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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갱이 - 47

이끼 |2004.11.27 15:01
조회 1,509 |추천 0

누가 진짜 진유채의 왕자님인가?


장백그룹의 둘째 아들로 알려진 백사형과 전 메이플 레스토랑으로 외식업계의 히어로로 불리운 김태준의 사이에서 진유채를 놓고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메이플 레스토랑의 지분을 51%를 장백그룹인들이 나누어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관계에 메이플 주주들은 강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진유채를 놓고 벌어진 이 삼각관계의 싸움에서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아직까지 진유채는 어떠한 공식적인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

 

"젠장!"

 

사형은 거칠게 신문을 구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반전이라는 샐리의 말에 혹시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보도이기를 기대하며 신문을 펼쳐들었던 사형이었다. 뜻밖의 자신의 실명이 거론된 보도내용은 정말 어처구니 없었다. 하지만 첨부된 사진 자료는 분명 백사형 자신과 진유채가 함께 있는 장면이었다. 여타의 반론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정스러워 보이는 사진은 도대체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유채가 이 사진을 만들기 위해 작정하고 자신을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사형이 알 리가 없었다.

 

이 보도를 접한 메이플의 주주들은 연일 현 대표이사와 백사형과의 관계를 묻는 전화가 급증했다. 김태준의 사업가적인 수완에 맞춰진 소개와 백사형의 평범한 삶에 대한 보도 내용 또한 메이플 주주들의 신뢰를 크게 흔들어놓고 있었다. 경험이 없는 대표이사에게 믿고 투자할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한 듯했고, 예전 김태준을 믿고 메이플에 투자를 했던 여러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점차 팔자는 주문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당연히 주식은 계속적인 하락세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장백그룹 쪽에서 포섭한 51%의 지분율까지도 점차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김태준의 게이 보도로 소유한 주식에 대한 발언권을 위임했던 주주들까지도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형의 머리는 지끈거리는 두통이 엄습해왔다.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척 많은 기업들의 인수 합병에 대한 작업을 해 왔었다. 그저 쓸만한 기업의 자금줄을 압박해서 그 기업을 사고 적정한 가격에 되파는 정말이지 남는 장사를 해왔었다. 단 한번도 기업의 인수 합병에 실패해 본적이 없는 사형이었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충격은 결코 적지 않았다.

 

삐리리리...

간신히 차 한잔으로 분노를 다스리던 사형의 핸드폰이 사형의 평온을 깨뜨리듯 울렸다. 핸드폰의 뜬 번호를 보니 사형의 최측근인 박실장이었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뭐가 죄송하다는 건가. 박실장의 말에 사형의 신경이 날카롭게 밖으로 삐쭉 삐져나왔다.

 

"퍼시픽 건설의 진사장님께서 메이플의 3%에 해당하는 지분을 모두 시장에 내놓으셨습니다."

 

"뭐야?"

 

"죄송합니다. 더이상 손실을 용납할 수 없으시다면서 워낙 완고하셔서..."

 

3%... 사형은 휘청이는 다리를 지탱하려 간신히 책상을 붙들었다. 3%는 51%를 가볍게 깨버리는 상황이었다. 메이플 주식값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당장 그 만큼의 지분을 인수할 자본은 현재 사형에게는 없었다. 그저 날아가는 3%를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건가? 3% 시장에 나오는 순간 메이플의 주식이 지금 이상황에서 또 다시 바닥을 칠 것은 불보듯 뻔했다. 무엇인가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게다가..."

 

"또 뭔가?"

 

"장백그룹의 이사진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뭐야?"

 

"아무래도 또 한번 메이플의 주식이 바닥을 칠 경우, 메이플의 인수 합병을 추진하던 측근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면하기 어려워보입니다."

 

"젠장!"

 

"지금까지 사형 도련님의 인수, 합병건이 모두 성공적이었기에 별다른 말을 안하시던 이사진들이지만 사형 도련님의 활동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이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만약 이번 건이 실패로 돌아가면 이젠 이 일에 손을 떼게 만들겠다고 벼르고 계십니다."

 

백사형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 모든 것이 진유채 그 여자로 인한 일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예사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흥미가 끌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신의 행동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는 미쳐 생각도 못했었다.

 

 

 

 

*                     *                     *                     *                     *

 

 

 


"유채씨, 드디어 나왔어요. 나왔다고요!"

 

태민이 흥분된 목소리로 유채를 부르며 뛰어들어오다 생각지도 못한 태준을 발견하고 우뚝 멈춰섰다.

 

"형?"

 

"어쭈, 아주 제 집 드나들 듯 하는구나. 이게 네 집이냐?"

 

초인종한번 없이 태민이가 가뿐하게 집안으로 뛰어들어오자 태준은 불만스럽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자신이 없었다면 유채 혼자서 있었을 집이었다. 그런 집에 태민이 녀석이 제집처럼 왔다갔다 했었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 언제왔어? 왔으면 집에 좀 들려보지. 어머니가 기다리시는데..."

 

그런 태준과 달리 태민의 표정은 10년만에 혈육을 만났듯한 반가움으로 가득찼다. 태준이 없는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태민이었다. 연락이 닿지않는 태준이 혹시나 자살이라도 했을까봐 태민이 얼마나 형에 대한 걱정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태민은 대뜸 감격스럽게 태준에게 달려들어 태준을 꽉 안았다.

 

"얼레? 너 왜 그러냐? 너 미쳤냐?"

 

"그래 미쳤다.'

 

뭐라고 딱히 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 태민은 그저 태준을 꼭 끌어안고만 있었다. 그런 태민의 모습을 보면서 유채를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형을 위해서 결혼을 해달라고 유채에게 부탁을 했던 태민이었다. 전부는 알 수 없어도 태민이 태준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야! 징그러! 떨어져!"

 

"참내... 뭔 형이 이러냐?"

 

"원래 이런거 몰랐냐? 니 형 언제 안 그랬냐?"

 

억지로 태민을 떼어낸 태준이 마치 개털이라도 묻은 것처럼 옷의 여기저기를 툭툭 털어냈다. 갑작스런 태민의 행동이 태준은 무척이나 무안했다. 사내녀석이 무슨 포옹을 하고 그런담...

 

"참, 태민씨... 아까 뭐가 나왔다는..."

 

유채가 태민이 들고 들어온 봉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태민이 태준의 집에 오면서 손에 뭔가 들고오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늘 뭔가 사오는 것은 샐리의 몫이었었는데...

 

"아..."

 

태민은 유채의 질문에 뭔가 이야기를 하려다 태준을 한번 쳐다보고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 태민의 모습에 유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태준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대체 뭐에 대한 이야기지?

 

"저기, 유채씨. 어머니가 이 죽 갖다주라고 하시더군요."

 

"네?"

 

태민이 불현듯 손에 든 봉투를 떠올리고 황급히 봉투를 내밀어 화제를 돌렸다. 태민의 말에 유채도 놀랐지만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태준이었다.

 

"어머니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유채의 손에서 봉투를 빼앗아든 태준은 내용물을 확인했다. 포장용기를 보니 어머니가 보내셨을 것이 틀림 없었다. 어머니가 가끔 사용하시는 분홍색 매화가 탐스럽게 그려진 사기로된 밀폐용기에 담겨져있는 걸 보고 태준이 내린 결론이었다.

 

"어머니가 대체 이걸 유채에게 왜?"

 

"몰라. 오늘 신문 보시더만 유채가 형을 버린거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시고 난리도 아니었어."

 

"어머나!"

 

태민의 말에 유채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태준을 버리다니...! 태준씨 어머니가 신문을 보실 것이라고는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유채였다. 어머니가 그렇게 알고 계시면 절대 안되는데...

 

"걱정말아요, 유채씨. 어머니께는 잘 말씀드렸어요."

 

"태민씨가 그렇게 말하면 다행이구요."

 

"유채씨? 태민씨? 너 제대로 형수님이라고 못 불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유채를 보바마자 태준은 태민을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일로 사람을 놀라게 했겠다. 그리고... 이것이... 유채씨?

 

"아니, 태준씨는 갑자기 왜 그래요."

 

"너도 똑같아. 태민씨가 뭐야? 낮춰서 불러! 시동생한테 태민씨가 뭐야."

 

"그럼 뭐라고 불러요?"

 

"너 학교에서 안 배웠냐? 도련님이잖아. 도련님!"

 

"풋! 웬 도련님..."

 

태준이 바락바락 악을 쓰자 유채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 바뀐다더니... 태준은 그 사건으로 떼쟁이가 되어버린듯 잔뜩 볼이 부어 툴툴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김태준이 이렇게 귀여웠던가?

 

"왜 웃어? 에이씨!"

 

유채가 깔깔거리고 웃어대자 그제서야 자신이 말한 것이 얼마나 유치한가를 깨우친 태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붉어진 얼굴로 화장실로 내달려갔다. 유채는 그런 태준을 보고 배를 잡고 데굴데굴 웃고 있었고 태민은 그런 태준과 유채를 번갈아가며 황당한 얼굴로 지켜보고 서 있었다.

 

"형 왜 저래요?"

 

"깔... 태민씨..."

 

유채가 눈물까지 찍어대며 웃음을 진정시켰다.

 

"참,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봐요. 형 때문에 못하던거 같은데..."

 

"아, 맞다. 유채씨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것이 나왔어요."

 

"그게 뭔데요?"

 

언제 눈물까지 찍어대며 웃었냐는 듯 유채가 멀쩡한 얼굴로 금새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정말 이리저리 호떡 뒤집듯이 잘도 변하는 무서운 여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태민의 머리를 스쳤다. 앞으로의 태준형의 인생은 깜깜하겠군...

 

"드뎌 백사형 측에 붙었던 메이플 지분이 토해져나왔어요."

 

"네? 얼마나요? 누가요?"

 

"퍼시픽 건설 진사장이 두 손 들었더라구요."

 

"와우!"

 

"내일 아침 장 열자마자 나올 것 같아요. 그게 나오면 메이플은 바로 곤두박질하지 않을까 싶은데..."

태민이 들려준 깜짝 소식에 유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태민을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둘이 뭐하는거야?"

 

그새 화장실에가서 세수라도 하고 왔는지 멀끔해진 진정된 얼굴로 태준이 쓰윽 나타나며 한소리를 했다.

 

"어, 형... 있지. 억!"

 

태민이 태준을 보고 웃으며 무엇인가를 말하려 운을 떼는 순간 유채의 라이트 훅이 강하게 태민의 배

를 때렸다. 상당히 강한 유채의 펀치에 태민의 배를 잡고 고꾸라졌다.

 

"어머, 이런 실수를... 태민씨 괜찮아요?"

 

유채가 짐짓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쓰러진 태민을 일으키려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쉿. 형한테는 아무소리 하지 말아요..."

 

낮게 속삭이는 유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태민은 그저 배만 움켜쥐고 아무소리도 못하고 끙끙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그 속을 모를 여자였다. 샐리가 유채같지 않기를 천만 다행으로 여겨야지... 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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