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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디는 늘~~ 즐거워 (펌) ***

이삐 |2004.11.30 20:38
조회 514 |추천 0

아주오래전 20대 초반의 일이지만, 오방떡 장사를 해본적이있다.
물론 메이드인 구루마이다. 뭔소리냐고?
길거리 구루마 즉 노점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당시 한 30만원 돈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선 리어카사고 가스통, 오방떡기계 등등으로 그 돈이 들었다.
근데 난 돈을 아끼려고 중고 기계를 샀는데 그것이 첫번째 실수였다.
왜냐면 길거리장사라는 것이 물가가 올랐다고 그 당시 100 원 하던 가격을 120원이나 130 원을 받을수 없는 노릇인지라
새로나온 기계는 가다가(틀) 작아졌는데 나는 중고를 샀기 때문에 가다가 더 커서... 무슨 말이냐면,
새기계는 다라이(또 일본말이다...그러나 어쩌랴...고무다라이를 뭐라 할까?) 한반죽 만들면, 오방떡 350개가 나오는데비해서 중고기계는 250개 뿐이 안나온다는 말이지.
그말은 남들이 다라이 한개분을 팔면 35000원이 되는데 나는 25000원 밖에 안된다는 말이지.
난 그 사실을 한 보름쯤 지나서 알았지.
상상이 가시나?
리어카를 용달로 실어가면 당시 운임비 5천원이 나오니까, 그 오천원을 아끼려고 새벽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서 끌어다 노았었는데...
그리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바로 쉬기는 커녕 앙꼬(팥)를 쑤어놔야 했다.
앙꼬쑤는게 뭐 어때서라고?
그건 모르는 말이다. 앙꼬 쑤는데는 꼬박 2 시간이 걸린다. 잠시도 한눈 팔지 못하고...
그러니 그당시 결론은 하루매상 25000원에 원가제하고...
근데 이 원가가 장난이 아니다.
밀가루 반죽이 뭔 장난이 아니냐 하겠지만 그것 역시 모르는 소리다.
우선 반죽에 전지분유,계란 한판,마아가린,바나나향료등 이건 도저히 같은길거리에서 파는 풀빵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매일 건너편의 호떡 장사가 부러웠다.   당연 하겠지... 그 당시 실감 했음.. 웃지마시라 ..남의떡이 더 커 보인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사실을...

첫날 행길 건너편 호떡장사가 뒤뚱거리며 길을 건너 왔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학생 여기서 하면 않돼"    난  가능하면 안면근육을 무시카게 정돈 시키며

"학생 ?  ...나 학생 아니고 거 같이 먹고 삽시다...거 상권도 서로 다른데 뭘.." 호떡은 지지 않고 대꾸한다.

" 아니 같은 떡이잖아?"     나도 질수가 없다.

" 아니  같은 밀가루지만 그쪽은.. 그쪽은 흑설탕이고 난 앙꼬자너.....대신 여기서 장사 안돼도 길건너로 안너머갈께...거 행길을 삼팔선으로 합시다"

그러자 그는 뒤뚱 뛰뚱 행길을 건너갈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겨울을 서로 비무장지대 보초처럼 마주보고 지냈다.

부러진 안경다리 반창고로 붙이고 있던 호떡은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호떡도 가끔 이 오방떡 생각이 날까?


난 돈 8 천원이 아까워 포장도 치지 못하고, 한겨울에 파라솔 한개 달랑놓고 그겨울을 버텼다.   빌어먹을 그 겨울은 10 년만에 찾아온 아주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나 난 그 겨울에 길거리에서 아주 소중한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건 단속 공무원들을 다루는 법과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 말이다.
물론 사업은 망했지만...

 

 

윗글을 보고 답글로 올린 패러디 글이 넘 강적이었다.

 

사실 아래 패러디 글 쓰신 분의 순발력과 재치가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하기에 퍼오게 되었읍니다.

그 와중에 이해를 돕자면 어쩔 수없이 원글도 안 가져

올 수가 없더군요.

두 분에겐 죄송하나 닉이나 아이디를 절대 복사를 하지

않는 정도의기본 예절은 지켰으니  혹여 보시더라도

웃자는 짖이니 넓은 가슴으로 포용해 주시길...

 

자, 함 봐봐 보실까요.

 



아주오래전 20대 초반의 일이지만, 잠시 닥깡노릇 해본적이있다.
물론 텐프로 닥깡이다. 뭔소리냐고?
당시 강남에서 10%안에드는 잘나가는 호스트바 종사원 즉 A급 국가대표선수출신 이었다는 말이다.

그당시 한 100만원 마이킹(선불)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선 알마니양복사고 플레이보이셔츠,

보스구두 등등으로 그 돈이 다 들었다.

근데 난 돈을 아끼려고 그것들을 남대문에서 샀었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왜냐면 길거리 장사한테 사입었는데, 그 당시 80만 원 하던 알마니 양복을 30만원에 사입었는지라.....

당시 새로 들어온 알마니는 조르지오가 아닌 임플로이 알마니였는데,난 이미테이션을 샀기 때문에 알마니 스펠이 달라서..... 무슨 말이냐면,
새 알마니는 임플로이(또 영어다...그러나 어쩌랴...임플로이 스펠이 몰까?)알마니고 조르지오 알마니는 이제 수입이 안된다 말이지.그말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복입은 사람덜은 중고양복,내지는 이미테션 이란 말이다.난 그 사실을 한 보름쯤 지나서 알았지. 상상이 가시나?

꼴에  명품옷 입었으니 택시두 콜택시 불러서 출근했어, 이차 없는 날은 새벽에 집에오는차..역쉬 콜밖에 없었어.그리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바로 쉬기는 커녕 인삼차 다려야했어. 인삼차 다리는게 뭐 어때서라고?
그건 모르는 말이다. 인삼차 다리는데 꼬박 2 시간이 걸린다. 대추랑 인삼으루 완전 즙 맹그는데...그러니 그당시 결론은 하루수입 10만원에 원가 제하고...

근데 이 원가가 장난이 아니다.
호빠선수가 뭔 원가냐 ....그것 역시 모르는 소리다.
우선 의상비에 화장품,이발비,차량유지비,보약(?)등 이건 도저히 또래 친구들이 쓰는 용돈에 비해 차원이 틀렸어.나는 한달에 부모님한테 단 돈 몇만원 용돈 타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당연 하겠지... 그 당시 실감 했음.. 웃지마시라 ..남의떡이 더 커 보인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사실을...

어느 겨울, 눈 많이 내리는 날.. 한강 건너편사는 호떡판 닮은 아줌마가 뒤뚱거리며 내 옆에 앉았다.그리곤 내게 말했다.

"학생은, 여기서 금방 짤리겠네에~"    난  가능하면 안면근육을 순진하게정돈 시키며

"학생이여 ?  ...나 학생 아니고 졸업했어여....글구,여긴 제 직장이란말이에요..아줌마가 몬데.." 호떡판 아줌마 눈 내리깔구 쏴붙인다.

" 아니 그 얼굴루...양심두 엄따.. 글구, 너 입은 옷...그거 "알마니" 아니구 "얼마니"....짝퉁이자나!!!?"     나도 질수가 없었다.

" 아니  같은 퍽이지만 그쪽은.... 한물 간 핵퍽이구,,난 신선하자나여.....내,여기서 맨날 테이블 못받아두...아줌마 같은 여자랑은 안해여~~"

그러자 그는 양주병을 집어던지고 사장 나오라구 소리소리 질렀다. 결국,나는 그 겨울 휴학계를 제출하고.... 비무장지대 보초서며 뺑이치며 지내야했다.

숨쉴때마다 아랫배 펄럭거리던 호떡판 아줌마는 지금 어느 양로원에서 점 십원짜리 고스톱판 뒷전 노릇하고있을까? 내 생각날까?

쉽게 돈벌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려했던 난, 한겨울, 차가운 겨울비에도 판초우의 하나 걸치고  그 겨울을 버텼다.   빌어먹을 그 겨울은 10 년만에 찾아온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나 난 그 겨울에 전방, 군대에서 아주 소중한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건 일확천금이란 존재하지않는다는 것, 땀 흘려 벌어야한다는것....

결국, 난 장기하사 지원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여러분 첨으로 인사 드리면서 남의 글을 퍼와서 죄송합니다.

 

다음엔 제 안돌아가는 머리도 좀 굴리고 문화적 혜택도 좀 입어 여러분들과

즐길수 있는 글 올리겠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시고 화요일이니 화끈한 밤들 맞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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