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4
[면회 다녀오나?]
[네]
[누가 왓엇는데??]
[동거녀요]
[머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
철문 닫히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3평 남짓한 방안을 가득 메운 군상들의 모습이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이 방안에서 나이로보나 입소날자로 보나 막내인지라 아무말도 하지 않고 뺑끼통 옆에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누구야?]
제일 고참인듯한 3133번이 물었다.
3133의 죄목은 강도였다. 게다가 그는 파란색 수번[죄수번호]을 차고 있었다. 이곳에선 잡범[평범한 범죄]은 흰색을 5대 강력범[강도.강간.살인....]은 노란색, 3133처럼 동일한 죄를 3번 지은 사람은 파란색 수번을 달았다. 멋지게 생긴 얼굴인데 강도라니, 그것도 파란색......지영은 믿을수가 없었다.
[동거녀요]
[아..그 혜영인가 먼가하는 여자 말이지?]
[네]
[머래..잘 지내고 있네?]
[네]
[변호사는 선임햇다던?]
[아직요.]
[너 빨리 변호사 선임해야되..안그럼 너 힘들어져]
[.....]
[기소되기 전에 변호사를 선임해야지...국선변호사는 아무것도 안해.]
[.....]
[내가 아는 변호사 소개해줄까?]
[.....]
[지금 내 변호사는 수원지법에서 부장판사 하다가 나온 사람인데, 이 변호사들이라는게 알고보면 판.검사 하다가 나온사람들이 있고 그냥 변호사 개업한사람들이 있거든. 그중에서도 특히 사건이 계류중인 곳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해야되]
[왜요?]
[아...병신이네 이거. 얌마 전관예우라는거 못들어봣어?]
[전관예우요? 그게 먼데요?]
[아. 씨팔..그게 머냐믄. 자기가 근무하던 곳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 1년 정도의 범위안에서 사건을 잘 봐준다...머 이런거지.]
[그래요?]
[그러니까 1년 정도 돈 많이 벌어라...머 그런거 아니겟어? 알고보면 다 짜고치는 고스톱이지?]
[그렇군요..그럼 그런 변호사는 비싸겟네요?]
[그렇지..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자나]
[유전무죄,무전유죄요? 그건 먼데요?]
방안의 군상들이 모두 낄낄대고 웃어댔다.
3133이 짜증난다는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야이 세끼야. 돈이 잇으면 죄가 있어도 죄가 없고, 돈 없으면 죄가 없어도 죄가된다는거야]
[.....]
[각방 취침준비!!!]
교도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도관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각 방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데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진다.
이 방의 군상들도 낄낄거리며 이부자리를 하기 시작했다.
지영의 자리는 뺑끼통[화장실]옆 이었다.
이곳에서는 입소한 고참순으로 제일 고참이 문앞을 차지하고 제일 막내가 뺑끼통 옆에서 취침을하도록 되어있었다. 관에서 정해준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세계의 불문율인듯 보였다.
[어이. 배식담당!]
[네]
[오늘은 머 먹을꺼 없냐? 아 씨팔, 5시에 밥주고 8시에 잘라니 배고파 디지긋다.]
[빵하고 요구르트가 있는데요? 그거라도 풀을까요?]
[그래..먹자]
배식반장이 화장실위에 조그마하게 만들어진 간이 선반위에서 빵과 요구르트를 꺼내었다.
모이라는 말도 없었는데..모두 쭉 둘러앉았다.
[얌마..너도 일루와.]
그때서야 지영은 엉덩이를 질질끌며 배식반장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이곳에선 먹는것과 관련된 부분은 배식반장이 대장이었다. 그의 허락없이 먹어서도 안되고, 수저를 들어서도 안되는 거였다. 방장조차도 먹을것에 대해서는 배식반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10개의 요구르트와 10개의 빵이 가운데 놓여졌다.
방장과 배식반장은 2개씩 먹고 나머지는 1개씩 먹는 거였다.
[3동에 계신 민주 시민 여러분!! 오늘도 별일 없으셨습니까~~저는 민청학련소속 서울지부 OO대학교
OO과 학생입니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
[저 새끼 또 시작이네..어쩐지 오늘은 걍 지나가나 했다.]
[저 소린 먼가요?]
지영이 궁금해서 물었다.
몇일째 이 시간만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듯했다.
[저게. 데모하다 잡혀온 놈인데 이줄 끝에 11방이라고 있어..독방인데 머 민주화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지. 저 놈도 미친놈이야..항상 저러니까 신경꺼]
[네]
그랬다. 한동에 상.하층 끝방은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위반자들이 독방으로 쓰고 있었다. 일반 죄수들과 달리 그들은 사상범 이었으므로 다른 죄수들을 물들일것이라는 우려때문에 혼자만 쓰도록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누가 썰 좀 풀어라]
[.........]
방장이 나즈막하게 한마디 던졋지만 모두들 아무 말이 없다.
[오늘은 ..야~ 신입 너가 풀어]
지영을 턱으로 가르켰다. 군상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영으로 향했다.
[전 특별히 할 말이없는데요]
[야이 세끼야. 먼 말이 많어..너 여기 들어온 이야기를 하던가. 아님 니 동거녀랑 재미본 이야기를 하던가 암꺼나해...나 잠들때까지 ....알았어?]
[네]
[자자 그럼 모두 취침대형으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 자리에 누웠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지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하여야 할지 고민했다.
60촉 전구를 바라보면서 서서히 지영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난건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녀가 누군데....]
배식반장이 말을 끈었다.
[어이 배식반장 누구긴 누구겠어...혜영인가 먼가하는 그년이지...]
[.....]
그년 이라는 말에 지영이 방장을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눈빛이 섬뜻했던지 방장이 눈을 돌렸다.
아무도 말이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배식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여 말해...궁금하자나.]
[전 당시에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습니다. 경아라고하는데 무척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당시에 저로서는 그녀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정말로 그랬구요...먼 발치에서 그녀가 나타나면 그녀뒤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녀가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영의 말을 계속되었다.
[그녀가 잘 따르는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제 친구였습니다. 희진이라고...그 친구는 또 병택이라고 저의 단짝을 무지 좋아하고 있었구요. 그러다 보니 만나게되면 4명이서 어울리게 되었어요..술을 마실줄은 모르지만 술을 마실때도 그렇고, 나이트를 갈때도 그렇고, 거의 4명이서 어울려다녔죠. 그러다가 제 단짝 친구인 병택이 문제로 술집에 가게 되었어요.]
[거기서 만난거냐?]
방장이 물었다.
[네. 여튼 당시에 희진이는 병원에서 근무하던 아이인데, 저녁에 심심하니까 카페같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튼 그게 문제야. 아니 미친년들이 저녁에 머할라구 카페를 가냐구..근질근질 한가..그런거는 확 조져 버려야 하는데..]
강간죄로 들어온 2413이 한마디 던졌다.
[아 그새낀 누가 물총아니랄까봐..또 지랄이네]
[시끄러 새끼들아 말이 자꾸 끈기자나]
방장이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는 듯이 재촉하고 있었다.
지영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어느날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호출이 왔었어요..할말이 있다고 카페로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가게되었어요. 희진이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끼어들더군요...안녕하세요 하면서요.]
[오~~~]
[인사 나누는데 갑자기 손님이 들어왓어요. 그래서 희진이는 손님 받으로 갔구요. 저랑 지금의 동거녀랑 둘만 앉아있게 되었죠.]
[오~~그래서?]
[머 첨보는 사이인데 별말 있었겟어요? 제가 물었죠. 힘들지 않냐고..할만 하다라고 하더군요. 낮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이라고 하더라구요.]
[거바...미친년들이지...여튼 요즘 년들은 다 걸레야 걸레.. 아니 선생도 그지랄이니 ...쓰벌..]
물총이 또 한마디 던졌다. 침까지 튀어가며 ...
[내가 이러니 얼마나 억울해요? 아 형님도 생각해보세요.]
방장을 가르키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라도 하듯 ...
[지가 여관 가자고 해서 델구갔는데 강간이라고 신고하니 원...내 드러워서]
[야이 새끼야. 술에 약탓다며...그게 델구간거냐? 미친새끼....]
방안 사람들 모두 깔깔 거리고 웃어댔다.
지영이도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거기 조용히 하고 자빠져 자]
교도관의 한마디에 모두들 웃음을 멈추었다.
[조용히하고..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 이번엔 물총이 재촉을 해댔다.
[머 할말도 없고 그래서 혼자사세요? 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혼자산다고 하더라구요. 당시에 저도 혼자 자취하고 있었고해서 그냥 그럼 우리 살림이나 합칠까요? 그랬더니 그녀가 그럴까요? 라고 맞짱구 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로 합쳤냐?]
배식반장이 물어왔다.
[아니요. 그렇게 이야기 주고받고 시간도 늦어지고 했는데 그녀가 끝나게 되었어요. 택시를 타고 갈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집을 가는 길 중간에 제가 자취하던 곳이 있어서 둘이 그냥 걸어갔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요.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녀의 집앞까지 가게 되었어요. 커피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들어갔죠]
어디서부터인지 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안의 군상들의 귀가 활짝열리는듯 보였다.
[잠시만요 화장실좀 다녀올께요]
[아 씨...어여 다녀와라..배식반장 요구르트 있으면 제 1개 줘..빵도 있으면 하나 더 주고.]
화장실을 향하는 지영과 맞추어 배식반장이 엉거주춤 일어서기 시작했다.
[쏴~~]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자리로 돌아왔다. 사실 자리랄것도 없었다. 바로 화장실 옆이니 문만열고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거였다.
배식반장이 건네준 요구르트의 뒷 부분을 앞이로 살짝 깨물었다. 요구르트는 그렇게 먹어야 제맛이라는듯이 힘차게 쭉쭉 빨기 시작했다.
[얌마 다 처묵었으면 이야길 해....애간장 녹이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