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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됴방 러브 스토리

kojms |2004.12.02 14:09
조회 290 |추천 0

1. 처키, 비디오방에 가다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은 바로 ‘처키’라는 내 별명이다.

그 밤톨만하면서 사악하기 그지없는 면상에 머리를 산발한 ‘사탄의 인형’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만, 내 주변인들은 나를 ‘처키’라 부른다. 차라리 프레디나, 제이슨 정도만 불러줘도 그렇게 싫지는 않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그 놈의 '처키'란 말인가.

그게 다 제대한지 반년만에 친구놈들과 가졌던 술자리 때문이었다.

제대하는 날로부터 나는 장발에 한이 맺힌 놈처럼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군대 갔다와 본 놈은 안다. 왜 제대하고 머리를 기르게 되는지.

나는 불과 제대 2주를 앞두고 행보관(행정보급관)에게 머리를 깎였다.

“이놈으 쌔끼, 머리 꼬라지가 완전 밤숭우리구먼.”

나는 결사적으로 반항을 했다.

“에이, 행보관 님, 왜 이러십니까. 사회 나가면 바루 취직해야 되는데…….”

그러나 마이동풍(馬耳東風)에 ‘마(馬)’가 우리 행보관이었고, 우이독경(牛耳讀經)의 ‘우(牛)’가 우리 행보관이었다.

“이놈으 쌔끼, 제대해서 위병소 나가는 그 순간까지 넌 대한민국 육군이야! 알았으?”

그러면서 행보관은 ‘바리깡’으로 사정없이 내 앞머리에 도로신축공사를 실시했다.

“흐흐, 이제야 인물이 줌 훤하네.”

앞머리에 도로가 뚫린 내 머리를 보며 행보관은 만족스럽게 웃어댔지만, 정작 나는 세면장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을 보곤 확 돌아버려서 거울을 박살내고 말았다. 그리고 제대 2주 전 기물파손을 이유로 종일 ‘군장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그 후로 반년 간 나는 단 한번도 머리를 깎지 않았다. ‘바리깡’은 물론, 가위 따위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행보관에게 깎였을 때 불과 1mm 밖에 안 되는, 자라나는 새싹이었던 앞머리는 반년이 지나자, 8cm는 족히 길어났다. 인간승리였다. 그러나 옆, 뒤, 윗머리와 같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앞머리로 인해 내 머리는 전체적으로 볼 때 흡사 ‘옥동자’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이 구축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처음 만난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저…… 혹시 랩 하세요?”

제대를 하고 나서 나는 다니던 대학에 복학을 했다.

입대하기 전과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그저 학교 주변에 84군데의 술집이 더 생겼고, 후배들이 더 ‘싸가지’ 없어졌을 뿐이었다. 수업은 여전히 따분했고, 세상은 여전히 '졸(卒)'같이 굴러갔다. 늘어진 국방색 런닝에 ‘깔깔이’를 입고 진지보수작업을 하며, 비 오는 밤 야간행군을 하다 판초우의에 빗물을 받아 마시며, ‘아, 대학생활은 그 얼마나 찬란한 천국의 나날이었던가. 이제 제대하면 정말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기억들은 제대 후 한 달만에 술똥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민간인이 된 지 반년만에 만난 동기 녀석들은 옆구리에 옵션처럼 담배 피우는 여자애들을 끼고 나왔다.

“담배 피워두 되죠?”

그 중 화장품으로 칠갑을 한 여자애가 나에게 물었다.

코를 찔러대는 화장품내의 강도와 외관상으로 감지되는 두께로 볼 때, 살살 벗겨내면 얼굴 모양의 화장품 가면이 고스란히 뜯겨져 나오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 화장가면과 한 1미터는 떨어져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가면의 입에서 풍겨 나오는 니코틴 절은 내와 싸구려 향수 내에 나는 지구를 떠나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매너를 빼면 존재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인간이었으므로,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니까 그러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화장가면과 그 외 옵션들은 일제히 담배를 꺼내어 끽연에 한 맺힌 듯 피워대기 시작했다. 금새 재떨이가 꽁초들의 시체가 나뒹구는 전장으로 변했다.

“근데 오빤 헤어스타일이 상당히 럭셔리하다.”

화장가면은 그렇게 말하곤 자기가 생각해도 무척이나 재치가 번뜩이는 대사라고 생각되는지 낄낄 웃어댔다.

“그러게…… 진짜 럭셔리하다, 얘.”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옆의 옵션들도 웃어대기 시작했고, 2~3초간 나는 고등교육에서 배운 국어표현법의 지식을 헤집은 끝에 그들이 내 헤어스타일을 정말 ‘고급스럽다’거나, ‘화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어법으로 비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는 사람 무안하게 왜 그러냐?”

친구놈이 핀잔을 주었지만, 화장가면은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솔직히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화를 내봐야 똑같은 부류가 될 뿐이었다. 나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그들과 함께 웃어주었다.

맥주와 안주가 나오고, 술을 마시며 나는 기분을 풀어보려 했지만, 옵션들은 그걸 도와주지 않았다. 화가 좀 풀릴만 하면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잘랐는데 헤어스타일이 엉망이 되었다고 얘기하다가도,

“어머, 그 때 이 오빠두 같이 갔던 거 아냐?”

하면서 나를 가리키며 낄낄댔고, 화가 좀 풀릴만 하면 영화배우 정우성이 멋있다는 얘기를 하다가도,

“근데 정우성이 저 오빠처럼 머리해두 멋있을까?”

하면서 낄낄대어 우는 아기 뺨을 때렸다. 술기운과 울화가 치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인내심의 고삐가 풀려 감을 느꼈다. 나는 계속 맥주를 들이부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번만 더 해라.

“정우성은 그나마 마스크나 되잖니.”

진짜 한번만 더 해라.

“야, 너 진짜 그만 줌 해라. 자꾸 그러다 이 오빠 맬랑꼴리해져서 자살할라…….”

그래, 잘 하고 있어. 한번만…… 딱 한번만 더 해라.

“근데요, 오빠. 진짜 농담이 아니라, 나 오빠랑 똑같이 생긴 인형 본 적 있는 거같애요.”
화장가면이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이미 식탁 위에 있던 콜라병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못난이 3형제.”

그리고 옵션들은 또다시 ‘오홍홍홍’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웃음을 쏟아냈다. 이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 나는 콜라병을 거꾸로 집어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가 보여줄 때다. 세상은 ‘럭셔리’나 ‘멜랑꼴리’라는 단어말고도 ‘야마돌아’라는 단어가 있음을 보여 주여야 했다. 나의 미간에 내 천(川) 자가 새겨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나지막하게 그러나, 위협적으로 읊조렸다.

“이런 졸(卒)만한 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보여 주리라.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내 성격을 보여주리라. 나는 있는 힘껏 콜라병을 거세게 식탁 모서리에 내리쳤다.

퉁!

“……?”

좌중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다시금 식탁 모서리에 콜라병을 내리쳤다.

퉁!

‘퉁’이라니……? ‘쨍’도 아니고, ‘꽝’도 아닌, ‘퉁’이라는 파열음이 날 리가 없는데……. 나는 다시금 콜라병을 치켜들었다.

그 때 화장가면이 말했다.

“와! 처키다!”

그와 동시에 옵션들을 비롯한 모든 친구놈들이 공감과 비아냥거림이 뒤섞인 폭소를 터뜨렸다.

그 순간 ‘그대로 멈춰라’가 된 내가 동작을 멈추고 손을 살폈을 때, 내 손에는 640ml 플라스틱 PET병이 들려져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하면 사물을 착각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그 날도 그랬다. 술김에 PET병을 유리병으로 착각한 내가 탁자에 집어들고 내리쳤으나, 플라스틱으로 된 PET가 깨질 리 없었고, 플라스틱의 탄성으로 인해 PET병은 연신 퉁 하는 소리만을 내었던 것이었다. 화장가면들은 그런 나의 자세를 보며, 나의 격분에는 상관없이 그저 처키를 연상했고,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처키가 되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나섬’으로 인해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아이들이 잊을 만 하면 자신이 끼지 않아도 될 상황에 불필요하게 나섬으로써 아이들의 원성을 사곤 했는데, 그 날 야간자습 시간에도 담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떠드는 아이들에게 책상을 두드리며,

“야야야! 자습시간인데 줌 조용히 하자!”
라고 윤리 교과서 풍의 훈계를 큰 소리로 떠듦으로써 모처럼 활기를 띈 교실에 냉각수를 끼얹었다. 일순 아이들의 동작과 잡담이 멈추고, 모든 시선이 녀석에게 쏠리는가 싶더니, 이내 모든 아이들이 녀석의 훈계를 무시하고 다시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녀석도 자존심이 있는 지라, 아이들에게 자신의 말이 무시당하자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고, 아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주먹으로 있는 힘껏 책상을 내리쳤다.

쾅!

다시금 아이들의 시선이 쏠리자, 벌게진 얼굴로 녀석은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

그러자, 인근에 있던 다른 녀석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

졸지에 처키가 되어야 했던 그 날, 나는 녀석이 그러했듯 머쓱해져서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다. 여전히 옵션들은 쓸데없는 잡담을 지껄이며 담배를 피워댔고, 나는 그 옵션들을 말 그대로 처키처럼 난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마셔댄 맥주를 배출하기 위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해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다시 옵션들과 친구놈들 얼굴 대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술집 밖으로 나왔다.

대학가(大學街)는 환락가(歡樂街)가 되어 휘청거리고 있었고, 멀리 술에 곤죽이 되어 친구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음주족(飮酒族)들이며, 멱살을 부여잡고 싸우는 폭주족(暴酒族)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들이었다.

나는 그 몰골들을 뒤로하고, 환락가를 거닐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불투명한 미래에 밑도 끝도 없는 불경기, 청년실업 등등 이제는 나와 먼 얘기가 아니라, 나와 매우 밀접한 얘기가 되어버린 그 잡다한 문제들에, 졸지에 얻게 된 그 놈의 ‘처키’라는 별명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비디오방에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비디오방을 지나치려다 출입구 옆벽에 붙여놓은 ‘아르바이트 구함(남) 6:00~12:00’이라는 모집공고를 본 것이었다. 그 순간 늘 얄팍한 내 주머니사정과 군대를 다녀와서도 용돈을 타서 쓰는, 한심한 내 신세와 회갑이 넘으신 연세에도 여전히 공사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한 덩어리로 ‘크로스’하여 내 뒤통수를 쳤다. 그래서 나는 2층에 있는 비디오방을 향해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순간만 해도 앞으로 내게 무슨 황당무계, 포복절도, 혼비백산할 사건이 펼쳐질 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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