

포탄이 날아와 성 내에서 성벽의 병사에게 화살을 공급하는 자들을 덮치자 한 무리의 여인들이 그자를 운반해 의원에게 보였고,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다른 자가 그 화살을 집어 날랐다. 어린이들은 2 조로 나누어서 한 명은 방패를 집고 한 명은 성 내로 날아든 적국의 화살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과 여인들은 지렛대를 이용해 성에 날아든 포탄을 다시 포대로 운반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놀라움 속에서 깊숙이 숨어 있는 감각으로 이 전투상황의 모든 전재를 인지해 가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런, 전투가 가능하단 말인가?”

 

성벽 위에서는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궁수는 2개조로 나누어서 한 조는 쏘고 한 조는 장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감히 봉의 정예 군에 있을 때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정예 중의 정예 같았다. 성벽에 기어오르는 병사는 선두에 선 병사가 긴 장대로 막고 그래도 진입한 병사는 후위의 병사 2명이 한 조로 방패와 창으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선두에 있는 병사는 한쪽 벽이 무력화 되어 적이 옆에서 자신들을 노려도 흔들리지 않고 눈 앞의 자신의 성벽을 지키고 있었으며, 이러한 모든 상황은 각 구역별로 장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있었다. 또한 각 성의 요소에서 무너지려는 성벽을 이미 준비 된 임의로 만든 나무장벽으로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건… 어찌 모든 백성이 정예 병을 능가할 수 있단 말인가… 연성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성문을 열기 위한 연의 공략도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거대한 전차를 이용한 성벽에 대한 공격으로 성문은 이미 반파가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연군은 성 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성의 성주는 성벽 주위에 성벽을 길게 터널처럼 증축해서는 성 입구와 성 내의 문의 터널 길이를 무려 20미터나 늘여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궁수들을 대기시켜 연신 화살을 쏟아 붙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감히 그곳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연군은 성벽을 허물어 틀이고도 문의 터널에 가득한 시체더미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철저한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연성주는 전세가 역전 되어도 진격을 포기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전세의 역전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목진의 왕이 어질다고 들었는데… 백성들이 이리도 그를 따른단 말인가?”

 

운향은 자신이 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일사 분란하게 조를 나누어서 돌과 화살을 모으고, 나르고 던졌으며, 물을 끓이고 운반하고, 성벽을 오른 적병에게 쏟아 붙고 있었다. 특히, 전쟁 중에 후방에서 벌어지는 백성들이 보여주는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싸울 줄은 모르지만 적이 쏘아 올린 무기를 다시 모아서 운반하고 다시 되 사용한 방법으로 부족한 병장기를 보충하므로 해서 군사력을 배가시키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연군의 포탄과 화살이 비 오듯 날아들었지만 아무도 성벽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군 무위가 있었다.

 

“무위… 이건… 실로 감동적이야…”

 

그 속에서 운향은 무엇인가 잠재되어 있는 두려운 감각이 되살아 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도 모르게 피가 끓는 전장에서 희열의 감동이 솟아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운향의 눈 앞에 목이 잘려진 한 아이의 머리가 굴어왔다.

 

“헉!”

 

자신의 발 앞에 널브러진 머리가 잘린 아이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 지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혼란 중에 그 아이의 머리를 멀리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저 멀리 굴러가는 아이의 머리를 향해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비… 비야…”

 

그녀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병사들에게 채이면서도 아이의 머리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밟히고 찢기면서도 전장의 피로 물든 진흙 속에서  알 수 없는 한 아이의 머리를 끌어안고는 한없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비야… 내 아기…”

 

그녀의 통곡은 그날의 숨막히는 전투가 끝날 때 까지 그칠 줄 몰랐다.

 

“비야…”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무너진 건물 지하의 습한 그늘에서 운향은 불규칙적으로 몸을 떨며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엄마… 아빠…”

 

그녀는 중얼거리고 있다.

 

“운명… 싫어…”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숨을 가쁘게 몰아 쉬기 시작했다.

 

“싫어… 저리가!”

 

무엇인가에게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굴러 아래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바닥에 고인 차디찬 흙탕물에 그만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순간 한기가 올라와 그녀의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이건…”

 

정신을 차린 운향은 그만 자신이 어린아이의 머리를 끌어 안고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녀는 깊게 침묵했다. 그렇게 한없이 침묵하던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겉옷을 벗어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올려놓고는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에서 피가 터져 나와도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 한 채… 계속 땅을 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땅을 판 연후에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자신의 옷으로 감싸 안고는 다시 한번 회한에 잠기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시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고 있었다.

 

“안녕!”

 

이 한마디와 함께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그곳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곧 그 자리를 떠났다. 지하의 무너진 건물에서 빠져 나온 그녀는 깊은 밤에 성내를 헤매고 있었다.

 

“몽롱해 아직도…”

 

그렇게 방황하던 그녀는 문득 먼 발치에서 무위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를 확인한 그녀는 곧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진의 한 막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병사가 제지하는 바람에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접근할 수 없었고, 무위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막사로 사라졌다. 그러자 운향은 무위를 만나기 위해 병사에게 무엇인가를 한참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편, 막사 안에서는 한 정보원이 무위를 비롯한 부장들에게 타국의 정보를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장수들은 모두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게 사실인가?”

“네! 틀림 없습니다. 용은 지금 군부를 비롯한 나라 전체가 큰 슬픔에 잠겨있다고 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대장군 적청의 자결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호재가 되겠지만… 한번 쯤 만나보고 싶은 자였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의 아내가 대장군 적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여 아들까지 죽이고 스스로 자결하자. 오랫동안 죄책감에 고통 받다가 그만 스스로 자결했다 합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군. 인간의 운명이란…”

“도대체 어떤 약속이었기에…”

 

그때 막사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여인의 끓어오르는 신음과 막사를 지키는 병사들의 목소리였다.

 

“응?”

“밖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그때 한 병사가 막사로 들어왔다.

 

“장군님!”

“무슨 일이냐?”

“장군님의 찾던 여인이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습니다.”

“뭐?”

 

무위를 비롯한 장수들이 막사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는 한 여인이 실신하여 쓰러져 있었다.

 

“아니? 부인!”

“아시는 여인 입니까?”

“네… 조금…”

 

실신한 운향은 곧 무위의 자택으로 옮겨졌고, 다시 며칠 동안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실신 중에도 이를 갈며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용서 못해… 절대로…”

 

한편, 성주 무위는 부장들과 군막에서 밤이 맞도록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다.

 

“저들의 목적은 이 성을 얻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황도의 관문인 이곳을 얻으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너무 지체했으니…”

“적은 아마 군세가 우세한 병력으로 이 성을 얻으면 여기에 장벽을 치고, 수도로 진군하지 않고 중림으로 통하는 육로를 확보하려 할 겁니다.”

“…”

“연의 병사들을 모두 보았겠지만, 틀림없는 정예군 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틀림이 없이 정예중의 정예였습니다.”

“잘 훈련 된 정예 군으로 주력 군의 원조를 받을 수 없는 우리를 전광석화 같이 무력화 시키려 했던 것이 연의 처음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허나 아직까지 우리가 예상을 뛰어 넘어 오래 항전하자 적은 이미 군사를 늘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성을 손에 넣을 생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성은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은 다음 전투에서 적의 손에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무위의 이 말고 함께 길고 무거운 침묵이 막사를 휘감고 있었다.

 

“다만, 우리에게 마지막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단번에 적의 정예 군의 사기를 짓밟을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보강 된 군사는 어차피 무너진 성벽을 밀어붙이기 위한 수를 불린 것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그들을 이끄는 것은 정예군 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정예 군을 무력화 시킨다는 말입니까?”

 

그 질문에 아무도 뚜렷한 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인가 막사 밖에서 물어왔다.

 

“적장이 누구죠?”

 

이 갑작스러운 물음에 모두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물은 자는 없었다. 그러한 사이에 운향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은…”

“…”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부인!”

“적장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

 

그녀의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에 그만 무위는 잠시 섬득했다. 그때 무위의 부장이 그녀를 막아 섰다.

 

“부인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군영을 아무 제재 없이 배회하는 것은 더 이상 허락할 수 없습니다.”

 

부장의 제지에 운향은 갑작스럽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막사의 장수들은 다 귀가 먹은 것인가? 아니면,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인가?”

 

그녀의 이 갑작스러운 태도에 모두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때 무위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적장은 쌍검을 쓰는 검술의 달인이라 불리는 귀절(鬼切) 이라는 자 입니다.”

“무위라 했나요?”

 

지금 무위를 비롯한 부장들은 운령의 기에 압도 되어 모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

“목진국의 왕은 천하를 경영할 만한 자 입니까?”

 

운향의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군영의 모든 장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내가 무위 장군의 부장이 되는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의 이 말에 다른 장수들은 사실 어이없어 하는 표정들 이었다. 난데없이 부장이라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 이었다. 장수가 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장수들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무위는 간단하게 되물었다.

 

“무엇이죠?”

“용국 황제의 목은 내 것입니다.”

 

계속 되는 그녀의 발언에 모든 장수는 그만 더 이상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무위는 결연히 대답했다.

 

“약속하지요.”

“내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신도 이곳 외성(外城)의 작은 성주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붉은 갑옷을 하나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붉은 깃발도…”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대화에 끼어 들거나 반발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리고 막사 밖으로 나가는 그녀에게 무위가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적령(赤靈)이라 합니다.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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