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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부 3막 : 초란(超蘭) #02 & #03)

J.B.G |2004.12.14 00:20
조회 163 |추천 0

 

#02

 

그날 밤.

방에 딸린 욕실에 붉은 옷의 적령과 초란이 나란히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앉아 있었다.

 

“어디를 다녀오신 거죠?”

“집에 다녀오는 길이다.”

“목진의 장수께서 어찌 중림부에 적을 두고 계신 거죠?”

“애기하자면 긴 사연이다.”

“제가 들어서는 안 되는 사연인가요?”

“아직은… 그 애기를 하고 싶지 않구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신가 보군요?”

“…”

 

적령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더 이상 물음에 답이 없자 초란도 곧 묻기를 그만 두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욕조에서 피로를 풀던 적령이 물 밖으로 나오자 초란이 곧 시중을 들어 주었다.

 

“장군님께서는 전장의 장수 같지 않고 너무 아름다우세요.”

“훗… 온 몸에 흉터 투성이인 내가 뭐가 아름답다는 거지…?”

“그게 더 아름답게 보여 집니다.”

“너야 말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지 않으냐?”

“저는 어차피 껍데기일 뿐 입니다.”

“응?”

“이곳에서 많은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더욱 많은 남자를 상대해야 하지요…”

“…”

“전쟁이란 저 같은 여인이나… 힘없는 노인과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렇듯 잔혹한 것입니다.”

“…”

“…”

“너는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이냐?”

 

적령의 물음에 초란(超蘭)은 잠시 침묵하더니 곧 말을 이었다.

 

“저는… 사실… 이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네 붉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디에서 온 것이냐?”

“제가 살고 있던 곳은 매우 궁핍한 곳이었습니다.”

“전란 중에 궁핍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

“아뇨, 전란 중인 이곳보다 더 궁핍한 곳이 있습니다.”

“…”

 

초란은 적령의 머리를 빗어주며 자신의 사연에 대해 계속 이야기 했다.

 

“궁핍함을 견디다 못한 제 부모님은 이곳 중앙대륙에 돈을 벌기 위해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저는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만 믿고 고향의 친구들과도 아무 미련 없이 이별하고 무작정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 중앙대륙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적령은 다소 침울해진 듯 한 초란의 목소리를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던 와 중에 각국의 전란이 심해지면서 국경이 통제되어서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답니다. 더군다나 저희가 있던 마을까지 전란의 여파로 궁핍해 지게 되자 저희는 이곳 중림부로 흘러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곳은 상업도시이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래도 나름대로는 고향에서보다 풍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굶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저의 고향 땅에서 오신 손님이었습니다. 전 바로 그날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초란은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듯 했다.

 

초란의 아버지는 중림부에서 중앙대륙의 내수 상권을 장악한 거상 목경부(目涇夫)의 휘하에서 아홉 국가의 각지에 상품을 배송하는 일을 담당하는 직위에 있었다. 그는 항상 중앙 대륙 전체를 일년 내내 출장으로 왕래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그의 딸 초란이 그를 맞았다.

 

“이제 오세요. 아버지.”

“그래, 어머니는?”

“고향에서 손님이 찾아 오셔서…”

“고향?”

“네! 그분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

 

고향에서 온 손님이 있다는 말에 다소 얼굴이 어두워진 초란의 아버지 현성(晛誠)은 손님이 있는 방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가 들자 초란의 어머니 연와(淵蝸)는 방을 나와 초란을 데리고 집 밖으로 산보를 나갔다.

 

“저분… 어디서 본 듯 한데…”

“네가 아직 어릴 적에 뵈었을 텐데… 기억이 나느냐?”

“그냥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분명 의원이었던 것 같은데…”

“초란아”

“네 어머니”

“이제… 너는 고향의 일은 잊도록 해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도 이제 혼기도 찼으니 이곳 중림부에서 대륙의 사람을 만나 남편을 맞았으면 좋겠구나”

“어머니… 고향으로는 안 돌아갈 거에요? 돈을 많이 모으면 돌아간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넌 이곳 대륙에서 자랐으니… 고향은 잊고 이곳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두 모녀 앞에 한 청년이 큰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낭자!”

“네?”

 

두 모녀는 갑자기 나타난 이 사내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꽃을 받고 제 청혼을 받아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두 모녀는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막무가내였다.

 

“제발… 이 꽃을 받아주시지 않으면 전 이 자리에서 자결하겠습니다. 낭자!”

 

그러자 모인 사람들이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중 속에서 구경꾼들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낭자 얼른 받아요.”

 

주변에서 부추겼지만, 초란은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하… 하지만”

“아~ 우선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오. 그 사람이 죽겠다지 않소?”

“그… 그렇지만…”

 

그 청년은 갑자기 칼을 빼 들었다.

 

“초란 낭자!”

“자… 잠깐만요. 이봐요.”

 

초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망설이자 그녀의 어머니가 얼른 그 청년의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나라도 괜찮겠나?”

“네? 그 그건…”

 

초란의 어머니 연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청년에게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내일 집으로 찾아오게”

“네?”

“말을 못 들은 겐가?”

 

초란은 놀라 이를 제지하려 했다.

 

“어머니!”

“그만 가자”

“아이 참… 어머니…”

 

그렇게 그날의 소동은 끝이 났고, 다음날 정말로 그 청년은 부모님과 함께 초란의 집에 찾아왔다.

 

“내가 미쳐 정말… 정말로 오다니…”

 

열 여덟에 첫 사랑을 만난 초란은 어찌 되었든 그 사건이 있은 몇 개월 후 정식으로 청혼을 받게 되었고, 사랑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롭고 평화로웠다. 그때까지는…

 

 

 

#03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적령이 물었다.

 

“그 남자를 사랑했느냐?”

“어찌 그리 물으시는 거죠?”

“일방적으로 사랑을 강요 받은 것이 아닌가 물은 것이다. 정혼도 부모님끼리 한 것이 아니더냐?”

“글쎄요… 분명 정혼까지는 부모님들의 몫이었죠. 하지만… 그 남자를 사랑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

“그래… 행복했느냐?”

“네! 행복했어요. 그 사건이 있기 전 까지는…”

 

초란은 다시 회상에 잠겼다.

 

혼인 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내상의 무장을 한 사병들이 갑자기 초란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집안에서 초란의 부모님을 끌어내서는 내상의 저택으로 잡아갔다.

 

“어머니! 아버지!”

 

초란은 맨발로 포박되어 끌려가는 부모님을 쫓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사병이 내리치는 창 자루에 맞고 곧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에야 정신을 차렸고, 깨어난 그녀 앞에는 정혼자인 최연의(崔戀意)가 있었다.

 

“연의씨…”

“좀 괜찮아?”

“우리… 부모님은…?”

“아버님께서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내상에 가셨어… 그러니 좀 더 기다려 보자.”

“아니에요. 저도 가봐야겠어요,”

“초란 아”

“어서요. 저를 좀 일으켜 줘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초란이 최연의와 함께 내상의 수장인 목경부(目涇夫)의 저택을 찾아갔을 때 최연의의 아버지가 목경부의 저택을 나오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초란의 부모님은 이미 중림부의 관청으로 호송 되었다고 했다. 초란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미 관청에 호송되자 그 이후로는 부모님의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방인 이면서 그녀의 정혼자인 최연의(崔戀意)가 관청에 알아보려 했으나 역시 그것도 역부족이었다.

 

“초란아… 너무 걱정 말아. 아무 죄가 없으시니 곧 풀려나실 거야…”

“연의 씨… 흑흑흑…”

 

초란은 그저 흐느낄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어버지…”

 

눈물로 밤을 지새운 지 며칠이 지나서 초란은 더욱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님이 이미 참수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 즉시 관청에 하옥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너무나 억울해서 초란은 매일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음해야…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더러운 남방인들…”

 

그렇게 그녀의 부모님이 참수된 뒤 그녀가 옥에 가치게 된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더러운 남방인들…”

 

옛 일을 회상하다 초란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러한 그녀에게 적령이 물었다.

 

“남방인 이라…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넌, 타 대륙의 외국인이 아니라 북방인 인가 보구나…”

“네…”

“원망하느냐? 남방인을…”

“글쎄요… 하지만, 적어도 남방인은 모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방인의 고충을…”

“…”

 

적령은 지금 그녀의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느냐?”

“…”

 

초란은 더욱 흐느껴 울뿐 미처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흑! 흑! 흑!”

 

적령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초란이 적령을 원망하는 듯한 말을 했다.

 

“장군께서는… 백성을 위해 검을 드셨지만… 그것은 남방의 백성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진 적령의 대답은 너무나 원망스러운 것이었다.

 

“…난… 백성을 위해 검을 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복수를 위해서다…”

“…”

“실망하였느냐…?”

“…그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두 여인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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