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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wi (키위) - 14. 태클녀와 손잡다

나비 |2004.12.11 16:03
조회 1,730 |추천 0

kiwi - 14 



“아아악!”

“오빠 괜찮아? 괜찮냐고?”

“야, 이게 세워 달라고 해. 빨리.”


오빠는 내게 세워달라고 애원을 했다.


“저기여. 멈춰 주세요.”


나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기계를 조작하는 날라리 같은 애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더욱 기계를 더 힘차게 돌려댔다.


“멈춰 달라구요. 사람이 무섭다잖아요.”


그 날라리 우리 보며 웃는다.


“저 남자분 난리가 났습니다. 더 신나게 돌려 볼까요?”


사람들은 좋아라하고, 남자는 신나라하고.


“야! 멈추라고. 너희 신고해 버릴 거야. 인터넷에도 다 올려 버릴 거라구.”


조금 주춤거리나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노란 대가리! 내 말 안 들려? 귀 구멍이 막혔냐? 너 모가지 잘리고 싶어? 니네 신고해서 영업정지 먹여버린다.”


병진이의 화법을 빌어 좀 세게 나갔더니 그제서야 팽이의 속도가 조금씩 늦어졌다.


‘병진아, 땡큐다. 너 세상 살기 편하겠구나.’


“오빠, 괜찮아? 이제 멈춰 주나봐.”

“어, 어.”


이미 혼비백산한 오빠는 대답할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소리를 얼마나 질러 댔는지 목도 다 쉰 듯 했다.


“못타면 못 탄다고 말하지 그랬어. 오빠, 미안해.”

“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오빠를 부축하며 큰 팽이에서 내려왔다. 우리 때문에 즐겁지 못했던 탑승객들이 우리를 째려보고 난리였다.


‘살집 있는 허리 오늘 실컷 만지는 구나.’


허리의 살들을 움켜잡으며 살과 든든함은 결코 상관이 없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간신히 벤치에 앉혀 놓고 생수를 사다 주었다.


“미안하다. 나도 무서워 할 줄 몰랐어. 어릴 때 빼고 탄 적이 없어서. 이젠 괜찮겠지 했거든.”

“아니야. 안 탄다고 말했는데 내가 억지 부린 거잖아. 미안해.”


든든하지 못하지만 꽤 귀여운 오빠를 데리고 카페에 갔다. 내부가 2층으로 된 카페였는데 분위기가 괜찮았다. 들어가자마자 오빠는 소파에 푹 파묻혔다.


“혜림아, 이쪽으로 와. 같이 앉자.”


내가 오빠 옆으로 가자 오빠는 어깨에 팔을 둘러 날 안은 채로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았다.


“오빠, 자게?”

“아니. 널 음미하는 거야.”


날 음미한다. 아까의 일을 한방에 날려버릴 멋진 말을 뱉고는 오빠는 눈을 감고 쉬었다. 눈을 감은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은 눈을 떴을 때보다도 단정해 보였다. 눈을 떴을 때가 캐주얼을 입은 모습이라면 눈 감은 모습은 어제처럼 감색 양복을 입은 듯한 모습이랄까.

틀린 그림을 찾듯 양쪽을 분할해서 틀린 곳을 찾아보았지만 어느 한군데 비뚤어짐 없이 양쪽이 같아보였다. 그 균형을 깨는 것은 오른쪽 볼에 있는 선명하게 검은 점이었다. 그 점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정말 이대로 다가가서 그 점에 닿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두 좀 자. 난 좀 자야겠다. 운전할 때 졸 것 같아.”

“그래. 자.”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나도 어깨에 기대 잠을 청해 보았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오빠가 나가자고 했다. 여전히 힘이 없어 보이는데도 괜찮다며 일어났다.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오빠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오빠, 얼굴이 파래. 정말 괜찮은 거야?”

“진짜로 파래?”

“응. 그리고 팔은 왜 그래? 붉은 반점 같은 게 생겼어.”

“붉은 반점?”


오빠는 핸들을 놓칠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어쩐지 가렵다 했다. 나 사실은 회 못 먹거든.”

“뭐야? 아까 잘 먹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럼 눈 감고 먹던 게 억지로 먹는 거였어?”

“응. 거기다가 놀이기구 타느라고 얹힌 모양인데.”

“손 줘봐.”


손이 정말 차가웠다. 체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해? 식은 땀 흘리는 것 좀 봐.”

“미안하다.”

“왜 자꾸 미안하대. 내가 미안하지.”

“너 운전 못하지? 차 대놓고 대리 운전 불러야겠어.”


대리 운전 해주는 분이 와서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오빠는 어린 애처럼 내 무릎을 베고 누웠고, 나는 그런 오빠의 머리를 계속 만져 주었다.


‘오늘 나 때문에 고생이 너무 많았지? 고마워. 고맙고, 많이 미안해. 그래두 다음에는 서로 속이는 것 없기야.’


굵은 허리보다는 미련스럽지만 여자를 위한 이런 마음이 정말 든든한 거구나하는 생각이 하며 오빠를 바라보는데 시름시름 앓고 있는 오빠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서루 오빠가 며칠 집에서 쉬어야 해서 나도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평소처럼 출근 시간에 맞춰 언니들과 함께 찜질방으로 향했다. 언니들은 별 진전이 없는지 침통한 얼굴들이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처지는 것 같았다.


“혜림아!”


찜질방에 들어가자마자 날 부른 것은 찜질방 면티를 입고 있는 현상 오빠였다. 예전에는 놀러 오라고 해도 식구들이랑 마주치는 것이 부담된다고 오지 않던 오빠였는데 대놓고 크게 이름을 부르다니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다.


“...”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출근 하는 거야?”

“응. 웬일이야?”

“너 보러 왔지.”

“나 일해야 돼.”

“그냥 너 보러 온 거야. 넌 그냥 일 해.”


그러고 돌아서더니 내가 돌아다니는 곳을 쫓아다니며 진짜 보기만 한다.


‘차라리 커피 한잔 마셔달라는 게 낫겠네. 정말 신경 많이 쓰이는데.’


현상 오빠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또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오빠, 정말 왜 그래?”

“내가 뭘?”

“사람 귀찮게 왜 그러냐구.”

“그냥 보는 것도 안되냐?”

“안돼. 싫어. 집에 가.”

“안 갈 거야. 그냥 있는데 너 왜 그러니?”


능청스럽게 말을 하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멀찍이 앉았다.


‘이걸 어쩌지?’


그 때 생각이 난 것이 병진이었다.


‘그래. 병진이 만큼 이쁜 애도 드무니까 같이 놀라고 소개나 시켜줘야겠다.’


가급적 찜질방에서 가까이 하지 않는 병진이를 불렀다.


“병진아! 나 아는 오빠가 있는데 너한테 한눈에 반했다고 소개 좀 시켜 달래.”

“싫어. 귀찮아.”

“나도 안 된다고 했는데 너랑 말 한번만 한다고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어. 말 몇 마디만 해줘라.”

“싫다니까.”


대번에 거절해 버린다. 못이기는 척 좀 가주지.


“그러지 말고. 엄마한테 월급 올려주라고 내가 말 한번 해 줄게.”

“진짜야?”

“그럼.”

“에이, 참. 어디 있는데? 민망스런 애는 아니지?”

“아니야. 잘 생겼어.”


욕탕 정리를 하는 병진이를 끌고 나와서는 현상오빠를 찾았다.


“저기 있다.”

“누구?”

“저기. 기둥 옆에 있는 사람.”

“저 사람?”


병진이는 현상 오빠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얼굴을 가리더니 다시 욕탕 안으로 숨어 버렸다.  


“야, 너 어디가?”


병진이를 쫓아 욕탕으로 들어갔다.


“너 수상해. 니가 이런 찜찔방에서 일한다는 것도 그렇고. 요즘 차림새도 너답지 않아. 아줌마 패션, 니 컨셉 아니잖아.”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니?”

“바른 대로 말 안 해? 너 현상 오빠 알지? 너 현상 오빠한테 여기서 일한다고 일러 버린다.”

“안돼. 그럼 나 진짜 관둬야돼.”


병진이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말렸다.


“뭔데, 도대체?”

“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알았지?”

“글쎄다.”


부창부수구나. 어느새 말투나 흉내 내고 앉았고.


“그럼. 말 못해.”

“알았어. 말 안할게.”

“사실···. 사실 말이야, 나 집 나왔어.”

“집을 나와? 니가 뭐가 부족해서.”


내 기억으로는 그녀의 집은 부족함이 없었다. 옷도 지가 맘에 드는 것은 다음 날로 사고, 용돈도 넉넉했던 것 같다. 도시락통도 값비싼 연분홍 일본 수입품을 들고 다녀서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럴 일 있어.”

“뭔데 뭔데 뭔데? 아주 속 터져 죽겠네.”

“나 남자랑 동거해.”


헉! 이런. 예쁘면 팔자가 세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나도 필히 조심해야지.


“그래서 돈도 필요한 거구?”

“응.”

“너 정도면 할 일도 많잖아. 왜 찜찔방에서 일하는데?”

“다른 일도 했었지. 근데 집에 욕실이 없거든. 화장실도 밖에 있어. 다른 일 하니까 씻는 것도 일이더라. 피곤해 죽겠는데 매일 사우나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찜질방에서 일해볼까 하다가 이렇게 됐어.”


병진이 같은 애가 욕실도 없는 집에 나와서 살고 있다니. 너무 의외였다. 불쌍한 기집애.


“남자는 어떤 사람인데?”

“백화점 다녀. 나보다 한 살 위고.”


병진이가 측은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씻고 싶어서 찜질방에서 일을 한다니. 얼마나 씻고 싶었으면 박봉에다가 힘든 이런 일을 할까. 하긴 병진이는 냄새나는 것은 질색인 애였으니까.


“내가 찜질방 인수하면 월급 올려줄게.”

“그게 무슨 소리야?”


병진이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진짜야? 내가 너 팍팍 밀어준다.”

“정말 그럴겨?”

“월급만 올려준다면야.”


내 인생에 태클만 걸던 그녀와 손을 잡게 되다니, 세상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작게 파이팅을 외치는 병진이가 한없이 든든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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