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이야기
(12)
칡뿌리는 아이들입에 먹기 좋게 짧게 토막 내어, 결을 따라 찢어서 씹으면
하얀 속살에서 스며 나오는 달디 단 분가루는 여우가 둔갑을 부린 맛이었고 향이었다.
아이들은 턱이 굳어 씹지 못 할 때까지 작은 입을 끓임 없이 오물거리며
칡 속에 담긴 가루의 단맛을 뽑아낸다.
칡에서 묻어난 시커먼 흔적은 아이들의 입술에 얼마동안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쌉쌀한 단맛에 겨울은 항상 아이들을 산으로 유혹했다.
팔수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셔서 코끝이 언제나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팔수네 집 뒤란에는 오래된 칡덩굴이 등나무 줄기처럼 잘 자라
여름이면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팔수 할아버지가 주독으로 물든 빨간 딸기코를 고치기 위해 심었다고 했다.
칡은 비옥한 땅에 심으면 빨리 자라기 때문에 화단에 심고 지주목으로 올라갈 자리를 마련해
주면 여름에 덩굴이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8~9월에는 꽃이 피어 그윽한 향기를 내
뿜어 더 없이 보기 좋을 수가 없다.
칡꽃은 그 향기가 무척 강했다.
팔수 할아버지는 칡꽃이 피기를 기다렸다가 소중하게 따내어 두고두고 달여 먹었다.
덩굴 줄기도 잘라서 그 물을 차 대신 마시면 웬만한 위장병에는 특효를 본다고 했다.
칡즙은 숙취에 효과가 있고 칡꽃은 주독에 특효라 했다.
팔수 할아버지는 칡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청년이 될 때 까지 장수 하셨다.
칡은 천상의 천사가 배고픈 시골아이들에게 내려주는 은총내린 겨울날 좋은 주전부리 감이었
다.
세월이 바뀐 지금, 칡을 캐기 위해 산으로 가는 아이들도 없다.
아니, 마을에 아이들이 없다.
칡은 씹기 조차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즙을 짜낸 음료로 상품화 되어
웰빙바람을 타고 건강음료로 도시인들이 즐기는 기호식품으로 또 다르게 변신을 했다.
돌아오는 휴일 괭이라도 어깨 둘러매고 칡이나 캐러 가 볼까보다.
-계속-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