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wi - 24
“그게 무슨 소리야? 상견례가 끝났다니?”
“오늘 찜질방에서 부모님께 인사 드렸어.”
“오빠 혼자 인사드린다고 그게 상견례야?”
“어머니랑 니네 찜질방있는 그 건물 보러 갔었어. 조그만 건물들이랑 식당 정리하고 그 건물 매입하기로 했었거든. 어머니랑 간 김에 인사드리고 온 거지. 근데 이야기가 잘 됐어. 우리쪽 보다 너희 부모님이 더 서두르시는 것 같던데. 네 언니들도 다 만났고. 어차피 아버지는 못 나가실 것 같아서 오늘 인사드린 것을 그냥 상견례로 대신하기로 했다.”
어이가 없었다. 서루오빠 같은 사윗감을 우리 부모님이 마다할 리는 없었다. 이미 양가 어른들의 이야기는 잘 되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대로 서루오빠의 계획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진 것은 분명했다.
“상견례가 끝났든 아니든 상관없어. 이 결혼 내가 안할 거니까.”
“너 나랑 결혼한다고 했던 말 잊었니?”
“잊지 않았어. 기억해.”
“내가 말한 결혼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쉬운 거였어? 남자 하나 때문에 쉽게 바뀌는 그런 거였냐구. 난 네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결혼이 주는 책임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실망스럽지? 그러니 이제 그만해.”
“미안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용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지는 않았어.”
서루 오빠는 자신의 허용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직 내가 돌아갈 여지는 있다는 말. 결혼 상대자로 본다면 좋은 성품이지. 내게 드는 생각은 그뿐이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해. 오빠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기다린 것 아니야.”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어. 미안해.”
그 때 나의 핸드폰이 문자가 왔음을 알려주었다. 확인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서루오빠에게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루 오빠는 내 핸드백을 거칠게 뺏어들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왜 이래?”
핸드폰을 도로 뺏어 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집에 잘 들어갔니? 사랑한다. 내일 보자?”
“진짜 치사하게 이러기야?”
“네 입에서 치사하다는 말이 나오니?”
내가 마법사라면 서루 오빠에게 저주라도 걸고 싶었다. 힘으로 핸드폰을 뺏다니. 치사해. 아주 치사하다구.
“내일 10시까지 집으로 올게. 아버지가 널 보자구 하셔.”
“내가 거길 왜 가? 나 결혼 안한다구. 안해.”
나는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내게 서루 오빠는 핸드백만을 던져주고는 뒤 돌아섰다.
“핸드폰 내놔. 내 핸드폰.”
“내일 10시라고 했다.”
서루 오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 핸드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채로 차에 올랐다.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앞으로의 일이 내 생각보다는 더욱 더 어렵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졌다.
일어날 힘도 없었다. 뭐가 이리 복잡해. 난 이제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거라구. 몸을 추슬러 집에 들어섰을 때 언니들 모두 거실에 나와 있었다.
“집 앞에서 소리 지른 것이 너지?”
“······.”
셋째 언니의 말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향했다.
“너 이리루 와봐.”
“싫어. 나 잘래.”
큰 언니의 말도 듣지 않고 들어가려 할 때 둘째 언니가 내 팔을 잡아 앉혔다. 언니들 셋이 마음을 먹은 한 조용히 잠들기는 틀린 일 같아 어쩔 수 없이 언니들 앞에 앉았다. 내게 남자가 생길 때마다 벌어지는 청문회 같은 통과의례를 할 생각인 듯 했다. 지금 기분으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데.
취조 대형으로 앉은 언니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진실 아니면 죽음이리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겠군.’
기왕지사, 조금이라도 내 거짓말을 귀신처럼 알아채는 셋째 언니의 반대편으로 몸을 틀었다.
첫 질문자는 셋째 언니였다.
“너 결혼하려는 사람이 서루였어?”
“응. 근데 이젠 아니야. 나 그 오빠랑 결혼 안 해.”
“뭐야? 오늘 서루랑 서루 어머니 찾아왔던데. 그 건물 사러 오면서 들렸다나. 엄마 아빠 지금 입이 아주 찢어지셨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셔?”
“밤이 늦었으니 넌 질문에 답만 한다.”
나의 말을 큰 언니가 잘랐다.
“서루라는 애 가족 관계는?”
“나 그 오빠랑 결혼 안한다니까. 다른 남자 생겼어.”
신경질적인 나의 말에 언니들은 약간의 웅성거렸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 이거지. 처음부터 알아듣게 얘길 해봐.”
“서루 오빠는 알다시피 내 과외 선생님이었지. 현상 오빠랑 헤어진 날 셋째 언니한테 전화가 온 거야.”
“아, 잠깐. 얘기가 기냐?”
“아니. 별로 안 긴데.”
“아니야. 딱 들으니까 길 것 같애.”
“안 길다니까.”
“아, 아. 언니 말이 맞아. 다들 배고프지? 셋째는 족발을 시키고, 넷째는 얘기를 계속한다. 처음부터. 서루라는 애가 과외 선생이라고?”
큰 언니는 동생들 부리는 재미에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재작년 쿠데타가 수포로 돌아간 이후에 큰 언니의 횡포는 더욱 심해져 어느 누구 하나 감히 토를 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힘을 더 실어주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그 점이 지금 너무나 아쉬웠다.
셋째 언니는 족발집 전화번호를 찾으러 가고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서루 오빠가 잘 못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내가 민성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수는 없잖아.”
“민성이라는 얘는 뭐하는 앤데?”
나의 간략한 이야기가 끝나고 셋째 언니가 물었다.
“휴학생.”
“집은 뭐하는데.”
“몰라. 집이 뭐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해. 안 물어봤어.”
“그게 왜 안 중요해. 남자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봐야 할 게 그건데.”
“아하. 그만들 해. 혜림이를 제외하고 잠시 내 방으로 모인다.”
언니들은 나를 남겨두고 모두 큰 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얘기들을 자기네들끼리 하려는 건지 청문회 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라 거실에 혼자 남겨진 나는 내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혹시 정신 차리라고 단체로 구타하는 건 아니겠지. 빨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진짜 사랑한다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할까? 아니야. 너무 약해. 무조건 버티기? 그것두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구. 눈물 작전? 그래. 그게 좋겠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절대 헤어질수 없다고 질질 짜야겠다.’
언니들은 무슨 얘기가 긴지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때 족발 배달원이 도착을 했다.
“큰 언니, 족발 왔어.”
“어. 니가 받아.”
“돈 줘야지.”
“너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니가 내.”
큰 언니는 방문도 열지 않고 말했다. 아니 돈을 안내려고 방으로 들어간 거야? 어쩔 수 없이 계산을 하고 간단하게 상을 보는 동안 그제서야 언니들이 나왔다.
‘이 속물들. 돼지 뼉다구나 목에 걸려라.’
“야, 맛있겠다. 진짜 푸짐하네. 대자 시켰지?”
“응. 밤에 먹으면 다 살로 갈텐데.”
“그래두 족발을 이상하게 밤에 먹어야 맛있단 말이야. 아침엔 누가 꽁짜로 줘도 먹기 싫을 거야.”
“그러게 말이야. 내일 운동 좀 해야겠다. 칼로리 소모 좀 하려면. 나 이집 동치미가 아주 시원하고 좋더라. 설탕 맛도 안나고. 아주 개운해.”
“우리는 수다를 많이 떠니까 살로 갈 것도 없을 거야.”
그녀들은 이상하리만큼 족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논의를 하고 왔으면 내게 할 말이 분명히 있을텐데.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눈앞에 있는 족발은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생전에 아주 다리가 굵은 돼지였으리라. 앞다리인지 뒷다리인지 분간하지 힘든 살들을 먹는 동안 언니들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눈앞에 쌓여있던 고기들이 반쯤 없어졌을 때쯤 둘째 언니가 말을 꺼냈다.
“혜림아, 그 남자. 이름이 민성이?”
“응.”
“걔 잘 생겼냐?”
“아주 잘 생겼지. 완전 내 이상형이야.”
“좋겠다. 잘 생긴 남자들 많은 것 같은데도 길 다니면서는 보기도 어려워요.”
“맞아. 맞아. 근데 얼굴 값 할 것 같지는 않구?”
셋째 언니가 맞장구를 치면서 은근슬쩍 태클을 걸어왔다.
“전혀.”
말을 길게 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언니, 내 친구 미경이 알지? 걔가 비 닮은 남자 친구 생겼다고 무지 잘난 척 했거든. 근데 알고 보니 아홉 다리였대.”
“양다리도 아니구, 아홉 다리? 왜 한개 더 채워서 문어를 하던지 오징어를 하지.”
“얼굴값 안하는 인간들 봤냐?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우리를 봐라. 얼굴 값 하다가 시집도 못 갔잖아.”
“하하하.”
“연애할 때야 얼굴 값하면 헤어지면 그만이지. 결혼 해두 그러면 아주 여자 인생 망치는 거지.”
내 말에 공격을 해 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잘 생긴 남자를 주제 삼아 자신들의 수다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결혼해서 얼굴 뜯어먹고 사나? 남자는 얼굴 하나도 안 중요해. 결혼하면 다 똑같다니까. 이놈이나 저놈이나.”
“오히려 얼굴이 잘 생기면 하자야. 내 친구도 남편이 바람을 하도 펴서 이번에 이혼했다잖아.”
“그게 남자 잘못만은 아니라니까. 유부남이라고 해도 요즘 여자들은 가만 냅두질 않아. 이쁜 기집애가 계속 꼬리치는데 어떻게 안 넘어가겠어. 그러다 재미 붙이는 거지.”
“내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 어떤 여자는 남편이 애도 있는데 계속 바람을 피더래. 그래두 참고 사는데 바람을 핀 여자가 오히려 집으로 전화해서 협박하고 난리를 피더랜다. 그래서 그 여자 자살했대. 그 애들은 얼루 갔겠어. 시어머니가 떠안았지. 근데 그 남자 정신을 계속 못차렸나봐. 또 다른 여자 만나고. 나이든 할머니가 애들 보는 것도 힘들지, 아들 봐도 희망이 없지. 그래서 그 시어머니도 자살을 했대.”
“으, 너무 끔찍하다.”
언니들의 수다가 날 염두에 둔 공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도 마음 한켠에서 괜한 걱정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맞아. 오빠한테도 따르는 여자들이 많다고 했지. 그러다 여시가 나타나 꼬리라도 치면. 그 때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난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에 관한 걱정으로 맛있던 족발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만약, 만약이란 가상의 시나리오를 써가며.